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주식수 충분치 않거나 주가 조작된 경우, 합병비율 왜곡 우려
[뉴스핌=김선엽 기자] “제일모직이 상장된 지 6개월 밖에 안 됐고 전체 지분의 80%가 보호예수로 묶여 있어 자유로운 거래가 안 됐다”(19일 엘리엇 측 변호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양사의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이를 규정한 법조항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지 주목된다.
삼성물산측은 합병비율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및 시행령에 따라 결정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행령 자체가 위법해 무효라고 대법원이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행령은 법보다 하위 규정이므로 대법원이 그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이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대해 위법·무효하다고 판단할 경우, 합병 비율 산정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므로 향후 소송전에서 엘리엇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도 관련 법조항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심문이 열린 가운데 엘리엇의 법률 대리인 최영익 넥서스 변호사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학선 사진기자> |
시행령은 상장법인의 합병 시 '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를 산술평균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엘리엇 측은 합병비율 산정 시 해당 기업의 자산가치 등은 배제한 채 주가에 의해서만 결정하도록 일의적으로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 문제가 지난 19일 열린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첫 법정공방에서도 비중 있게 거론됐다.
엘리엇 변호를 담당한 넥서스 변호인은 "삼성물산 쪽에서는 합병가액 설정 방식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시장에서 그 주식의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져, 시장에서 가치가 (기업의 가치에) 근접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의 상장 시점이 얼마 안 된데다가 보호예수로 80% 가까이가 묶여 있었기 때문에 주가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 변호인은 "주가는 기업의 제반요소에 대한 시장이 평가한 가장 객관적인 가치"라며 "삼성물산의 주가라는 것은 삼성전자 주식 보유나 회사의 자산 가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건설업계, 한국 경제의 전망, 삼성그룹의 구조조정 가능성, 향후 업종 등의 요소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섬에 따라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굳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가지 않고 국내에서 일단 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상장법인의 합병 시 다른 방법을 모두 배제한 채 오로지 두 회사의 주가만으로 일의적으로 합병비율을 산출하도록 했는데 이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자산가치 등을 고려한 방법도 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옥렬 서울대 교수(법학)는 저서 '상법강의'를 통해 "자본시장법에서 정하는 획일적인 평가방법이 소멸회사 및 존속회사의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회사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그 가치평가의 방법은 다양할 수밖에 없으므로 획일적인 기준은 당사자 사이의 협상의 여지를 차단하고 심한 경우에는 거래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논란과 관련, 제도적 개선 방안을 통해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룰이 제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위) 의견을 정리해서 주겠다"고 답했다.
업계 한 변호사는 "엘리엇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이든 동원할 것"이라며 "성공 가능성과 별개로 일단 그 부분을 걸고넘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대법원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자체를 위법 무효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업계 또 다른 변호사는 "합병 비율을 결정하는데 있어 주가 말고 다른 대안이 딱 부러지게 없다"며 "회계법인에게 평가하게 할 경우 객관성을 두고 더 많은 말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위법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관계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왜 우리만 오로지 주가로 결정하게 했는가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지만 당장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논의할 사안”이라며 “현재로서는 특별히 검토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