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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25년 교사 출신' 野 정성국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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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던 은사님처럼, 교육자 마음으로 정치할 것"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신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죠."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시절부터 교육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5일에 촬영됐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정 의원은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상식과 정의'에 대해 강조해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으로 지낼 당시에는 교권 회복에 앞장섰고,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 의원은 "교권 회복에 대한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되도록 꼼꼼히 챙기겠다"며 "유보통합 문제나 고교학점제 등 교육 현장에 혼란을 주는 부분들도 교육부와 함께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71년생인 정성국 의원은 부산중앙고와 부산교대, 부산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산 토현초·성북초·동원초·남천초·교리초·해강초 등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연구이사와 부산초등영어교육연구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정 의원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75년 역사상 두 번째 평교사 출신이자 최초의 초등교사 출신 회장으로 선출됐고, 제22대 총선에서 부산진구갑 지역구 국민의힘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며 당 내에선 조직부총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부산 진구갑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정성국 의원, 이하 정 의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신 기자)
부산 영도구에서 태어나셔서 부산교대에서 영어 교육학 학석사 전공하셨습니다. 의원님 지역구이자 고향인 부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실 것 같은데 부산은 의원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태어난 곳이라는 것은 의미가 크잖아요. 제가 부산 이제 지금 영도구 영도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이제 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제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제 수영구라고 하는 그쪽으로 이제 이사를 가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는 이제 수영구나 이제 해운대구 이렇게 남구 쪽으로 해서 이렇게 쭉 제가 이제 살았지만 저의 어릴 적의 추억은 사실 영도구 쪽에 있는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죠. 지금 저희 외삼촌이나 이모도 사실 지금 영도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어릴 적에 그 기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죠. 한 번 이런 적은 있었어요. 저희가 이제 이사를 가고 나서 제가 대학생이 됐을 때 친형하고 저하고 우리 옛날 집이 옛날에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이 궁금해서 온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없어져 버린 걸 알면서도 다시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 이 골목까지 있었고 이게 이제 없어졌구나 왜 지금 거기 아직까지 우리 외삼촌이 살고 계시니까. 사람이 역시 어릴 적 기억은 참 소중하죠.

우스갯소리로 제가 이번에 영입 인재로 국민의힘 들어왔을 때 어떻게 보면 그 지역에 선거를 준비하던 분들이 봤을 때는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1호 영입 인재라고 제가 들어오니까 부산에 반드시 이 지역구로 오는데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영도구를 넣는 기자들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그곳에서 태어난 곳이고 이러니까 영도구 쪽으로 또 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기사도 나온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참 지금도 한 번씩 가는 일이 생기는데 옛날 추억들이 좀 많이 올라옵니다.

-(신 기자)
의원이 되시기 전에 부산에서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잖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꿈이 초등학교 교사셨는지

▲(정 의원)
사실 제가 어릴 적부터 선생님의 꿈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나중에 무엇이 되어야 되겠다고 확실한 마음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였거든요.
우리가 뭐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 된다 했다가 뭐 국회의원 된댔다가 의사가 됐다가 자꾸 바뀌잖아요.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이제 마음이 올라오는 부분에서 장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 될 때 80년대 서울 올림픽 하고 할 때 있지 않습니까? 1988년 서울올림픽 하고 할 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거든요. 그때만 하더라도 이제 노태우 정부가 이제 시작되는 그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을 제가 고등학교 때 겪어서 정치적인 경향을 많이 지켜봤는데 그때 제가 봤을 때 그때 제 꿈이 이제 군인이 장군이 되고 싶다 목표가 이제 어린 마음에 별 4개를 달고 있는 4성장군이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만 하더라도 육군 사관학교나 이런 데는 굉장히 또 인기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북한과의 관계나 이런 걸 봤을 때 우리 군의 중요성이 굉장히 많이 강조되던 때 아니었습니까?
내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서 이 나라를 지키고 하는 그런 어떤 그런 마음이 고등학교 때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이제 87년에 6·10 항쟁 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군정이라 해가지고 좀 비판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에서 우리 군이 바르게 가는 군,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좀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당시 때 제 공부 실력이 뭐 그렇게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역사를 한번 실패하고 역사를 실패하고 좀 좌절하고 있을 때 사촌 누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좀 너무 크게 좀 꿈을 꾸고 이러다 보니까 사촌 누나가 이제 그때 한번 위로를 하시면서 군인도 좋은데 나는 우리 성국이가 선생님이 교육자가 되는 게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저희 형제들도 스타일이나 이런 모습이 선생님보다는 뭔가 좀 이런 군인 이런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누나가 그런 말을 할까 이랬는데 모르겠어요. 어떤 모습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형제들도 그때 제가 이제 교대를 가게 되니까 결국 교대를 갔잖아요.
가게 되니까 그때부터 무슨 말이 나오냐면 잘 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왜 일단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고등학교 때도 보면은 그 친구들 그때는 이제 학원이 없었거든요.
우리 학원을 갈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러면 친구들이 이제 공부할 때 잘 모르고 이런 거 있으면 서로 물어보잖아요.
네 근데 제 친구들이 어떤 말이 좀 있었냐 하면 제가 설명을 잘한대요.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설명을 잘한다는데 친구들이 좀 오더라고요.

또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너무 보람 있는 일이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셨거든요. 이홍렬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지금은 퇴임을 하셨는데 제가 평생을 존경하는 은사님이십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실 한 반에 605명씩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쓸 수 있는 교육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선생님들도 월급도 작았지 또 이런 처우도가 약하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그런 상태고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던 이홍렬 선생님은 제 인생을 바꾸신 분이었어요. 정성국이라는 사람의 어떤 자존감을 세워주신 분이거든요. 공정한 선생님이셨어요.

그전에는 이렇게 어린 마음에도 보더라도 좀 차별이 보이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아마 지금 제 나이에 되는 분들 다 이해하실 것 같아요.
좀 선생님이 잘 봐주는 학생이 있는 것 같고, 왜 저 반장은 야단을 안 치지 뭐 이런 것도 있는 것 같고.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학생은 더 눈여겨보게 되고. 그런데도 우리 이홍렬 은사님께서는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시고 너무나 이렇게 학생을 아끼시는, 때로는 엄격하셨고 저도 그때 막 손바닥 맞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손바닥 맞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홍렬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구나를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은사님이 제가 또 교대에 갔다는 말씀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셨고 그 당시 때의 이홍렬 선생님은 장학사가 되시고 이러셨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우리 이홍렬 선생님처럼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중에 또 어찌 보면 교육계에서 또 더 큰일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면서 그런 이유들이 다 이제 합쳐지면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교대도 가게 되었고 교대를 이제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면서 한 25년 정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신 기자)
의원님께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뿌듯했거나 보람 있던 적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정 의원)
6학년을 5번을 했는데 학부모님들이 졸업할 때 다 오잖아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 이제 우리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운다면서 막 그러는데, 학생들을 떠나보낼 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서 학부모님들께서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참 잘 지냈고 아이들을 참 사랑했구나 이런 걸 좀 느끼실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학년이 바뀌면 학생을 보내잖아요. 한 번은 제가 교리 초등학교에 있을 때 5학년을 했는데 마지막 날 이제 끝나고 이제 학생들을 이제 종업식이라 하죠.
보내고 이제 혼자서 굉장히 아쉽고 슬픈 마음이 있는데 옆 반 학생이 쫓아와가지고 올라와가지고 선생님 지금 빨리 1층으로 내려가라더라고요.

"왜?" 그러니까 선생님 반 학생들이 안 가고 계속 울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내려갔더니만 우리 학생들 열몇 명이 거기서 막 서서 안 가고 막 울고 있는 거예요.
1년마다 헤어짐이 참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우리 제자들이 지금도 다 커서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또 자기의 삶을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기억들이 참 생생하고 또 마지막 하나는 제가 이제 제가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사회 교과서가 역사가 들어 있거든요.
그 시간에 제가 역사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동영상도 보여주고 너무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수업하다가 이렇게 사회 다른 거 공부하면 좀 딱딱한 내용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학생이 이렇게 딱 해요. 팻말에다가 '역사 특강' 딱 적어가지고 이렇게 들더라고요. 선생님 지금 수업이 따분하고 좀 내용이 어렵고 한데 선생님 역사 특강 해 주세요. 이순신 이야기해 주세요 막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그래 그럼 이 수업 잘 마치고 나서 선생님이 또 한번 해줄게 이래가지고 학생들하고 옛날에 우리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을 우리가 이야기하면서 또 우리 예전에 보면 참 예전에는 역사 드라마가 참 많았잖아요. 그런 장면들이 참 좋은 게 많거든요. 그 불멸의 이순신 같은 참 떠오를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 장면을 학생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 그때로 한번 돌아가 보자. 타임머신 타고 우리가 지금 저기 한산도 대첩을 우리 산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저기 우리 아빠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러면 아이들이 완전히 그게 심취를 해버리거든.

-(신 기자)
그렇죠. 몰입도가 높아질 것 같아요.

▲(정 의원)
그런 상황에서 왜 장군이 저런 판단을 하셨을까 왜 리더의 역할이 저렇게 중요할까 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했을까 뭐 이런 이야기 왜 사육신이 어린 12살의 단종을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목숨을 바쳤을까 선생님도 저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근데 우리가 저 정신만큼은 배워야 되지 않겠나 상식과 정의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받고 있던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보낼 때 항상 역사에서 저한테 감동받았던 부분들을 편지로 쓰더라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학생들의 내면에 인성 교육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인성 교육이 도덕책 가지고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생각해요.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수업이 될 수 있다면 저도 더 노력을 했어야 되지만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아이들과 좀 많이 공감이 되지 않겠나 그런 게 기억이 좀 많이 남아요.

-(신 기자)
38대 한국교총 회장으로 당선 되셨을 때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는 최초 당선이었습니다.
▲(정 의원)
75년 만에

-(신 기자)
아이들에서 교육 현장의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회장으로 지내시면서 가장 크게 바꾸고 싶었던 교육 현장이나 문제점이 있으셨다면

▲(정 의원)
현장에 있으니까 좀 아쉽고 개선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선생님은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수업보다 행정 업무가 더 강조되는 그런 모습이라든지 그다음에 선생님들이 좀 소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시작하고 뭐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알면서도 그거를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교장 선생님이 되더라도 그 학교 안에서는 좀 변화를 줄 수 있겠죠.
근데 전국에 있는 만 2000개 학교 중에 1개 학교의 역할일 수밖에 없잖아요.
과연 내가 어떤 역할을 했을 때 이 현장에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들 또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데 좀 스스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이제 제가 한 40대가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진로가 걸리니까. 진로라는 의미는 내가 과연 교장 교감 이렇게 승진을 하는 길로 가는 게 맞느냐 어떤 분들은 승진 준비하면서 교총 회장 하면 안 되나 (했는데) 이 말은 사실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게 그 교총의 구조가 대학 교수가 대학 총장이 회장을 거의 다 했죠. 이 구조를 깨는 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고 봤거든요.

저희 교원들이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장이라 하더라도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수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이 돼 버리잖아요. 교수는 좀 어찌 보면 스승의 개념이 돼버리는 그런 게 있다 보니까 대학 교수 정도, 대학 총장 정도 돼야 교총장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인식들을 갖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그래서 이런 부분에 문제점을 좀 많이 가지고 우리 사원들 초중등 교육에 있는 교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결국 교총회장이 된다든지 또는 교육감이 된다든지 이런 방법밖에 없잖아요.

교육감을 하는 부분도 어찌 보면 시도의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을 좀 나름 좀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교원 단체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거는 한 번 스스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 거죠.

평교사로서 도전하는 것이 어찌 보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확고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교사가 80%를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 교사들이 밀어준다면 내가 충분히 대학 교수와 경쟁할 수 있겠다 생각을 한 거죠.

결국은 그때 교총회장이 됐을 때 꿈은 교권 회복이었죠. 다른 거 다 떠나서 교권 회복이 1위였고 그다음에 행정 업무 경감이라든지, 교원들의 처우 개선 이런 쪽으로 실질적으로 해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회장 되고 나서 1년 후에 서이초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서이초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저는 많은 자리에서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안 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서이초 사건이 딱 터지고 나서 많이 바뀌었잖아요. 우리 국민들도 선생님들을 응원해 줬잖아요. 이거는 아니다. 학생이 모기에 물렸다고 민원 넣는 이런 세상은 있을 수가 없다. 본인이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 아기가 2명밖에 없어도 아기가 모기에 물리잖아요.

근데 20명 넘는 학생을 가르치는 그런 정도로 극단적인 이 교실이 돼 버렸거든요.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만 듣고 선생님을 신고해 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그때 서이초에 비극이 생겼는데 그래도 우리 교총이 나름 좀 주도적인 역할을 많이 해서, 교권 5법을 통과시켜서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는 좀 선생님들에게 어떤 무분별한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 여부로부터 조금 어느 정도는 방어를 가질 수 있는 좀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행정 업무도 지금 많이 경감을 시키는 쪽으로도 많이 좀 발전이 됐습니다. 교원의 처우 개선들도 지금 담임 수당, 부장 수당도 좀 오르면서 개선이 되고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성과를 이루었다고 봐요.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국민의힘에 영입이 되는 또 이유 중에 하나였거든요.

-(신 기자)
지금 교육위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가장 크게 좀 중요하게 보시는 부분은 어떤건지

▲(정 의원)
첫째는 이제 교권 회복에 대한 부분.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될 수 있도록 좀 더 현장에 와닿을 수 있도록 더 꼼꼼히 챙겨야 되는 상황이고요.
지금 현재로서 좀 중요한 거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이 부분도 앞으로 좀 갈 길이 있습니다. 더 준비가 잘 돼야 되고요.

요즘 또 문제가 되는 게 고교 학점제입니다. 듣기는 좋죠. 고교 학점제 이러니까 대학교처럼 고등학교도 학점이 있으면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고 자기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이런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굉장히 현장에 지금 많은 혼란을 주고 있고 어려움을 주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고교 학점제 과목이 많아지니까 본인이 가르치는 과목 말고 다른 과목을 가르쳐야 되는 일인데 이게 전공을 했다기보다는 좀 부전공이라든지 또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나서는 좀 이 과목만 가르치면 되니까 안 가르쳤던 과목들을 갑자기 가르쳐야 되는데 선생님 한 분이 두세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이제 일상화돼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상당히 어려운 게 가르치는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수행평가도 해야 되고 지필평가도 해야 되고 관리도 해야 되는데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상담도 또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이런 문제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학생이 최소 성취 기준을 이렇게 도달하지 못하면 유급 제도가 있어가지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을 유급한다는 게 이게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과연 진로와 적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취지하고 좀 다르죠.

그래서 성취 기준을 도달을 못하는 학생을 보충 지도를 해야 되는 이 부담까지 선생님들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 국회 교육위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을 이제 해야 되는 교육부와 함께 개선하고 획기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되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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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공동명의 절세'도 옛말?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셈법이 세제개편을 계기로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절세 수단으로 활용돼 온 공동명의가 제도 변화에 따라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택 보유 형태에 따른 세 부담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명의 따라 달라지는 종부세…입법예고에 반발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세제개편안으로 공동명의 1주택자의 종부세 계산법이 달라지면서 명의 형태와 실제 거주 여부에 따른 세 부담 격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같은 한 채를 보유하더라도 단독명의인지 공동명의인지, 공동명의 특례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공제액과 세액이 달라져서다. 기존에 절세를 위해 선택했던 명의 구조가 세법 변화에 따라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주택 수 중심이던 종부세 체계를 주택가격과 실제 거주 여부 중심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거주 1세대 1주택자의 기본공제는 현행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높이는 반면 비거주 1주택자는 9억원을 적용한다. 1주택자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70%가 적용된다.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는 지분별로 각각 종부세를 내는 방식과 부부 중 한 명을 1세대 1주택자로 간주하는 공동명의 1주택 특례 가운데 유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특례를 택하면 단독명의 1주택자와 마찬가지로 실거주 여부에 따라 14억원 또는 9억원의 기본공제를 적용받는다. 반대의 경우 부부가 각자 보유 지분에 대해 별도의 납세자가 돼 종부세를 계산한다. 결국 실제로는 같은 집 한 채를 보유하고 있어도 명의와 특례 선택에 따라 적용되는 공제 구조에 차이가 있다. 비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가 9억원으로 낮아지면서 공동명의 일반과세가 더 유리해지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공동명의자가 1세대 1주택자와 다른 과세체계에 놓이면 오히려 불리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납세자들의 불만은 실제 보유주택 수보다 명의의 형식에 따라 과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집중돼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 내 종부세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총 3207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공동명의와 관련한 의견은 29건으로 전체의 약 0.9%다. 의견 제출자 A씨는 "부부 공동명의는 공정시장가액비율 80%, 단독명의는 70%를 적용하는데 공동명의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며 "그냥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제출자는 B씨는 재산세와 종부세의 기준이 다른 점을 문제삼았다. 그는 "재산세는 이미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에게 1주택 기준을 적용하면서 종부세는 명의가 2인이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세제 간 엇박자"라며 "집이 두 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 채인데 부부가 공동명의로 등기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종부세만 실거주 여부와 명의 구조에 따라 과세 방식이 달라지면서 납세자가 체감하는 제도 간 차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거주냐 비거주냐…같은 집인데 수백만원 차이 명의 방식에 따른 세액 차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부부가 주택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한 것으로 가정해 반포자이 전용 84㎡의 보유세 변화를 분석했다. 세액공제는 적용하지 않았고 2027년 공시가격 상승률은 올해 상승률의 절반 수준으로 가정했다. 분석 결과 반포자이 전용 84㎡ 공동명의자의 보유세는 2026년 1171만원에서 2027년 실거주할 경우 1744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1년 만에 573만원, 48.9% 증가하는 수준이다. 같은 공동명의라도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을 경우 증가폭은 더 컸다. 비거주 공동명의자의 보유세는 2027년 2183만원으로 계산돼 올해보다 1012만원, 86.4% 급증했다. 같은 주택과 동일한 지분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거주 여부에 따라 2027년 세 부담이 439만원 벌어지는 셈이다. 공동명의는 그동안 종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1주택자는 부부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면 각각 공제를 받을 수 있어 공동명의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법이 바뀌면서 기존에 유리했던 명의 구조가 예상치 못한 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장원 법무법인 리치 세무사는 "1주택 공동명의는 각각 종합부동산세 공제를 받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 유리한 편"이라면서도 "세법이 바뀌면 유리하다고 판단해 선택했던 공동명의가 갑자기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수가 늘어나면 명의 구조에 따른 차이는 더 복잡해진다. 이 세무사는 "부부가 각각 주택 한 채씩 온전히 갖고 있으면 각각 1주택자로 세금을 내지만 2채를 50%씩 갖고 있으면 각각 2주택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며 "유리하다고 해서 공동명의를 했는데 갑자기 세법을 바꿔버리면 곤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택을 취득할 당시의 세제상 유불리를 고려해 결정한 명의 구조가 이후 제도 개편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면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온다. 같은 주택을 계속 보유하더라도 거주 여부와 명의 형태, 특례 신청 여부 등에 따라 세 부담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과세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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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H3 9호기 발사 성공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의 차세대 주력 대형 로켓 H3 9호기가 '일본판 GPS' 역할을 하는 준천정위성 '미치비키' 7호기를 싣고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11일 오전 4시23분께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3 9호기를 발사했다. H3 9호기는 발사 약 30분 뒤 탑재한 미치비키 7호기를 로켓에서 분리해 예정된 궤도에 투입했다. 이번 발사는 지난해 12월 H3 8호기 발사 실패 이후 약 8개월 만에 이뤄진 대형 인공위성 발사다. H3 9호기는 당초 올해 2월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2월 발사 실패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이 연기됐다. 미치비키는 일본 내각부가 운용하는 측위위성으로 미국의 GPS를 보완해 고정밀 위치정보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GPS의 위치 측정 오차가 약 10m인 데 비해 미치비키를 활용하면 수십㎝ 수준까지 오차를 줄일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농기계 무인운전 등 정밀한 위치정보가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일본은 일본 상공과 호주 대륙 상공을 '8자' 형태로 도는 준천정궤도 위성 3기와 지상에서 항상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적도 상공의 정지궤도 위성 2기 등 모두 5기의 미치비키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GPS 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으로 고정밀 측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미치비키 7기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2026년도 중 7기 체제 구축을 목표로 했지만, 지난해 12월 H3 8호기 발사 실패로 계획이 지연됐다. 일본은 2031년도와 2032년도에 각각 2기씩 추가 발사해 7기 체제를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H3 로켓은 JAXA와 미쓰비시중공업이 2014년부터 개발한 일본의 차세대 주력 발사체다. 2023년 초호기 발사 실패 이후 2~5호기 발사에 잇따라 성공했지만, 지난해 12월 8호기 발사에서 다시 실패했다. 이번 H3 9호기의 성공은 일본이 대형 위성을 우주로 운송하는 사업을 다시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은 앞으로 화성의 위성을 탐사하는 'MMX' 탐사선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자를 운송하는 보급선 'HTV-X' 2호기 발사도 예정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goldendog@newspim.com 2026-08-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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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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