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라이브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9회 소련 군정 "현대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동시에 소련과 만주 국경선을 넘었다. 소련 해군 태평양함대 항공기는 한국의 나진, 청진 등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전투부대→군사위원→각 분야 전문가→소련계 한인 집단 순으로 북한으로 들어왔다.

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은 치스챠코프 대장이 지휘하는 소련 제1극동방면군 소속의 제25군이었다. 5개 사단, 1개 여단 12만여 명이었다. 그 밖의 전투부대는 소련 해군 태평양함대 예하 부대 3만여 명이었다. 총병력 수는 18만여 명이었다.

소련은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내세워 수립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소속위원들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소련군의 북한 지역 진입은 1945년 8월 15일부터 8월 17일 사이에 빠르게 이루어졌다. 함경남도에 소련군이 최초로 도착한 것은, 1945년 8월 21일이었다. 동해안으로 흥남에 상륙한 소련군 선발대 1개 여단은 전차를 앞세우고 다음 날 함흥까지 진출하였다.

평양에 소련군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5년 8월 24일이었다. 치스챠코프 대장은 평양 도착 연설에서 "소련군은 정복자가 아니라, 해방자로 조선에 왔다. 소련 체제를 조선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 인민이 조선의 주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치스챠코프 대장은 이어 1945년 8월 26일 조만식, 현준혁, 조선총독부 평양 주재 관리 요원을 모아 놓고 "1945년 8월 26일 20:00부로 평안남도에 대한 일본의 행정은 없어졌다.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안남도 인민위원회가 일본 행정권을 인수한다. 모든 기관은 인민위원회가 접수한다"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하여 1945년 8월 27일부터 평안남도 인민위원회가 평안남도 경찰서 등 도 내 모든 기관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새로운 한국인 기관장과 간부가 임명되었다. 여기에 실권을 행사하는 소련군 장교가 고문관 이름으로 배치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1945년 9월 말까지 치스챠코프가 북한의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인민위원회 조직을 완료하였다.

한편 소련군은 1945년 8월 25일 38도선을 넘어 개성과 춘천까지 진출했다. 38도선 부근에 진지까지 구축했다. 남북을 오가는 통행인을 대상으로 검문 검색도 했다. 북에서 남쪽으로 가는 열차를 중지시키거나 제한했다. 경의선(서울-원산)은 8월 24일 원산-금곡 간을 제한시켰다. 경의선(서울-신의주)은 8월 25일 신의주-신막 구간을 제한시켰다. 토해선(토성-해주)과 사리원선(사리원-해주)선은 8월 26일 전면 중지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한국에 있어서 남북 간의 교통을 차단하는 시초가 되었다. 광복으로부터 38도선 폐쇄까지는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소련군은 미군이 아직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에 전격적으로 북한 전 지역을 장악하고 38도선을 잠정적 국경선으로 획정하는 조치에 나서고 있었다.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챠코프 대장은 1945년 8월 26일 제25군사령부 예하에 소련 군정 기구 '민정관리총국'을 설치했다. 로마넨코 소장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 기구 산하에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보건, 위생, 출판, 보도, 사법 지도부 등 군정에 필요한 9개의 지도부를 편성했다.

소련 군정은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서 군중대회를 열고 소련군 대위 김성주(金聖柱)를 김일성(金日成)으로 조작하여, 북한 주민 앞에 내세웠다. 이때부터 본명 김성주(金聖柱), 별호 김일성(金一星)이 전설의 김일성(金日成) 장군으로 둔갑하여 권력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편 조만식 등 북한 지역 민족주의자들은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지를 받으며 북조선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소련 군정 당국은 1945년 11월 18일 북한 5도 인민위원회를 통괄하는 5도 행정국을 설치했다. 행정국장에 조만식을 임명했다가 1945년 12월 17일 일방적으로 해임한 후, 김일성을 앉혔다. 소련 군정은 군정 개시 4개월 만에 38도선 이북 지역에서는 소련 하수인 역을 맡은 김일성을 제1인자로 한 공산 체제가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꼬이기 시작한 지점이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SK하이닉스 17년만에 상한가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SK하이닉스가 31일 장중 상한가에 진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도체 승부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불황 속에서 SK하이닉스 인수를 밀어붙였던 최 회장이 최근 주가 급락 국면에서 개인 명의로 처음 자사주를 사들인 지 하루 만에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1분 기준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39만6000원(29.95%) 오른 171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고가이자 가격제한폭 상단이다. 거래량은 853만6822주를 기록 중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주식 3620주의 평가액은 현재가 기준 62억1916만원이다. 공시상 취득금액 49억31만740원과 비교하면 미실현 평가이익은 13억1884만9260원이다. [사진=뉴스핌DB,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매수 당일 종가인 132만2000원을 적용한 평가액은 47억8564만원으로 취득금액보다 약 1억1467만원 낮았다. 주식을 사들인 직후에는 평가손실을 기록했지만, 이튿날 주가가 상한가로 급반등하면서 하루 만에 13억원대 평가이익으로 전환됐다. 이번 매수는 단순한 내부자 주식 취득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사업 구조를 반도체 중심으로 바꾼 SK하이닉스 인수의 당사자인 데다, 최근에도 AI 시대 메모리 수요와 SK하이닉스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거듭 드러냈기 때문이다. SK의 반도체 사업 구상은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선대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세우며 반도체 진출을 추진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계획을 접었다. 이후 최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키면서 30여 년간 이어진 반도체 사업 구상이 현실화됐다. 최 회장은 당시 출범식에서 "30여년 만에 반도체 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당시에도 순탄한 결정은 아니었다. 반도체 업황이 침체돼 있었고, 정유·통신을 주력으로 하던 SK와의 사업적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15년 전 업황 부진기에 회사 인수를 결정했던 최 회장이 이번에는 주가 급락기에 직접 주주로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장내에서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 최 회장이 SK스퀘어를 통하지 않고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득단가는 주당 135만3677원이며 총취득액은 49억31만740원이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기준인 50억원보다 9968만9260원 적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려면 거래 개시 30일 전까지 매매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거래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이면서 거래금액도 50억원 미만이면 사전공시 의무가 면제된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사전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입 규모를 최대한 늘려 최근 급락장에서 신속하게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식에 대해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dconnect@newspim.com 2026-07-31 14:38
사진
민주당 당대표 여론조사 보니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적합도·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정청래 후보, 민주당 지지층에선 김민석 후보가 앞서는 흐름이다. 오는 8월 1일 충청권 첫 지역 순회 합동 연설회와 경선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어 민주당 전대 열기가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김민석(왼쪽부터), 정청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7.29 photo@newspim.com ◆ NBS, 정청래 21% 김민석 19% 송영길 6%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7~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진행한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차기 당대표 적합도 정청래 후보 21%, 김민석 후보 19%, 송영길 후보 6%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 34%, 정 후보 29%, 송 후보가 9%로 나타났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 지지층, 김민석 41.6% 정청래 37.7% 송영길 9.5%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STI)가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성인 남녀 중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 1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김 후보 41.6%, 정 후보 37.7%, 송 후보 9.5%였다. 오마이뉴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한 휴대전화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 뉴스토마토, 정청래 36.9% 김민석 28.0%, 송영길 9.2%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차기 당대표 선호도 1순위로 정 후보가 36.9%였다. 김 후보는 28.0%, 송 후보는 9.2%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가 44.9%로 정 후보 38.9%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송 후보는 11.2%였다.  선호투표제 도입에 맞춰 실시한 2순위 선호도 조사에서는 송 후보가 33.9%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이어 김 후보가 12.9%, 정 후보 9.0% 순이다. 송 후보를 2순위로 선택한 57.9%는 김 후보를 1순위로 꼽았다. 36.9%는 정 후보를 선택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는 무선 전화 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주당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 선호투표제를 처음 도입했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 한 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2·3순위 선호 후보를 함께 기입하는 방식이다. 먼저 1순위 득표를 집계해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땐 최하위 득표자의 2순위 표를 배분한다. 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6-07-31 10:2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