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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헌트' 이정재 감독 "연기·연출 저도 하는데…용기 주고 싶어요"

기사입력 : 2022년08월04일 14:08

최종수정 : 2022년08월04일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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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정재가 영화 '헌트'로 첫 감독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사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향한 문제의식과 완성도 높은 액션, 고도의 심리전을 모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정재 감독은 3일 종로구 소격동 카페에서 영화 '헌트'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길었던 준비 과정과 결과물을 마주하는 소감을 얘기했다. 수 차례 포기하고 놓고 싶었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데서 그는 조금은 만족스러운 안도감을 표했다.

"영화 보신 분들의 평이 나쁘지 않아요. 첫 번째로는 우성씨와 제가 같이 출연하는 것에 반가움이 많은 듯해요. 그게 제일 기뻐요. 영화인들도 사실 '태양은 없다' 이후로 언제 또 너희 둘이 영화할거야, 같이 한번 찍고싶다는 분도 많았어요. 아직도 저희 둘이 뭔가를 한다는 것에 관심 가져주고 응원을 해주시는 걸 고스란히 느끼고 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의 감독이자 배우로 참여한 이정재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헌트'에서는 안기부 요원 박평우(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의심한다. 자연스레 영화를 관통하는 긴장감과 묘한 심리전이 이 영화의 주요 감정선과 톤을 이룬다. "난 네가 반드시 동림이라고 생각해" 등의 대사에서도 미묘하게 어긋난 듯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두 시간에 담아야 하는 대사와 장면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대사에서 느껴질 수 있는 의미와 뉘앙스를 더 복합적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간 영화에서 연기하면서 제가 늘 하고싶었던 거고, 한 장면이 단선적으로만 보이게 되는 것을 지양하고 복합적으로 보이게끔 시도해왔어요. 연기하며 고수해온 저의 스타일, 방식들이 글작업을 하면서도 반영됐죠. 한 신에서 요구하는 정보와 볼거리와 감정들을 다양하게 섞이게끔 자연스레 작업했어요."

이정재 감독에 따르면 '헌트'의 초고 판권을 구매할 당시엔 '남산'이라는 제목의 박평우 원톱 주연 영화였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 배우인 정우성과 함께 하고 싶단 생각에 박평우, 김정도의 투톱 구조로 시나리오를 직접 고쳤다. 당초 제작만 하려던 그의 생각과 달리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연출로 나선 데엔 긴 과정과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초고에서 주제를 고치고 싶었는데 그러다보면 상당 부분의 이야기를 수정해야 했어요. 그걸 해주실 감독님들을 찾았었고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함께하지는 못하게 됐었죠. 그러면서 이런 방향으로 갔음 좋겠다 하면서 글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시나리오화 됐어요. 주제가 바뀌면서 인물 구성과 관계도가 바뀌다보니까 이야기 전체가 바뀌었죠. 초고에선 평우가 원톱 주연이고 대학생 유정과 관계도 잠자리를 함께하는 설정이 있었어요. 방주경이란 역도 두 신 정도만 나오는 작은 인물이었고요.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하면서 주제로 가는 방향, 평우-정도 사이 텐션을 높이는데 집중하게 됐죠. 그 결과 지금의 '헌트'가 나왔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의 감독이자 배우로 참여한 이정재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특히 엄혹한 시절이던 80년대를 배경으로, 안기부 요원들이 등장하는 첩보물을 구상한 그는 주제의식을 강조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또 노골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는 소재를 첫 연출작에서 다룰 거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 근 몇년 동안에 이렇게 나라 전체가 양 극단으로 나뉘어 분쟁하는 모습은 아주 어릴 때가 아니면 잘 보지 못했던 현상이란 생각을 했어요. 누가 이렇게 나눠놨을까, 우리 가치관이나 신념이 누구에 의해서 생성된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분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죠. 왜 이런 문제를 갖고 왜 화합을 하지 못할까 주제를 잡게 됐어요. 더 이념적인 성격이 강한 군인쪽 인물과 북한쪽 인물을 설정하고 이념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가공해서 재생산하는 시대로 80년도를 가져왔죠. 초고에서 80년대 배경이었지만 현대 버전으로 바꾸는게 어떤가 해서 그 버전으로 쓴 것도 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 수정하는 기간동안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뉴스들을 보게 됐을 땐 다시 80년대로 가야겠다 맘을 먹게 됐죠."

연기자로만 영화 작업을 하다가 신인 감독으로 첫 연출작에, 무거운 주제까지. 당연히 부담스러웠을 법했다. 이정재 감독은 "감히 엄두가 안났었다"고 작업 당시를 떠올렸다.

"그래서 훌륭한 글을 쓰고 연출할 감독님들을 오래도록 찾았어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도 많이 했었고 중간에 너무 어려워서 포기도 수차례 했죠. 그래도 자료를 좀 더 찾고 신빙성을 크로스체크를 해가면서 '이런 뉴스들은 인물이나 상황에 잘 녹여낸다면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더 많이 찾아보고 기댈 곳을 찾으려 애썼죠. 안기부에서 당시에 어떤 일들을 중요하게 수행했는지, 또 실제로 80년도에 남산이나 일본 지부에서 활동한 실존 인물들 인터뷰를 계속 했어요. 영화 초반의 대통령이 당시 미국 순방 기록들도요. LA, 뉴욕, 워싱턴 계속 다니면서 강렬하게 시위를 했던 사진들을 봤을 땐 이건 영화에 잘 좀 써야겠다 싶었죠."

'헌트'는 현실과 완전히 부합하진 않지만 현실이 반영된 부분도 있다. 이정재 감독은 "제일 중요한 건 이 두 인물이 갖고 있는 목적성이 과연 정의로운가 또 그 정의로움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가였다"고 부연했다. 안기부 요원들이 주축인 첩보물에서 만나는 액션과 80년대로 상정한 배경 사이의 상충도 늘 선택이 필요한 문제였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의 감독이자 배우로 참여한 이정재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지금 80년대 배경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상당 부문을 새로 지어야했고 미술적 세팅을 해야 했죠. 단 한 곳도 쉽게 촬영한 장소가 없었어요.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미술적으로 혹은 카메라 앵글을 어느 정도 화각을 놓고 촬영할지에 대한 회의를 끊임없이 했죠. 액션을 한정된 실내 공간에서만 하면 굉장히 답답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요. 초반 부분은 요 정도의 액션으로, 두 번째는 조금 더 임팩트 강한 장소, 그 뒤로는 아이디어적으로 눈에 띄는 액션, 또 스케일을 겸비한 액션들을 선보이자. 이런 것들을 초기 시나리오 작부터도 잡아나갔죠. 그래야 미리 스태프분들이 보시고 준비를 하시거나, 안되는 건 분명히 주지시켜 주실테니까요. 그런 과정들이 굉장히 반복적으로 이뤄졌어요."

이정재 감독은 '헌트'가 여러 모로 배우 이정재로선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작업이었음을 인정했다. 배우로서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었고, 주제, 또 만듦새와 완성도에 대한 고민과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맥락에서 동료 정우성 역시 같은 우려를 했기에 삼고초려 끝에 함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극의 주제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엔딩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슬며시 스며들어 전달될까 고민했죠. 우성씨도 마음으론 '연출을 결심했으면 연출만 해도 쉽지 않은 건데 우리 둘의 출연에 대한 갈증과 충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였죠. 또 다른 큰 하나의 숙제니까요. 다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건 사실상 너무 욕심 아니냐, 너무 과한 거 아니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저도 많은 감독님을 만났던 거고요. 어쨌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은 시나리오로 선택을 받게 돼요. 워낙 친분이 있는 건 많은 분들이 아시다보니 시나리오나 프로젝트 자체가 미흡하더라도 너희는 친하니까 그냥 하는 거잖아, 하실 수도 있어요. 저흰 절대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웃음)

지난해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전부터도, 이정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이후 꽤나 다른 주목도와 삶을 또 접하게 된 이 시점에서 이정재는 자신의 할 수 있는 역할을 소박하게나마 언급했다.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고, 바로 '헌트'로 칸에 입성하는 과정엔 운과 타이밍이 따랐지만 분명히 이정재 감독이 영화계에서 지어온 발자취가 결실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 기회와 용기를 모두가 갖길 바랐다. 

"예전엔 연기자가 무슨 연출이야, 연출자가 무슨 제작이야 하는 얘기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멀티로 할 수 있는 때가 됐기 때문에 충분히 다 할 수 있단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긴 했어요. 이제는 '저도 하는데 누군들 못하겠나' 싶어요. 상 받고 문자 오면 '이제 당신 차례야'라고 말해요. 내가 잘나서, 잘할 수 있어서 한 게 아니라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게 꽤 중요한 우리 사회의 큰 희망 혹은 용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해요.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용기를 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문화가 영화계 안에서 먼저 시작돼서 많이 확산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게 제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jyy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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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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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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