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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이낙연 아들 1400만원 증여세 탈루 의혹"... 검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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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낙연 국무총리 아들 1억 9천만원 재산 증가... 소득은 월 300에 불과
강효상 "이낙연 후보자, 증여세 탈루 의혹 상세히 해야해야"

[뉴스핌=조세훈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아들이 1400만 원이 넘는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울 20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부문 대정부질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청문위원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제출한 국무총리 이낙연 임명동의안 서류를 분석해 본 결과, 이낙연 후보자 아들이 억대 증여재산에 대한 증여세를 탈루한 의혹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강 의원에 따르면, 2014년 3월 국회공보에 공개된 이 후보자의 재산변동사항에서 아들 이 모씨는 아파트 전세와 자동차 구매를 해 재산이 크게 늘어났으나 소득은 월 300만원에 불과해 증여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들 이 모 씨는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아들 이 모 씨는 2013년 강남구 청담동 청담삼익아파트 전세를 얻을 때 1억7000만 원을 부담했다. 또, 같은 해 2012년식 i40 자동차를 2200만 원에 새로 샀다. 그 결과 2013년 재산 증가액은 모두 1억9200여만 원이 됐다.

그러나 그의 소득과 재산 변동사항을 보면 이 액수를 모두 충당할 수 없는 것으로 추론된다. 이 씨의 예금 등 변동사항을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예금은 4000만 원가량 감소했고 금융부채도 670만 원 갚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강 의원은 "아들의 연말정산 자료를 보면 2013년 당시에도 병원 인턴·레지던트로 근무하며 매월 300만원가량의 보수를 받아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강 의원 측은 "결과적으로 아들이 본인의 자산으로 2013년 1년 동안 아파트 전세금 등에 충당할 수 있는 최대의 자금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저축했다고 하더라도 약 7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들의 2013년 재산 증가액 1억9200만원에서 최대 충당가능자금 7000만원을 뺀 1억2200만원은 누구로부터 증여를 받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3년 당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1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를 증여받은 경우에는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강 의원 측은 이 모씨가 납부해야 할 증여세가 1440만 원가량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강 의원 측은 총리실에 확인한 결과 이 후보자의 아들은 지난 5년간 증여세 납부 실적이 없었다 했다.

강 의원은 " 이낙연 후보자는 아들과 관련된 재산내역을 모두 고지 거부하고 있다"며 "후보자는 아들이 아파트 전세자금 등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그리고 증여세 탈루 의혹에 대해서도 상세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며 향후 청문회에서 강도높은 검증을 예고했다.

 

[뉴스핌 Newspim] 조세훈 기자 (askra@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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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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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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