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에 공 넘어가…美 통해 日 푸시해야"
"하야시 발언 핵심, 日 기업 韓 재단 기부 허용"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정부가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한 이후 한일관계 전망에 대해 '입구론' 측면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출구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래의 양국 관계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본 전문가인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뉴스핌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발표한 해법이 일본 정부나 기업의 성의 있는 조치를 전제로 한 것이라 입구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 불만이 있겠지만 출구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의 조치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SNS] 2022.11.13 photo@newspim.com |
조 교수는 "한국 정부 발표에 대해 일본 정부나 기업들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환영한다고 얘길 했는데 일본 정부가 가만히 있고 아무 것도 안 하면 우리 얼굴이 뭐가 되냐고 할 테고, 그거를 더 보여줄 필요가 있으면 5월 히로시마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때 만나서 일본 쪽에 좀 더 푸시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우리 정부도 그걸 계기로 미국한테 푸시를 해서 일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입구론으로 보면 일본 정부의 입장이 우리로서는 좀 불만스럽지만 출구론을 언급하기에는 아직 성급하다고 본다"며 "우리는 이거 하면 일본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정부 하고 일본 정부 입장이 서로 다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한 "일본 기업 입장에서도 자국 정부랑 사법부의 입장을 따르는 게 맞는 거다. 우리 입장에선 정부의 입장과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는 게 맞는 것"이라며 "근데 양측이 충돌하면 어떻게 하나. 싸우나? 협의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피력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이 이날 한국 정부가 발표한 해법안을 환영한다면서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선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미적지근하지만 하야시 외무상 발언의 핵심적인 내용은 행안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용인하겠다는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조 교수는 "하야시 발언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고 그에 대해서 호응하겠다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은 원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재단에 대한 기부 참여에는 소위 말해서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 등 과거에 강제동원을 했던 피고기업들뿐만 아니라 강제동원과 관계 없는 다른 기업들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연히 그러면 액수가 어느 정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 정부가 한국 재단이 피해자 배상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을 당장은 말 못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길을 열어 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평가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안 발표에 대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던 한일 관계를 건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반성,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 등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하야시는 외무상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 활동에 대해서는 "정부는 특별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며 용인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한국 정부가 요구한 일본 측의 사과와 관련해선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직접 자금을 출자하지는 않지만 과거 정권이 표명했던 '반성과 사죄'를 계승할 방침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 완화에 대해서는 "강제징용 문제와는 별개의 논의"라고 일축했으며, 한일 정상 간 외교 일정에 대해서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조 교수는 "이제 말 그대로 일본 정부에 공이 넘어갔다고 생각한다"며 "일본 쪽에 공이 넘어가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아무 것도 안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 역대 정부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애둘러 말했지만, 윤석열 정부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걸 구체적으로 기시다 총리가 자기의 말로 어떻게 얘기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윤석열 정부가 다음달로 예상되는 한미정상회담과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때문에 서둘러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그런 것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이번 달 안에 한일 정상회담 하겠다는 얘기도 있고 하니까"라고 답했다.
다만 "이번에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에선 기시다 총리가 양자회담 하기도 바쁠 것"이라며 "한일회담을 한다 하더라도 느긋하게 앉아 가지고 얘기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번 G7은 개최 장소가 히로시마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효과도 중요하다"며 "원폭 피해자가 일본인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았는데 원폭을 투하한 가해자 미국 대통령과 피해자인 일본과 한국 정상이 회담을 할 때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헌화를 했지만 그때는 아베 신조 전 총리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어떤 형식으로 이벤트를 할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관전포인트를 제시했다.
한일 정부가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을 통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해 운영하는 방안을 잠정 확정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선 "그 자체는 한일 관계를 위해서 좋은 것"이라며 "이미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 사이에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위한 그런 교류가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기금이 강제동원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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