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눈치'에 임산부 단축 근무 제대로 활용 못 해
임산부들, '티 안 나는' 임신 초기 어려움 가중
"저출산 시대 모성보호법 조속히 통과돼야"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0) 씨는 2018년 12월 임신 당시 단축근무제를 사용하지 못했다. 이씨는 "부서 내에 최근 몇 년간 출산한 여직원이 없다 보니 임신부 단축근무를 쓰기가 눈치 보이더라"며 "상사가 먼저 쓰라고 권유해야 쓸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쓰라는 얘기가 없어 결국 단축근무를 하지 못했는데,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난 뒤에야 뒤늦게 상사가 '왜 안 썼냐'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임신 21주 차에 접어드는 직장인 유모(31) 씨는 초기 입덧으로 고생했지만 임신확인증을 받을 수 없어 단축근무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임신 6주는 지나야 임신확인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신확인증이 없으니 경기 수원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자리를 양보받을 수도 없었다. 유씨는 "임신확인증이 나오려면 초음파 검사에서 아기집이 보여야 하는데 보통 4~6주 차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며 "그전까지는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도 받을 수 없어 지하철에서 속이 메슥거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경력 단절 여성 약 170만명 중 22.6%에 해당하는 38만여명이 임신·출산을 경력단절 이유로 꼽았다. 2020.01.28 clean@newspim.com |
초기 임신부들의 안정을 위해 2014년부터 도입된 임신기간 단축근무 제도가 여전한 직장 내 '눈치보기'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유산 가능성이 큰 임신 초기에는 정작 단축근무 신청을 위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없어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올해부터 임신 전 기간으로 단축근무를 확대하기로 했던 관련 법안은 국회에 발이 묶였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경력단절 여성 170만여명 중 22.6%에 해당하는 38만여명이 임신·출산을 경력단절 이유로 꼽았다. 임신기간 단축근무를 활용하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는 여성들이 여전히 부지기수인 것이다.
임신기간 단축근무는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의 여성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 2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제도다. 2014년 9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도입해 2016년 3월 모든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1시간 일찍 출근해 1시간 늦게 퇴근하거나, 출근이나 퇴근을 2시간 늦추거나 앞당기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상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의 여성 근로자의 단축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사업장은 500만원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눈치를 보느라 하루 2시간 단축근무를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임신부들이 많은 상황이다. 사업주가 단축근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고 이후 입장이 난처해지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임신 1주~12주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정작 유산 가능성이 큰 임신 초기에는 최대 8주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임신확인증은 초음파 검사에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아기집이 발견돼야 한다. 유씨는 "아기집이 발견되는 시기가 보통 4~6주 차라 정작 가장 힘들었던 임신 초기에 5주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초기 임산부들의 안정을 위해 2014년부터 도입된 임신 단축 근무가 여전한 직장 내 '눈치주기'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01.27 clean@newspim.com |
고용노동부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퇴사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임신기간 단축근무 사용 가능 기간을 임신 전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여성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시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월 최대 60만원, 대기업 월 최대 40만원의 임금 보전도 지원하기로 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이 묶여 있어 올해 시행이 요원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조속한 법 개정을 통해 모성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모성보호 정책을 정규직뿐만 아니라 임시직이나 영세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여성들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시대이다 보니 현재 정책 방향이 모성보호 정책을 보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임신 전 기간에 건강한 모성을 보호하는 것은 여성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며, 도입 과정에서 법 개정이 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로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은 전체적인 틀만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자 2~3명의 영세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여성들이나 임시직들은 대체 인력이 없고 모성보호와 상관없이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많은 여성이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여성들의 모성보호 역시 중요한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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