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분식 등 19개 혐의 전부 무죄…"공소사실 입증 안돼"
'회계처리 위반' 행정법원 판결에도 "합리성 존재" 판단
이재용측 "현명한 판단 감사…본연 업무 전념하길 희망"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항소심 선고를 열고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며 1심과 같이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도 무죄를 받고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5.02.03 leemario@newspim |
재판부는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과 시점을 선택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피고인들이 모직 주가는 고평가된 반면 물산 주가는 저평가된 것이라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미전실의 사전 검토는 합병에 관한 구체적·확정적 검토라 보기 어렵다"며 "삼성 측이 안진회계법인에 주가 기준 합병비율에 맞출 것을 요구했다고 보기 어렵고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보고서가 조작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사회 이후 주주총회에 이르기까지 피고인들이 합병 성사를 위해 수립한 계획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의 통상적이고 적법한 대응방안"이라며 ▲거짓 정보 유포 ▲중요 투자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국민연금 찬성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검찰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각종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항소심의 주요 쟁점이 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삼성바이오가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증선위가 제재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도 삼성바이오가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과정에서 일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며 이 회장의 형사재판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2014 회계연도 삼성바이오 재무제표 거짓 공시, 2015 회계연도 삼성바이오 재무제표 회계분식과 관련해 행정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판단 내용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재판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내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면서도 "그 처리 결과는 삼성바이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회계기준에 비춰 공시가 일부 미흡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를 회계처리에 관한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에게 과실을 넘어 고의가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수사의 어려움과 한계를 보더라도 이런 중요한 범죄사실과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안에 대해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2019년 5월경 압수한 삼성바이오 18테라바이트(TB) 용량의 백업 서버와 에피스 네트워크 결합 스토리지(NAS·Network Attached Storage) 서버, 항소심에서 새로 제출한 외장하드 증거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등 절차나 실질적인 참여권 보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선고 직후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의 피해를 예상 못 했나' 등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차량을 타고 법원을 떠났다.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제는 피고인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회장은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관여하고, 회계방식 변경을 통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당시 부회장이던 이 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도해 이른바 '프로젝트 G'라는 승계 계획안을 만들어 각종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이 과정에 이 회장이 관여했다고 봤다.
1심은 지난해 2월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분식회계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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