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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여의도 포청천' 문희상…"의회주의자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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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 취임 1주년
'일하는 국회, 투명한 국회'…국회개혁 추진
'의회주의자 문희상'…국회 역할 넓히다

[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의 별명은 '여의도 포청천'이다. 이 별명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리잔수 상무위원장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터프한 외모가 비슷해서일터다.

국회의장 자리에 앉은지 1년, 문 의장은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더욱 굳히고 있다. 단순 외모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 공명정대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중국의 판관 포청천을 닮은 그의 성품 때문이다. 문 의장 취임 후 지난 1년의 국회에는 그의 이러한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07.12 leehs@newspim.com

◆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 강조…국회 혁신 나서

지난 1년 문 의장은 국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른바 '국회 개혁'을 추진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국회,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국회를 위해서였다.

그 첫번째 혁신은 '일하는 국회'로의 탈바꿈이었다.

문 의장이 취임한 후인 20대 국회 후반기는 유독 여야간 정쟁과 갈등이 심했다. 동물국회가 재현됐고 4개월 넘게 국회가 파행되면서 계류된 민생법안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문 의장은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가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법안 통과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골자다.

우선 각 상임위마다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복수 설치하도록 하고, 월 2회 이상 회의를 열도록 정례화했다. 또 위원회별로 법안소위의 개최 횟수나 법안심사 실적 등 활동성과를 공개하도록 했다. 해당 국회법 개정안은 오는 17일부터 시행된다.

문 의장이 또 하나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투명한 국회'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63억원에 달하던 국회 특수활동비를 9억 8000만원으로 대폭 줄였다.

매년 논란이 되는 국회의원 해외출장비 사용 내역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출장비 사전심사와 사후 평가 과정을 도입해 국회의원들이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 어떻게 비용을 사용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것.

국회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공개 범위도 확대해 국회 내 실·국장급들까지도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장실에서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7.08 leehs@newspim.com

◆ "초당적 국회"…당대표부터 당 정책연구원까지 손잡게 한 문 의장

문 의장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초당(超黨)'이다. 당파적 이해를 떠나 모든 당이 일치된 태도를 취한다는 뜻이다. 특히 20대 국회가 후반기 들어 극한 대립과 파행을 겪어온 만큼 문 의장은 그 어느때보다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했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문 의장은 그 어느때보다 대립이 심했던 현재 여야의 손을 이어잡은 장본인이다.

최근 오랜 국회 파행 끝에 여야가 국회 정상화 협상을 해야 했을 때, 데면데면한 이들에게 협상의 자리를 만들어준 것. 이 자리에서 의장은 여야의 입장을 중재해 '경제원탁회의'를 제안했고, 이는 국회정상화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어렵사리 잡은 손을 놓치지 않도록 문 의장은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와의 정례회동을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또 5당 정당 대표들과의 만남인 초월회도 정례화해 진행 중이며, 여야를 막론하고 5선 이상의 중진의원 정례 간담회인 이금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 내 연구단체인 미래연구원과 5당의 정책연구원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초당적으로 정책연구에 나서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07.12 leehs@newspim.com

◆ "의회주의자로 기억되고 싶다"

문 의장은 자타공인 '의회주의자'다. 그만큼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유독 의회외교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신념 때문이다.

문 의장은 의회 차원의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의회외교포럼을 만들었다. 중진급 국회의원과 전·현직 대사들이 전 세계 12개 권역의 나라들을 하나씩 맡아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문 의장은 "100년 전 우리가 우왕좌왕 하다가 강대국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국권을 박탈당하지 않았나. 지금도 그에 버금가는 상황"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하며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힘을 갖춘 만큼 적극적으로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외교활동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의회 외교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의회외교포럼은 최근의 외교적 현안 해결에도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방일단을 파견하기로 한 문 의장은 한일의회외교포럼을 중심으로 양국 의회 차원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해결 방안들을 강구 중이다.

더불어 남북미 3국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이 성사된 이 때, 국회 차원에서도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방북단을 구성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나설 예정이다. 여기에는 남북의회교류포럼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으로서 6선이라는 긴 시간, 30년의 정치인생을 마무리짓는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회주의자로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억됐으면 한다."

문 의장이 국회의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아직 그에게는 9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의 바람대로 20대 국회가 파행의 국회가 아닌 '일 잘하는 국회, 혁신의 기반을 닦은 국회'로 기억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jh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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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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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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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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