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문소리가 영화 '세자매'로 '역시 문소리'라는 찬사를 재차 소환했다. 세자매 중 둘째딸로 나오는 문소리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아버지와 닮은 딸로 무한 공감대를 자극한다.
문소리는 19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세자매'에 출연한 소감과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승원 감독과 첫 만남을 떠올린 그는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만큼 이 영화에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오셨을 때 처음 만났어요. 독립영화의 밤 행사에 이승원 감독님 부부가 오셔서 저와 장준환 감독이 반갑게 인사를 했죠. '소통과 거짓말'에서 김선영 씨 연기를 워낙 인상깊게 보고 사적으로도 만나는 사이가 됐고, 감독님이 같이 작품하자고 하셨어요. 전작들을 봤지만 굉장히 가능성있는 분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평범한 이야기에서 그분 색깔이 잘 보일 수 있겠다 싶었죠. 저한텐 처음부터 둘째 역을 주셨어요. 사실 셋째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하하. 나도 저렇게 큰 소리치고 막 살아보는 역도 한 번. 배우로서 그런 역을 만나기는 어렵거든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21.01.19 jyyang@newspim.com |
문소리가 연기한 둘째 미연은 남부럽지 않게 살지만 끓어오르는 속내와 사정을 모두 숨긴다. 가식덩어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문소리는 "조금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처음엔 이 역이 반갑지 않고 저를 숨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사람 성격이 한 가지로 타입화하기는 어렵잖아요. 제 안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유 될 대로 되겠지 나몰라라 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걸 잘 못해요. 다 깔끔하게 마무리짓고 싶어하고 딱 맞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죠. 안그러려고 하지만 그런 구석이 있는 걸 알아요. 그런 부분이 미연이랑 닮았더라고요. 연기를 하는데, 나 너 모르지 않고 너같은 애 잘 아는데 그렇게 정은 안갔어요.(웃음) 어떻게 하지. 징글징글한 마음도 들었죠. 그래도 촬영이 다가오니까 무릎 꿇고 그냥 그 역할로 기어 들어가게 됐죠."
이 작품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이들의 상처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어져있고, 닮은 채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문소리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고 재차 이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흔치 않은 작품이고, 꼭 세상에 나왔으면 했어요. 큰 기획 영화들에서 이런 캐릭터와 이야기들을 선보이긴 어렵죠. 시나리오 초고 외엔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이 영화가 관객에게까지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 함께 고민해야 했어요. 벅차거나 힘들지 않았고 재미난 과정이었죠. 이 작품이 제작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김상수PD와 이승원 감독이 프로듀서 제안을 해주셨죠다. 함께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하고 회의를 하다보니 프로듀서로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같이 해보자고요.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알겠습니다. 그랬죠. 더 보탬이 되려고 몸으로도 뛰고 마음도 보태고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21.01.19 jyyang@newspim.com |
연기자로도, 프로듀서로도 활약했지만 사실은 연기 하나만 놓고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문소리는 "힘들다고 얘기하면 이것저것 많다"고 웃으면서도 "그래도 과정이 흥미진진했다"고 작업과정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세 캐릭터의 수위가 중요했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초반 30분 동안 느끼는 게, 일단 셋 다 평범해 보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갈수록 결국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게끔 해야 하니까 그게 어려웠어요. 처음에 이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을까. 나중에 수습이 안될 정도로 가면 안되는 거예요. 그런 밸런스를 잡는 게 어려웠죠. 왜 저러지? 궁금증은 자극하되 너무 멀리 가지는 않게끔요."
문소리는 직접 연기한 신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어렵게 골랐다. 베개 두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가 들리지 않게 포효하는 장면은 미연의 들끓는 속내와 서글픈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엄마를 본 딸과 울면서 끌어안는 이 신은 극중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힐 만 하다.
"시나리오에는 그렇게 쓰여있진 않았어요.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베개를 잘 정리하니까 '왜 저러나'하고 다들 봤대요. 미연이가 어디에도 자기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외로운 사람인 게 굉장히 극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 좋아하는 장면이죠. 미연이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겠죠. 노력은 하지만 어렵고, 정말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때마다 불현듯 다가오는 어릴 때의 기억들이 힘들고 그랬겠죠. 굉장히 가혹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그런 모습이 제게 비치고 아이들이 보게 되는 걸 보고 자괴감도 들었을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21.01.19 jyyang@newspim.com |
마지막 장면에서 셋째 미옥은 미연에게 '언니가 아버지랑 제일 닮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소리는 "사실 세자매가 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닮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자연스레 해당 신 촬영 당시를 떠올린 그는 "후시 녹음 때 회의해서 바꾼 대사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대사들"이라고 털어놨다.
"셋째가 술 많이 먹는 건 아버지 닮아서 그런 거죠. 미연의 눈빛이 돌아버렸을 때, 폭력적인 면도 아버지를 닮은 거고요. 누구한테 터놓지 못하고 답답하게 혼자 해결하려고만 하는 희숙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았겠죠. 우린 그런 걸 다 닮아가고 유전자로 연결되고 이어져있는 게 아닌가 해요. 체홉의 '세자매'를 보면 우리랑은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지' 하는 대사가 마지막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많죠. 한 마디로 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영화로 만들었어요. 하하."
문소리는 극중 미연이 집착하는 종교, 신앙이나 가정 폭력, 학대 같은 이슈엔 다소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든든한 울타리가 돼야 할 곳이 가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 위안과 위로가 되고 좋은 방향으로 가는 힘이 되는 게 종교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얘기했다. 이번에 좋은 기회를 만났던 것처럼, 문소리는 연기자로도, 프로듀서나 연출, 제작자로도 활약할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영화계가 많이 어려워요. 연출이나 제작 계획을 세우는 게 지금은 불가능하죠. 2년에 한번씩 연극도 하고 싶은데, '빛의 제국'이란 작품 유럽 투어가 예정돼있다가 다 미뤄둔 상황이에요. 연기도 하는 데까지 하고 싶고, 영화를 만드는 어느 과정이라도 좋은 기회로 참여하면 좋죠.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뭐든요. 장준환 감독은 지금 뭐 쓰는지 잘 몰라요.(웃음) 같이 하면 재밌겠지만 매달리고는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요. 앞으로는 캐릭터를 따내보도록 할게요. 지금까지는 찾아오면 고려해보겠단 입장이었는데 더 푸시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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