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후속…15년만에 노라가 돌아오는 설정
노라와 남편, 딸, 유모의 설전을 통해 인권, 사회 문제 되새겨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15년 전 문을 박차고 나가 충격을 안겼던 노라는 작가로 성공해 멋지게 돌아왔다. 예전부터 여성의 권리, 인권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던 노라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더욱 성장했지만 돌아온 집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유모, 남편, 딸과 마찰하던 노라는 결국 또다시 집을 나선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서이숙(가운데)과 전국향(왼쪽)이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인형의집 Part 2> 프레스콜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19.04.11 dlsgur9757@newspim.com |
연극 '인형의 집 Part 2'는 1879년 초연된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후속 이야기를 루카스 네이스가 상상해 완성한 작품이다. 사회가 요구한 역할에 갇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 노라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선 후 15년 뒤 집으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겨진 가족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노라와의 대화를 통해 유추하게 된다.
노라(우미화, 서이숙)가 집에 돌아온 이유는 남편 토르발트(박호산, 손종학)가 과거 이혼 신청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가가 됐지만 여전히 결혼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규율이 심한 사회 속에서 노라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제대로 이혼하고 일을 바로잡으려 한다. 노라 역을 맡은 배우 서이숙이 "3대 1의 싸움"이라고 밝힌 것처럼, 유모 앤 마리(전국향)를 시작으로 남편 토르발트, 딸 에미(이경미)와 논쟁적 대화를 펼친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서이숙(왼쪽)과 전국향이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인형의집 Part 2> 프레스콜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19.04.11 dlsgur9757@newspim.com |
유모 앤 마리는 자신의 아이들을 뒤로 하고 노라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헌신한 인물. 노라는 자신을 탓하는 유모에게 "남아준 건 고맙지만 꼭 그래야할 필요는 없었다. 당신 선택이었다"고 항변하면서도, 그 고마움에 집과 평안한 삶을 선물하려 한다. 그러나 유모는 이를 거절한다. 사회적 규율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나이를 핑계대며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전형적인 기성세대를 대변한다.
엄마의 얼굴을 기억조차 못하는 딸 에미는 노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이혼을 설득해달라는 노라의 부탁에 "노라 헬머는 공식적으로 죽을 것이다. 나와 아빠, 오빠들은 당신이 없는 채로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고 말할 정도. 엄마에 대한 복수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의 문제점이나 인권, 성평등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기적이고 주변에 무관심한 대중을 그리는 듯하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우미화(왼쪽)와 이경미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인형의집 Part 2> 프레스콜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19.04.11 dlsgur9757@newspim.com |
노라를 집에서 떠나게 만든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남편 토르발트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노라가 성공하게 된 책의 내용이 자전적 이야기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더 멋지고 잘나게 나오기 위해 수정을 종용한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듯하지만 모든 이야기와 행동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 이기기 위한 싸움으로 귀결된다.
각각 등장인물은 자신의 위치에서 사회적 문제를 대변하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쏟아낸다. 이들을 상대하는 노라는 매우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항변한다. 노라는 현 시대에서도 가슴 깊이 파고드는 묵직한 팩트 폭력을 이어간다. 이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변화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박호산(오른쪽)과 우미화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인형의집 Part 2> 프레스콜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19.04.11 dlsgur9757@newspim.com |
내용은 무겁지만 사실 극의 분위기는 유쾌하다. 유모의 절규나 남편의 귀여운 허세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방대한 양의 대사를 쏟아내는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대단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 우미화의 안정된 연기에 박호산의 능글맞으면서도 리얼한 연기가 맞물리면서, 100여 년 전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현실처럼 몰입하게 만든다.
노라는 자신을 죽었다고 치부하려는 딸 에미에게 "널 위해 만들려고 하는 세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중략)내가 스스로 해결하겠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지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겠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라고 말한다. 그 시절, 노라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 지금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는 오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