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해빙무드' 사우디, 러시아 공급 감소 시 증산 시사
OPEC+, 2일 러시아 배제 발표 가능성 낮아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 제재가 석유시장 다이내믹에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초래 중인 가운데 전문가들의 유가 전망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부분 금수 조치에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의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미국과의 관계 복원을 저울질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자국 이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현재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줄어드는 것이 전반적인 수급 균형과 유가에 미칠 영향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당장은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사우디도 일단 증산 카드를 내민 상황인 만큼 유가는 단기적으로는 상승 지지보다는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다.
◆ 증산 약속한 사우디
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섯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러시아의 원유 생산이 제재로 인해 급감할 경우 증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서방 동맹국들에 전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부근까지 치솟는 상황에서도 사우디는 석유 생산 속도를 높이라는 백악관의 요청을 거절해왔다. 연말까지 석유 수급이 위기 수준으로 타이트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적으로 금지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공급 부족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른데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를 완화하면서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사우디의 증산 결정을 서두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사건의 배후로 현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하며 금이 갔던 양국 간 관계가 최근 빠르게 해빙 무드로 변한 점도 증산 카드를 꺼내 들게 했다는 분석이다.
한 외교 관계자에 따르면 브렛 맥거크 미 국가안보회의(NSC) 중동 담당자와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 특사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최근 몇 주 사이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소식통들은 사우디가 바이든 행정부와의 화해 제스처로 증산 등 유가 안정을 위한 시장 신호를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압둘 아지즈 빈살만 에너지장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2.06.02 kwonjiun@newspim.com |
◆ 사우디-러 동맹 균열 가능성 낮아
한편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제기했던 OPEC+의 러시아 산유량 합의 배제 가능성은 일단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CNBC 등 주요 외신은 2일 예정된 OPEC+ 회의에서 러시아 배제가 공식 논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즉각적인 증산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2일 OPEC+ 회의에서 발표될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어떤 것도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OPEC+가 코로나19 팬데믹 초반 약속했던 증산 계획을 일단 고수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RBC 글로벌 원자재 전략대표 헬리마 크로프트는 "OPEC+가 당장 합의 배제라는 무리수로 러시아에 망신을 줄 것 같지는 않다"면서 "OPCE+는 러시아 관련 이슈를 천천히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압둘 아지즈 빈살만 에너지장관은 러시아를 여전히 OPEC+ 내 주요 동맹으로 보고 있음을 강조했다.
컨설팅기업 에너지 에스팩츠 소속 암리타 센은 "사우디와 미국 간 화해 무드가 형성돼도 사우디가 러시아에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 및 UAE 대표와 회동할 예정이라 회동 결과에도 관심이 집중될 예정이다.
유럽연합(EU)과 유럽 각국의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유가 상승 vs 하락 전망 '팽팽'
러시아를 둘러싼 글로벌 석유 시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문가들의 유가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일단 이날 사우디의 증산 계획이 알려진 만큼 단기적으로는 유가가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러시아 이슈와 별도로 씨티그룹은 120달러 수준의 유가는 고평가 수준이라면서, 유가가 70달러 부근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 모스 씨티그룹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씨티가 판단하는 석유 수요 전망이 현재는 일일 220만배럴 수준이라면서, 연초 전망치보다는 140만배럴 정도 줄어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석유 애널리스트 존 킬더프는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가 취해지긴 했으나 암암리에 시장에 꾸준히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중국이라는 와일드카드를 감안하면 유가가 현 수준에서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OPEC 역시 올해 일일 150만배럴의 초과 공급을 여전히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러시아를 배제한 나머지 산유국들이 추가 증산에 나선다 하더라도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오안다 선임 시장 분석가 제프리 할리는 러시아를 뺀 OPEC+ 나머지 국가들이 증산에 나서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지는 않겠지만, 정제유 공급이 여전히 타이트한 상황이라 가격이 100달러 밑으로 내려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ING그룹 상품시장 대표 워렌 패터슨은 "러시아 배제로 다른 산유국의 공격적인 증산이 가능해질 경우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다만 지난 몇 달 동안 OPEC의 움직임을 보면 앞으로도 큰 폭의 증산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가가 뛰는 상황에서도 사우디나 UAE가 크게 반응하지 않았었다면서, 가격이 더 크게 뛰지 않는 한 증산에도 큰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