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이순신장군’ 옮기고 ‘촛불형상’ 검토
과거 MB도 여론 반발로 백지화, 15년 만에 재추진?
학계 “대한민국 문무의 상징적 존재...신중히 생각해야”
정치권 쓴소리…이언주 “박원순의 대권놀음”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서울시가 현재 광화문광장 중심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의 이전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두 동상이 오랫동안 광장의 상징이었던 탓에 국민 반발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이를 의식한 서울시는 공론화과정을 거치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진=이형석 기자] |
논란의 발단은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계획이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21일 직접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2021년까지 광화문광장을 새롭게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은 서울시가 669억원, 문화재청이 371억원을 부담해 총 1040억이 투입된다.
이날 새 광화문광장의 국제설계공모 최종 당선작인 ‘깊은 표면(Deep Surface)’이 공개됐다. 당선작은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상의 이전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두 동상을 세종문화회관 옆과 옛 삼군부 터(정부종합청사 앞)로 각각 이전하는 방안이 제안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개된 대부분의 조감도에서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상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설계안을 보면 일단 광장 규모가 3.7배 커진다. 경복궁 앞에는 ‘역사광장’(약 3만6000㎡)이, 이보다 남쪽에는 ‘시민광장’(약 2만4000㎡)이 만들어진다. 당선팀이 이 과정에서 동상 이전의 필요성을 느꼈고 시가 이를 검토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확정되면 세종대왕상은 12년, 이순신장군상은 53년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된다. 두 동상은 상당히 오랜기간 광화문광장에 자리했다. 세종대왕상은 열 살이 넘었다. 한글날을 기념해 지난 2009년 10월 9일 현재 자리에 선을 보였다.
이순신장군상은 역사가 더욱 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올해로 만 51년째다. 역사 고증을 둘러싼 다소의 논란이 있었지만 반백년 넘게 광화문광장을 지키면서 서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 모습이 사라진 조감도 [사진=서울시] |
실제 이전은 역사성과 상징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난망하리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당장 이전 안이 알려지자마자 반대 여론이 거세다. 21일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은 "광장의 상징이자 심장인 이순신장군상을 국민 세금으로 옮길 수 없다"는 목소리로 뒤덮이고 있다.
동상 이전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이던 2004년 이순신장군상 이전을 추진했다 험악해진 여론과 마주했다. 당시 광화문 남동쪽 ‘열린시민광장’으로 옮기는 안이 검토됐는데, 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무려 90%에 육박했다. 결국 이전 안은 무산됐다.
‘정파·이념 편향성’ 문제도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두 동상이 물러난 지상광장 바닥에 촛불 시위를 형상화한 바닥 장식을 새긴다는 계획이다. 시는 “종묘마당의 박석포장과 촛불시민혁명의 이미지를 재해석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원형 패턴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가장 먼저 정치권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의 대권놀음 때문에 나라의 정신이 멍들 지경”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역사적 유산의 상징을 박 시장이 뭔데 함부로 치우냐”며 “광화문광장은 박 시장이 대권놀음에 빠져 멋대로 좌파 내부의 지지층 취향으로 훼손시켜도 되는 곳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19.01.21 mironj19@newspim.com |
현재 서울시는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축가로서 이번 설계공모 심사에 참여한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심사위원단의 결론은 이순신장군상은 역사성을 고려할 때 존치하자는 쪽”이라며 “하지만 세종대왕상은 위치나 크기 등에 대해 여러 사람이 문제제기를 해왔기 때문에 이전을 검토할 만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원순 시장이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박 시장은 “워낙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올해 말까지 시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충분히 시민 의견이 존중된 상황에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논란을 의식해 ‘일보후퇴’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 역시 "어디까지나 당선팀의 제안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당선작을 향후 전문가나 시민공론화 등을 거쳐 검토하는 것이지 서울시가 (동상 이전을)추진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학계는 이 문제를 신중히 풀어야한다고 보고 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두 동상이 대한민국 문·무의 상징인 만큼 공론화를 통해 시민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며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사회, 국민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광화문광장 계획이 당초 목표에 부합하는 것인지, 상업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닌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대왕 동상 [사진=뉴스핌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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