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의사들의 미지급 수당 및 퇴직금 지급 청구 일부 인용
의사·의료법인, 민사채권 대법 첫 판단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의사의 임금·퇴직금 등의 채권은 상사채권이 아닌 민사채권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 의료행위에 대해 영리를 추구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취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퇴직한 의사들이 의료법인을 상대로 미지급 수당 및 퇴직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들의 수당 등 채권을 상사채권'이라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자판했다. 파기자판이란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하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제도다.
[서울=뉴스핌] 음압격리병동을 정리하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 |
산부인과 의사 A씨와 신경외과 의사 B씨는 C의료법인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018년 2월 근로계약기간 만료로 퇴사했다. 이들은 각각 96시간, 28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음에도 시간 외 근무수당과 이를 포함한 퇴직금 등을 받지 못했다며 C의료법인을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각각 미지급 시간 외 근로수당과 퇴직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A씨에게 1억6400여만원, B씨에게는 1억1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시간 외 근로수당에 대한 청구는 기각하고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과 퇴직금 차액 청구에 대해서만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작성된 임금계약서에 따르면 격주 토요일 근무로 매월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외 근로수당은 월 계약금액에 포함돼 지급되는 것으로 명시적인 합의를 했으므로 이로 인한 시간외 근로수당을 별도로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근로기준법에 따라 피고는 원고들에게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과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 미지급 퇴직금 등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퇴직일로부터 14일이 지난 시점부터 원심판결의 선고일까지는 상법에서 정한 연 6%의 비율을 적용하고, 그 다음날부터 변제완료일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의료법의 여러 규정과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의사나 의료기관을 상법에서 규정하는 상인이라고 볼 수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급여, 수당, 퇴직금 등은 상사채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상법상 지연이율을 적용한 원심의 판결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영리추구 활동을 제한하고 그 직무에 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며 의료행위를 보호하는 의료법의 여러 규정에 비춰 보면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활용하여 진료 등을 행하는 의사의 활동은 최대한의 효율적인 영리 추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해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인의 영업활동 및 그로 인해 형성된 법률관계와 동일하게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 내지 요청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퇴직일로부터 14일이 지난 시점부터 원심판결의 선고일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비율, 그 다음날부터 변제완료일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의사와 의료법인을 상인이라고 볼 수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퇴직금 등의 채권은 상사채권이 아닌 일반 민사채권이라는 점을 최초로 설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