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과 톡톡 튀는 깃발 문구로 바꾼 광장 문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갈 세상 기대하게 만들어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윤석열 탄핵'을 외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의 풍경이 젊은 세대의 대거 등장으로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과거 탄핵 집회 때 볼 수 없었던 MZ들이 있었다. 13일과 14일 20~30대들이 몰려나온 국회앞 광장은 세월호 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학습한 세대들의 분노가 넘쳐났다. 그러나 무겁고 진지한 탄핵 집회라기보다는 톡톡 튀는 민주주의의 축제와 같았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한 시민이 탄핵가면을 쓰고 야광봉을 흔들고 있다. [사진 = 뉴스핌DB] 2024.12.16 oks34@newspim.com |
가장 눈에 띄는 건 응원봉과 깃발이었다. 응원봉은 아이돌 그룹부터 조용필의 응원봉까지 다양했지만, 저마다의 개성을 표현한 깃발은 달라진 세대들의 유머와 재치가 넘쳐흘렀다. 개성 만점 깃발에 즉흥적인 작명으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연맹,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북태평양 해저기지 뜨개 모임,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등 유머러스한 깃발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애묘인들의 기지가 발휘된 깃발도 많이 눈에 띄었다. 전국 치즈냥 연합회,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 전국 까만 고양이 연합회, 전국 고양이 집사 노동조합, 전국민주묘(猫)동조합총연합회 등 범상치 않은 작명 솜씨가 돋보였다. 강아지 실외 배변 산책 노조, 앵무새 피해자 연합도 있었다.
시민 모임을 표방한 깃발들도 많았다. 화분 안 죽이기 실천 시민 연합, 돈 없고 병든 예술인 연합, 걸을 때 핸드폰 안 보기 운동본부, 전국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본부, 1인 가구 행성 연합 등이었다. 먹거리와 관련된 깃발들도 많았다. 사단법인 와식(臥食) 생활 연구회, 직장인 점심 메뉴 추천 조합, 겨울 제철 대방어 시식 협회, 전국 삼각김밥 미식가 협회, 한국인 밥상머리 예절 연구소, 제로칼로리 스팸 추진 협회 등이 눈에 띄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곰인형 분장을 한 시민이 탄핵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 뉴스핌DB] 2024.12.16 oks34@newspim.com |
이 밖에도 한국 멸종 위기 야전 전신갑옷 보호 협회, 정신건강의학과 10년 개근 환자 협회, K-승질머리 연합, 전국 집에 누워 있기 연합, 전국 수족 냉증(冷症) 연합, 사립 돌연사 박물관, 지구 행성 부랑자 연합, 전국 얼죽아 협회, 안주 보장 이사회, 전국 장롱 면허 협회, 전국 거북목 협회 등 깃발을 감상하고 웃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무영 영화감독(동서대 교수)은 "젊은 세대들이 기존의 무겁고 엄숙했던 시위 문화를 단숨에 바꿔놨다"면서 "특히 유머러스한 깃발과 현장에 맞게 개사한 노랫말을 듣다 보면 젊은 세대의 창의성이 이 나라를 바꿔 나갈 것이라는 듬직한 믿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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