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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중국 슈퍼리치, 역사가 전하는 6인 갑부 이야기

기사입력 : 2016년05월31일 07:35

최종수정 : 2016년06월01일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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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감, 쑹쯔원, 화신, 유근, 쿠빌라이, 칭기즈칸

[편집자] 이 기사는 05월 30일 오전 11시32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이지연 기자] 지난 1000년간 세계 최고 갑부의 반열에 올랐던 원 명 청대의 중국인 6명이 최근 재조명되며 이목을 끌고 있다. 넷이즈재경(網易財經) 등 복수의 중국 경제매체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인용해 중국인으로서 세계 제일의 부자였던 오병감, 쑹쯔원, 화신, 유근, 쿠빌라이, 칭기즈칸의 재산축적 비결을 소개했다. 이들의 생애는 13세기 몽골제국에서부터 20세기 신중국 성립 이후까지 걸쳐있었다.

◆ 오병감(伍秉鑒·1769~1843) – 청나라 최고의 무역상

청나라 최고의 무역상 오병감 <사진=바이두>

오병감 일가는 청나라 시기 독점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은 집안으로, 오병감은 청나라 연간 재정수입의 절반 정도인 백은(白銀) 약 2800만냥을 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그때 당시 미국 최고 갑부의 재산은 700만냥 정도였다고 한다.

오병감의 부친 오국옥(伍國瑩)은 외국인과 차와 도자기를 거래할 수 있는 소수의 중국 상인 가운데 하나였다. 오씨 일가는 거래의 대가로 오직 백은만 받았다고 한다.

1789년 오병감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세계 최고의 무역상으로 거듭났다. 현재까지도 미국 세일럼(Salem), 매스(Mass), 뉴포트(Newport)에 위치한 관저에는 오병감의 초상화가 걸려있다고 한다. 이 관저들의 주인은 당시 오병감과 거래를 했던 미국인들이다.

오병감은 유명한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청나라가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패배하자 오병감은 배상금 110만냥을 기꺼이 기부했다고 한다.

◆ 쑹쯔원(宋子文·1894~1971) – 우량주와 막대한 현금을 쥔 금융인 겸 정치인

우량주 보유한 현금부자 쑹쯔원 <사진=바이두>

쑹쯔원(송자문)은 1927~1949년 국민당·국민정부의 핵심 관료로서, 근대 중국 금융투자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1940년대에 중국 국고 자금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투자, 엄청난 부를 일궜으며 개인적으로도 중국 최고의 갑부로 등극했다. 때문에 쑹쯔원이 중국 국부펀드 운용의 신기원을 세운 인물이라는 평가도 전해진다.   

그는 중국 청말 최고의 상인 명문가 집안의 자제로 신해혁명의 주인공 쑨원(손문)의 부인 쑹칭링(宋慶齡)의 동생이자, 장제스(蔣介石)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의 오빠이기도 하다.

부친으로부터 상인 및 투자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쑹쯔원은 하버드 대학 경제학 석사, 콜롬비아 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투자은행에서 IB 전문가로 재직했다. 1923년엔 매형인 쑨원의 중국혁명동맹회에 자금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며 1924년 재정대신으로 임명된 후에는 국고펀드를 만들었다.

1925년 쑹쯔원은 중화민국 재정부장(장관)이 되었고, 1942년에는 외교대신으로 임명됐다. 그는 중화민국 재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대부분의 개인 재산을 해외 주식에 투자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의 아웃도어 용품업체 도이터(Deuter) 등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 화신(和·1750~1799) – 부정축재의 '화신'

'부패의 화신' 청나라 관료 화신 <사진=바이두> 

잘 생기고 영민한 화신은 1772년 청나라 건륭제의 시위(侍衛)로 봉해진 뒤 황제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특히 황제의 막내딸과 혼인을 한 뒤로는 권력이 더욱 막강해져 당파를 형성하는가 하면 자신과 척을 진 사람들은 바로 배척해버렸다.

이후 나라 국고를 관리하게 된 화신은 들어오는 진귀한 물건들을 몰래 빼돌렸으며, 수시로 뇌물을 받기도 했다.

건륭제가 세상을 떠나자 가경제는 ‘부패의 화신’ 인 화신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명했고, 그의 전 재산은 몰수됐다. 몰수된 재산은 청나라 20년 예산에 맞먹으며 황제의 재산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 유근(劉瑾·1452~1510) – 명대 가장 부유한 환관

명대 가장 부유한 환관 유근 <사진=바이두>

명나라 환관이었던 유근은 직권을 남용해 엄청난 재산을 끌어 모았다. 명무종(정덕제)의 총애를 받아 세도를 부렸던 유근은 ‘입황제(立皇帝)’, 명무종은 ‘좌황제(坐皇帝)’로 불렸다고 한다.

다른 환관이 유근을 모반죄로 밀고해 책형을 가할 당시 그의 집에서 금 1200만온스와 백은 2억5900만온스 등 엄청난 규모의 금은보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명나라가 망했을 때 국고에 백은 3000만~7000만온스가 남아있었다고 하니 유근이 부정축재한 재산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유근의 재산은 과도하게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 당시 사관이 환관이 권력을 장악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경고하고자 유근의 이야기를 과대포장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쿠빌라이(忽必烈·1215~1294) – 원나라 시조

원나라 시조 쿠빌라이 <사진=바이두>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元)나라를 세워 북방민족과 중국을 하나로 합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베이징에 금으로 입힌 궁궐을 짓는 등 매우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마르코 폴로는 화려한 쿠빌라이의 여름 궁전을 입이 닳도록 칭송한 바 있으며, 호화스러운 연회와 압도적인 사냥행사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고 한다. 게다가 쿠빌라이 소유의 배 중에는 100명이 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선박도 있었다.

쿠빌라이는 지폐 사용을 강요함으로써 백성들의 금과 은을 모두 몰수했다고 한다.  

◆ 칭기즈칸(成吉思汗·1162~1227) – 광활한 땅을 소유한 정복자

몽골제국 시조 칭기즈칸 <사진=바이두>

유럽대륙까지 진출한 몽골제국의 시조 칭기즈칸은 점령한 땅으로 재산을 가늠했을 때 세계 최고의 부자다.

몽골족을 통일한 그는 현재의 중국, 이란, 이라크, 미얀마, 베트남, 대부분의 북한 지역, 러시아 등을 정복해 약 500만㎢의 땅을 획득했다. 한반도 면적의 약 23배다.

칭기즈칸에게 최고의 기쁨이란 “적을 정복하고, 적들을 쫓아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 가족의 눈물을 보며, 적들의 말을 타고 이들의 딸과 부인을 취하는 것”이다.

[뉴스핌 Newspim] 이지연 기자 (del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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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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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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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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