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석유 가격 자유화 이후 발동한 사례 없어
정부, 비축유 200일분 확보…중동 외 원유 확보 검토
[세종=뉴스핌] 신수용 기자 = 정부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석유 판매가격 상한선을 정하는 '유류 최고가격 지정제' 검토에 들어갔다. 일부 주유소가 국제유가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판매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시장 관리 카드를 꺼낸 것이다.
◆ '석유사업법 23조' 근거로 시장 개입 카드…물가안정법도 거론
6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유류 최고가격 지정을 포함한 다양한 행정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유류 최고가격 지정제는 정부가 특정 품목의 판매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정책이다.
국내 기름값은 최근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달 5일 기준 리터(ℓ)당 1800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중동 지역 군사 충돌로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이지만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분이 아직 국내 가격에 반영될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일부 주유소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가격 과다 인상이나 담합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 지정 방안을 포함한 시장 관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관련 법적 근거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있다. 해당 법 제23조는 석유 수입가격이나 판매가격이 현저하게 변동하거나 변동할 우려가 있을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석유 수급 안정과 가격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시장 개입 장치다.
재정경제부 소관인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역시 가격 안정 정책의 근거로 거론된다. 해당 법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 수급 조정이나 가격 안정 조치 등을 통해 특정 품목의 가격을 관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지만, 석유 가격의 직접적인 통제는 석유 관련 법률을 중심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재경부 관계자는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보고 석유 판매가격 상한 지정은 석유 관련 법률에 근거해 검토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국제유가가 최근 이란 등 중동 정세로 상승한 것은 맞지만, 그 영향이 곧바로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급격한 소매가격 상승은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 정부, 최고가격 지정 시행 방식·기간 논의 중
정부는 가격 통제 검토와 함께 시장 점검 강화에도 나섰다. 범부처 석유시장 점검반을 중심으로 전국 주유소 가격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월 2000회 이상 특별 기획검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가격 담합이나 눈속임 판매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집중 점검이 이뤄질 예정이다.
에너지 수급 관리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는 약 200일분(민간 포함) 규모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중동 외 지역에서의 원유 확보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비축유 방출 등 비상 대응도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고가격 지정제가 실제로 언제 시행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해당 제도는 1990년대 석유 가격 자유화 이후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유지될 경우 정부의 가격 통제 검토는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반면 국제유가 상승이 실제로 국내 공급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정책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최고가격이 지정되면 이를 초과해 판매하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 된다. 법에는 가격 통제로 사업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다만 실제 지원 여부와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의 시장 개입 여부와 정책 대응 방식이 향후 국내 유가 흐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관계자는 "사업자 손실 보전 여부 등 세부 조치는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관계부처와 의논해 결정할 사항"이라며 "시행 기간과 방법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aaa2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