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공사 '100달러 밀반출' 논란…"수법 유출"
정치권 "알박기 민낯 드러내" vs "망신 주기"
적절 공개 기준 필요…자극 장면 소비 말아야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최근 진행 중인 부처 업무보고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참석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생중계를 지시함에 따라, 대통령과 관료만 있던 회의실에 전 국민이 방청객으로 들어왔다. 카메라를 통해 정책 보고 과정이 그대로 공개되면서 업무보고는 더 이상 내부 절차가 아니라 보여지는 국정이 됐다. 밀실 보고를 걷어냈다는 평가와 함께, 국정이 장면 중심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획재정부와 국가데이터처 등을 필두로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중앙부처와 위원회, 공공기관, 업무 연관성이 높은 유관기관 등이 순차적으로 업무보고 대상에 올랐다. 첫 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업무보고를 받는다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많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하며 공직자들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 형식만 놓고 보면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에게만 설명하던 정책을 이제 국민에게도 함께 전하라는 것이다.
이 방식이 주는 효과도 분명하다. 각 부처와 기관 등이 어떤 정책을 어떤 논리로 설명했고, 무엇을 언제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는지가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업무보고가 끝난 뒤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식의 책임 회피는 훨씬 어려워졌다. 정책의 주체와 발언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투명성이라는 목표에는 분명히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나 생중계의 빛은 곧바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장면은 국토교통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이 외화 밀반출 점검과 관련해 "100달러짜리를 책갈피처럼 끼워 나가면 안 걸린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이후 이 사장은 페이스북에 "힐난을 당했다"는 글을 올려, 생중계를 통해 밀반출 수법이 오히려 널리 알려졌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또 이 대통령이 "100% 수하물 개장 검색"까지 언급하자, 이 사장은 "그렇게 하면 공항 운영이 마비된다"고 반박했다. 이후 야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달러 반출 수법을 알려준 셈"이라는 비판과 함께, 과거 이 대통령의 논란 사건을 거론하며 공격성 발언까지 쏟아졌다. 외환·보안이라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 생중계 한 장면 속에서 보안 리스크와 정치 공방의 소재로 동시에 소비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공기관 업무보고를 두고 "알박기와 낙하산으로 얼룩진 일부 공공기관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공개 질책을 개혁의 신호로 해석했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전 정부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어 공개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이라며 생중계 방식 자체를 권력 과시의 무대로 규정했다. 같은 화면을 두고 여당은 '개혁'으로, 야당은 '망신주기'로 읽어낸 셈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생중계의 출발점이 정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첫날 기재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양극화 완화를 위한 재정 정책과 세제 개편, 통신비 인하, 물가 안정 방안 등을 하나하나 짚으며 속도감 있는 집행을 주문했다. 국세청과 관세청 업무보고에서는 칭찬과 압박을 오가며 세외수입 통합관리의 진척 상황을 따져 물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정책적 질문과 점검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포털의 연관 검색어와 SNS에 남은 것은 세제나 재정 운용이 아니라 '책갈피 달러', '인천공항공사 사장 면박', '알박기 민낯', '팥쥐 엄마 갑질' 같은 단어들이었다. 정책의 방향보다 누가 혼났는지, 누가 말문이 막혔는지, 이 대통령이 어떤 표현을 썼는지가 더 빠르게 확산됐다. 정책을 위해 연 생중계가 결과적으로는 장면을 소비하는 생중계로 변질될 위험이 드러난 것이다.
국민들 앞에 더 많이 보여주려는 시도를 단순히 '쇼'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비공개 회의실 안에서만 돌아가던 결정 과정을 일정 부분 밖으로 끌어낸 것 자체가 분명한 변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무대 위에서 오가는 내용이 얼마나 정책에 가까운지, 그리고 그 과정이 행정과 보안 측면에서 안전한지다.
외환·안보·산업 기밀처럼 민감한 사안은 원칙적으로 비공개를 전제로 하고, 공개 가능한 범위를 사전에 정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동시에 생중계 이전에 핵심 자료와 쟁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후에는 정책의 후속 조치와 성과를 다시 점검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기준과 구조가 없는 한 업무보고는 한번 소비되고 사라지는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문제는 공개 여부가 아니라 공개의 기준이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릴지에 대한 원칙 없이 카메라만 켜 놓는다면, 투명성은 쉽게 장면과 흥행에 잠식된다. 올바른 기준을 바탕으로 남긴 생중계의 기록이 정책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업무보고 공개는 의미를 갖게 된다. 반대로 생중계의 기록들이 자극적인 장면 소비로만 끝난다면, 이는 투명성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쇼가 될 뿐이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