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특파원

속보

더보기

코로나19 경제 충격 중국 베이징 교민사회 흔들

기사입력 : 2020년07월06일 16:51

최종수정 : 2020년07월06일 16:53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상반기 내내 아무일도 못하고 꼬박 꼬박 집세와 사무실 임대료만 내왔어요. 설령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된다고 해도 사업이 예전 상태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일단 한국으로 철수한 뒤 앞으로 할 일을 찾아보려 합니다."

18년 중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게 된 C씨는 지난 6월 말 송별식 자리에서 "코로나19가 중국에서의 생활터전 사업기반 모든 걸 앗아갔다"며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짐을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C 씨는 자신이 운영해온 중국 유학원 사업이 앞으로도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 풍파가 지나간 뒤에는 동남아로 갈 계획이라고 말헸다. 그는 6월 26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왕징을 중심으로 한 베이징 한국 교민 사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최악의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다. 한식당 대표는 사스와 사드를 모두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교민 집단 주거촌 왕징의 한 레스토랑은 최근 중국 사업을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피부 미용업소 사장도 9월 귀국 항공표를 예약해놓고 매장을 정리중이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베이징 한국인 집단 주거촌인 왕징의 한 상가내 피부미용 점포가 유리문에 매장 임대 안내문을 붙여놓은 채 영업을 하고 있다. 2020.07.06 chk@newspim.com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피부 미용업소, 부동산, 유학원, 의류 패션 가게, 컨설팅 업체 모두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왕징일대 모든 업소들이 상반기 절반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고 절반은 개점 휴업 같은 상황을 보내야했다.

7월 5일 낮 베이징 시내에서 만난 한 항공사 임원은 주당 200편 운항하던 인천 베이징 항공편이 한 편으로 줄었다며 이런 상황인데 왕징 교민사회의 한인 경제가 온전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현재 중국이 국경봉쇄(비자발급 중단) 상태여서 귀국하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왕징 일대 교민사회 업소들의 영업난은 가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왕징내 음식점 K 사장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요식 업체수가 한참 때는 150곳도 넘었던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30 곳도 채 안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인 자본에 밀려 위축된 축면도 있고, 올해들어서는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영업을 중단한 한국인 식당도 여럿 된다고 밝혔다.  

왕징 일대에는 문을 닫는 한국인 음식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년 가까이 운영해온 유명 음식점도 결국 코로나 불경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중국인과 달리 한국인 업소는 임대료 감면 혜택 등을 받기 힘들어 어려움이 더 크다.  한국인 고객들에 의존해온 베이징내 북한 식당도 코로나19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베이징 한인촌 왕징의 유명 북한음식점 옥류관이 안내판을 붙여놓고 영업중단에 들어갔다.  2020.07.06 chk@newspim.com

한국 교민 손님이 많이 찾던 왕징의 북한 식당 대성상관은 코로나 때문에 올초부터 장기간 영업을 중단해 오다가 지난 5월 아예 문을 닫았다. 또 왕징의 대형 북한 식당인 옥류관도 영업 중단에 들어갔다. 요식업체 관계자들은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며 특히 한국인 손님이 뒷받침 되지 않아 큰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한때 한국 교민 경제를 대표했던 왕징의 한 상가 밀접지역에는 요즘 출입문이 꽁꽁 잠긴 채  '임대' 안내판이 붙어있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한국인 고객 감소로 영업이 안돼 임대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임차인중에는 한국인 사업자가 거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왕징 자다오(望京街道, 왕징지역 사무기구)를 통해 들었다며 왕징의 등기 기준 한국인이 올초만해도 2305 가구에 5105명이었는데 지금은 약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이징 한인회 간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에 비해 자본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한국인 소상공인들의 영업기반이 크게 약화했다며 한식당과 한류 관련 상가의 운영 주체도 한국인에서 한족이나 조선족 등 중국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