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스무 살 처녀를 사랑하고 매몰차게 버린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놓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욕망을 쫓다 결국 눈이 멀어 가는데 정신을 차릴 생각 따윈 없다.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안과 의사의 충고에 되묻는다. “그럼 섹스는요?”
청춘의 아이콘, 순애보의 주인공, 액션 히어로까지. 지난 20년 동안 연기를 해오며 많은 수식어를 만들어 냈다. 언제나 도전이었고 언제나 성공이었다. 그럼 이제 톱스타 자리를 가만히 누려도 될 법한데 정작 본인은 안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지칠 줄 모르고 도전하는 배우 정우성(41)이 또 한 번 새로운 패를 꺼내 들었다. 이번엔 독해지고 야해졌다. 파격 노출도 노출이지만, 나쁜 남자와 사랑을 오가는 심학규의 얼굴에는 그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정우성의 모습이 묻어있다. 20년 동안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이 이렇게 또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달 2일 개봉을 앞둔 ‘마담 뺑덕’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딸의 희생을 다룬 한국 고전 소설 심청전을 현대로 옮겨온 작품이다. 영화는 효의 미덕을 칭송하는 대표적 텍스인 심청전을 욕망의 텍스트로 바꾸는 역발상에서 시작,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그의 딸 사이를 집요하게 휘감는 사랑과 욕망, 집착을 그렸다.
“관객의 입장에서 물음표가 생길 수도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아마 청이(박소영)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물음표가 달리기 시작할 거예요. 그 이야기가 깊어졌다면 관객은 딴생각을 하면서 빠져나오게 되겠죠. 그래서 사실 청이 부분을 많이 뺐어요. 편집본을 보면서 감독님과 이야기했죠. 이게 심청전은 아니니까 학규와 덕이(이솜)의 감정으로 빨리 몰아치자고요.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죠.”
극중 정우성이 연기한 학규는 사랑을 저버리고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빠지는 남자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와 어린 딸 청이를 서울에 남겨 놓고 소도시로 내려간 학규는 그곳에서 스무 살 처녀 덕이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뜨겁게 사랑에 빠진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차갑게 덕이를 배신하고 돌아선다.
“이해는 해요.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할 땐 그 입장에서 이해하는 건 중요하니까. 다만 완벽하게 동의할 수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학규는 자기 에고에 충실해서 달려가는 수컷이죠. 사회적으로 지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목적을 뛰어넘어서 욕망에 치닫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잖아요. 하지만 학규를 이해하면서 충돌할 때 되게 재밌었어요. 더군다나 어떤 캐릭터든 구축하다 보면 작은 아쉬움이 남는데 이번 학규 캐릭터를 완성해 놓고 봤을 땐 나의 실수를 덜 남겨놓는 캐릭터라 만족하죠.”
이번 영화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인 베드신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만에 선보이는 멜로 장르, 혹은 독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이전에 정우성의 수위 높은 베드신이 찍었다는 점은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파격적인 노출은 영화 ‘비트’(1997)직후 찍은 ‘모텔 선인장’(1997) 후 처음이다. 아무리 높은 인기를 누릴 때였지만, 지금보다 더 뜨거운 반응은 아니었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는 “그때도 나름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다들 우리 형이, 오빠가 왜?’ 이런 반응이었다”며 웃었다.
“물론 그때보다 궁금증과 기대감은 더 실렸겠죠. 20대는 멋모르고 경험을 쌓아간 거였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사실 외부 리액션을 생각했다면 과감해질 수 없었을 거예요. 더군다나 이번 베드신에는 타당성이 있었어요. 고민할 이유 자체가 없었죠. 오히려 쓸데없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게 더 사실적으로 노골적으로 치열하게 촬영했고요. 인물과 인물 간의 감정 대립, 그리고 한 캐릭터가 망가져 가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출 신이었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만, 이번엔 일부러 안 했었죠. 보여주기 위한 신이라는 우려가 나올까 봐요.”
어쨌든 정우성의 세심한 노력이 깃든 장면들 덕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과 욕망, 집착이라는 인간의 감정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우성 역시 학규를 연기하면서 사랑과 욕망, 집착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을 터. 문득 남자 정우성은 이번 영화에서 어떤 사랑을 배우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나잇대가 비슷하잖아요. 사십 대에 들어선 남자는 사회적인 위치나 가치관 등이 탄탄하고 힘이 가장 셀 때죠. 안정적이고요. 이럴 때 조심해야겠구나 싶어요(웃음). 실수한 걸 되짚어보게 되기도 하고요. 사랑이란 감정은 그전부터 예전부터 연기하면서 쉽게 느낄 수 있었죠. 다만 이번엔 어떤 사랑을 선택했을 때, 혹은 파급됐을 때 생기는 사랑의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데뷔 20년 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자극받는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영화를 봤을 때 멋진 롤을 해낸 배우들이 자극제가 되는 건 당연하죠.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배우가 나의 자극제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누군가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배우라는 건 어떤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한 객체니까요.”
그렇다면 최근엔 어떤 배우, 혹은 어떤 캐릭터가 가장 큰 자극이 됐느냐는 말에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김윤석이 연기한 영화 ‘해무’ 속 철주를 꼽았다. “요즘 캐릭터를 내세운 영화가 별로 없었다. 물론 의도하려 했지만, 성공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철주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내 식의 연기로 해볼 수 있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린 시절에는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를 쫓았는데 외모와 충돌하는 거예요. 내가 갈구하는 캐릭터와 남들이 받아드리는 내 모습이 충돌되니까 불협화음이 생겼죠. 그런데 지금은 어떤 캐릭터를 하더라도 나답게 하려고요. 다만 어떤 한 이미지에 고착되는 건 싫어요. 물론 특정 이미지를 탈피한다고 해서 정우성이란 사람이 가진 이미지를 탈피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밖에서 보는 나와 진짜 나를 타협해서 하나의 온전한 이미지로 만들어야겠죠.”
“이솜, 한국 영화계에 가능성을 열어준 친구”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정우성과 이솜의 케미(chemi, 미디어 속 남녀 주인공이 현실에서도 잘 어울리는 것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실제로 스크린 속 두 사람의 호흡은 열일곱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완벽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동료이자 파트너 남자 배우로서 (이솜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편안함을 주려고 했죠. 연기는 교감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연기도 나 혼자 해서 교감을 일으킬 수는 없어요. 내 연기만 돋보인다고 케미가 잘사는 것도 아니죠. 둘의 케미가 중요한 작품이고 그 또한 케미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덕이라는 캐릭터는 기성 여배우도 하기 어려운 캐릭터죠. 케어해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주고 싶었어요. 신인 여배우이기도 했고요. 물론 몇 편의 영화가 있었지만, 한 영화에서 열 신 이상의 롤을 맞는 거랑은 완전 다르죠. 감정신은 물론, 베드신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그 친구가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요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솜은) 타고난 근성으로 잘 이겨내더라고요. 그렇다면 동료로서 파트너로서 해야 할 일은 그런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 같이 안아주는 거죠. 아마 그 친구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 스트레스 속에서 이 정도로 만들어냈잖아요. 전 가능성을 본 거죠. 한국에 가능성이 큰 여배우가 나타났으니까 영화계에서 아껴주고 가이드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서 이 이미지를 소모하게 하려 할 텐데 그걸 주변에서 경계해줬으면 하고요.”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