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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정통 국악의 대중화를 꿈꾸는 가야금 병창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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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을 찾는다. 노안당(老安堂) 마루에 앉아 뜰에 핀 철쭉을 본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다. 흥타령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 것 저 것이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거든 꿈. 꿈을 꾸어 무엇허리' 이명(耳鳴)처럼 흥타령이 머물다가는 가고, 가다가는 다시 머물기를 반복했다. 정신이 아득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운현궁 솟을 대문 문고리를 매만진다. 근현대사가 손끝에서 찌릿하게 와 닿았다. 운현궁 담을 따라 국악거리 쪽으로 휘적휘적 걷는다. 운현궁 유치원 마당이 나타났다. 폐사지(廢寺地) 처럼 휑덩그렁하다. 흑백 TV화면이 돌아간다. 기사(棋士) 서봉수가 담배를 물고 장고(長考)한다. 그 옛날 운당여관 자리였던 유치원 마당에 하얀 햇살이 쏟아진다.

운당여관. 국악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 곳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국악인들은 으레 이곳에서 머물렀다. 여관 주인이 가야금 병창 명인 향사 박귀희이기 때문이다. 향사 박귀희는 운당여관을 팔아 지금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민속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기예를 연마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 반주에 판소리 한 대목을 얹어 부르는 것이다. 조선시대 전라도 사람 김창조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김창조-오수관-오태석(오수관 아들)-박귀희로 이어졌다. 박귀희는 녹음방초, 호남가, 백발가 등의 단가와 수궁가 중 고고천변(皐皐天邊 토끼가 별주부에게 수궁 밖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대목), 홍부가 중 제비노정기(제비가 박씨를 물고 강남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을 노래한 대목)를 즐겨 불렀다. 가야금 병창을 듣고 있노라면 낙이불류 애이불비(樂以不流 哀以不悲 즐겁되 문란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다)라는 우리 소리의 특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가야금 병창 김민정. 봄을 애타게 기다리며 재 빛 겨울 날씨를 즐기며 충무로 어느 커피숍에서 그를 소개 받았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시원시원했다. 목소리에 걸맞게 성격도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악의 전통과 정통을 온전하게 전승하여 국악을 대중화시키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당참을 느꼈다.

김민정은 서울 출신 개비(甲)이다. 어머니는 설장구를 쳤다. 아버지는 전남 화순 출생인데 대금, 아쟁을 연주했다. 서울 계상초등학교, 상계여자중학교,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한양대학교대학원을 졸업했다. KBS '파랑새는 있다'라는 드라마에 출연한 바도 있다. 인물치레를 비롯해 소리꾼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국악인이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정의진 교수로부터 판소리 수궁가 완창을 배웠다. 이는 가야금 병창 전공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이력이다. 국립국악원에서 3년간 근무했다.

햇살 고운 봄 날 일요일 오후 그를 만났다.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인 후 인터뷰에 들어갔다. “국립국악원하면 모든 국악인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직장인데 왜 그만두셨습니까?”

“국립국악원을 저 스스로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국악원은 연수단원 1년, 준단원 2년을 거친 후 정단원이 됩니다. 정단원 선발에서 떨어져 그만 둔 것입니다.(웃음) 감독이 바뀔 때 마다 단원 선발제도가 바뀝니다. 감독에 따라 연희를 중요시하면 타악 단원이 뽑힙니다. 당연히 판소리, 가야금 병창 전공자는 선발에서 제외됩니다. 이런 식으로 단원을 선발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코트뮤>라는 예술단체를 설립해 이끌고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판소리 꾼 2명, 가야금 병창 2명으로 구성했다. 한국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문화의 집(코우스)에서 지난 4월 말 출범 공연을 했다. 전통과 정통을 온전하게 전승하여 국악을 대중화시키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출발했다. “전통과 정통을 고집하면 관객이 외면할 텐데요 가능하겠습니까?” 아픈 곳을 찔러 질문했다.

“월급을 받으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는 프리랜서가 좋습니다. 긴장되고 창조적인 것을 즐깁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가는 것은 싫습니다. 요즘 퓨전국악이라는 말로 어설프게 공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전통도 아니고 정통도 아닌 것을 내 놓습니다. 원 뿌리는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창조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전통과 정통은 세월이 흘러야 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이런 이치가 조금씩 감으로 옵니다. 가야금과 판소리의 본 모습을 유지하면서 지금 이 시대의 문화를 표현하면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을 것입니다. 마치 글을 쓰는데 있어 가슴으로 쓰지 않고 손끝으로 쓰면 감동이 전해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꾸미지 말고, 거짓하지 말고, 우리의 본 모습으로 이 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예술로 표현하면 분명히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을 것 입니다.”

김민정은 12현 가야금을 고집한다. 25현 가야금을 즐기는 요즘 세태와는 분명 차별되는 태도다. 그런 그에게 가야금 산조를 부탁했다. 비스듬하게 앉은 자세로 열두 줄 현(絃)을 농(弄)한다. 진양조로 출발하여 자진모리 휘모리로 현(絃)을 몰아갔다. 오동나무의 텅 빔의 편안함이 차올랐다. 누에가 뽕 먹고 뽑아낸 무명실에서 세월의 무게가 춤을 췄다. 머리가 맑아지고 여유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몸 속 세포들이 하던 일을 멈췄다. 태고적 무극(無極)의 현묘(玄妙)가 뭉뭉한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사랑가 대목을 불렀다. “사랑 사랑....” 가야금 줄에 사랑이 실렸다. 이슬 같은 맑음이 흘렀다. 비자나무 숲 속의 푸르른 향이 날렸다. 기토경금(己土庚金) 음양오행이 새로운 창조를 꿈꾸며 비상(飛上)했다. 창밖엔 하얀 봄빛이 포플러 나무 위로 내려앉았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 마음을 울리는 깊이 있는 소리여야 한다. 잠깐 귀를, 눈을 기쁘게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소스 일 뿐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돌팔매 같은 이 말이 실현되는 전통과 정통의 국악 대중화 모습이 저만치 와 있었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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