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한국 영화계가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거의 2년 만에 1000만 영화를 배출하게 됐다. '왕과 사는 남자'의 1000만 관객 달성이 확실시되면서 영화계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4일 기준으로 940만 관객이 '왕사남'을 관람했다. 지난 2월 4일 개봉해 설 연휴, 삼일절 연휴를 지나며 단 며칠 만에도 앞 자릿수가 달라지는 등 놀라운 속도로 관람객 수가 늘었다. 평일에도 10~20만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어 늦어도 이번 주말 1000만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왕사남' 덕분에 당장 극장가엔 활력이 돈다. 올 설 연휴에는 지난해 찾아볼 수 없던 풍경이 다시 찾아왔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극장 좌석을 빼곡히 채웠다. 이어 2월 말 문화가 있는 날, 삼일절 연휴에도 '왕사남' 열풍은 계속됐다.
지난해 혹독한 시절을 지나온 영화계에서는 '왕사남'의 흥행을 크게 반기며 작은 희망을 내비쳤다. 2025년 최대 흥행작인 '좀비딸'이 500만 관객 돌파로 마무리되고, 1000만 영화를 내놓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200~300만을 끌어모을 만한 중소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선 "뭘 해도 안된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영화계에선 침울했던 분위기가 반전된 것 만으로도 '왕사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작품을 만드는 영화감독들은 고사 직전이라는 영화업계 현실에 깊은 우려를 드러내왔다. 모처럼 '왕사남'을 보기좋게 성공시킨 장항준 감독 역시 개봉 전 시사에서 "현재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서 올해 도약의 밀알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앞서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어쩔수가없다'를 내놓으며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짊어진 듯하다"면서 무거운 속내를 털어놨다. '명량', '한산' 등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이대로 한국 영화계가 사장되도록 둘 수는 없다며 극장 홀드백(극장 개봉 후 영화가 IPTV·OTT·TV 등 다른 유통 채널로 넘어가기까지의 유예 기간) 법제화를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왕사남'의 흥행이 반가운 이유는 더 있다. 당장 작품에 얽힌 제작, 배급, 투자사들이 직접적 수혜를 입는 것에 이어 작품의 효과가 다른 분야로도 활발히 전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부터 영화 촬영지이자, 단종 묘인 장릉이 있는 영월에는 전년 대비 8배 증가한 3만 8223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흥행이 지역관광 활성화로 번지는 선순환 사례를 만든 셈이다.
'역덕(역사 덕후)'들의 호응도 이어진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후 약 한 달간 '조선왕조실록' 관련 도서 판매량은 이전 대비 2.9배 증가했으며, 대중 역사서가 판매 상위권에 올랐다. 단종과 수양대군, 계유정난 등 영화관련 역사에 관심이 쏠리며 독서 수요로 이어졌단 분석이 가능하다.
지난 2023년 영화 '리바운드'로 빛을 보지 못했던 장항준 감독이 이번 작품으로 제대로 본업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혹자들은 그의 유쾌한 입담과 예능인 같은 이미지로 가려졌던 재능이 '왕사남'에서 빛을 발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절 작가, 연출자, 감독으로 활약해온 그의 내공이 결국 1000만 영화를 빚어냈듯, 한국 영화계 역시 남은 잠재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000만 영화가 많을 필요도 없다. '왕사남' 열풍이 시니어 세대와 MZ세대를 모두 극장으로 불러낸 것처럼, 쉬운 문법으로 모두의 마음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이어질 일만 남았다.
jyy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