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김우영·서승준이 12일 서울 성동구 ETHER서 2인전을 열었다.
- 김우영은 사막을 반복 촬영해 물질이 남긴 시간을 담았다.
- 서승준은 흙·납으로 조건을 세워 시간의 흔적을 드러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김우영은 시간의 발견, 서승준은 물질 탐구
물질의 변형 통해 시간의 흔적 조명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사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바위는 풍화되고 모래는 움직인다. 흙 역시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압력과 온도, 수분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시간이 물질의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작가가 '시간'을 매개로 만난다. 사진작가 김우영과 설치미술가 서승준의 2인전 'Slow Matter—물질이 기억하는 시간'이 1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성동구 ETHER에서 열린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둘 다 한때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에 가까이 있었지만, 탈진 이후 작업의 방향을 바꿨다. 김우영은 상업사진의 세계에서 사막으로 향했고, 서승준은 무대와 광고 현장을 떠나 흙을 만났다.
김우영은 1990년대 광고사진 1세대로 인물과 패션 사진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카메라를 사람에게서 풍경으로 돌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와 핀란 사막을 오가며 같은 장소를 같은 계절, 비슷한 시간대에 반복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가 찍은 것은 단순한 사막 풍경이 아니다. 같은 자리에 서서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기다렸다. 빛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화강암의 표정은 달라졌다. 흑백으로 담아낸 화면에서는 색보다 바위의 결, 침식과 풍화가 만들어낸 구조가 두드러진다.
김우영은 이를 '발견된 시간'이라고 부른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서면 풍경은 매번 다르게 보입니다. 카메라가 아니라 제가 그 변화를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10여 년간 이어온 사막 연작 가운데 선별한 작품들이 나온다. 새로운 장면을 찾아 헤매기보다 같은 장소를 되풀이해 바라본 결과물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기다리고 관찰하는 시간이 작품의 일부가 된 셈이다.
서승준의 변화는 조금 달랐다. 연극배우와 뮤지컬 감독, TV 광고 아트디렉터로 20여 년간 무대를 만들었던 그는 탈진 이후 하와이로 떠났다. 그곳에서 처음 흙을 만났다. 이후 미국 애슈빌에서 도자를 공부했고, 흙을 기반으로 설치와 공간 작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의 작업을 둘러싸고는 늘 질문이 따라붙었다. "도자 전시인가, 현대미술 전시인가." 하지만 서승준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흙이라는 물질을 통해 물질과 시간,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도 그 연장선에 있다. 소성한 도자 구체를 층층이 쌓고 그 사이에 납판을 끼워 넣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가 납을 휘고 접는다. 압력이 집중되는 곳에는 더 깊은 흔적이 남는다. 납은 단단한 금속이지만 지속적인 힘을 받으면 서서히 변형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않는다. "저는 형태를 만드는 작가라기보다, 조건을 세팅하고 그 이후를 다른 힘에게 넘기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에게 작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물질들이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놓은 조건에 가깝다. 이후 중력과 압력, 시간이 작품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여기서 두 작가의 작업이 만난다. 김우영은 인간이 만들어내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질학적 시간을 카메라로 포착한다. 서승준은 물질에 조건을 부여하고 인간의 개입을 줄여 시간이 스스로 흔적을 남기게 한다. 한 사람은 시간을 '발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시간을 '발생'시킨다. 결국 두 작가가 바라보는 것은 같은 질문이다. 물질은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우리는 시간을 직접 볼 수 없다. 하지만 바위의 결에서 지층의 압력을 읽고, 흙의 균열에서 사라진 수분을 짐작하며, 금속의 변형에서 오래 지속된 힘을 발견한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흔적을 남긴다.
'Slow Matter'라는 전시 제목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느린 물질이라는 뜻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속도와 다른 물질의 시간이 있다.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만들어내는 시대에 두 작가는 오히려 느리게 변하는 것들을 바라본다. 탈진 뒤 두 작가가 찾은 것은 새로운 자극이 아니었다. 오래 바라보고, 기다리고, 물질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시간을 주는 일이었다.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성수동의 빠른 시간 한복판에서, 사막의 바위와 흙과 납이 기억해온 느린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windy@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