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스타

속보

더보기

[스타톡] '버닝' 전종서 "꼭두각시가 되고 싶진 않아요"

기사입력 : 2018년05월31일 17:52

최종수정 : 2018년06월18일 11:33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이창동 감독, 신인 배우 아닌 인간으로 대해줘"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화려한 데뷔였다. 첫 작품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고, 그 레드카펫을 밟기 위해 출국하던 날 태도 논란으로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영화 ‘버닝’의 해미, 배우 전종서(24) 이야기다.

전종서의 데뷔작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지난 19일 폐막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버닝’의 열기가 조금은 가신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전종서를 만났다. 마주한 그는 예상 외로 침착했으며,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데뷔 전까지 베일에 싸여있던 건 일종의 마케팅이었던 거 같아요. 저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요. 이렇게 공개되고 나서 관객들을 포함해서 이분 저분들을 만나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터뷰하는 지금은 뭔가 얻어지는 게 많은 시기죠. 저를 알리고 있는 듯하지만, 저를 더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를 만나서 좋고요.”

그에게 직접 들은 ‘전종서’ 관련 정보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1994년생으로 현재 세종대 연극영화과에 재학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연기에 대한 뻔한 이론이 싫었고, 남들 흉내에만 그치는 연기가 싫었다. 그래서 직접 연기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선생님을 만난 후에는 2년 동안 소속사를 찾아다녔다.

“이론 수업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반면 동기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건 재밌었어요. 하지만 그건 학점 인정이 안됐죠. 그래서 밖으로 나와 연기 선생님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연기는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너를 알아야 한다. 계속 탐색하고 고민하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을 어렵게 만났죠.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안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알게 됐고요. 소속사는 미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웬만한 우리나라 소속사는 다 했죠. 근데 항상 그들은 ‘갑’이고 전 ‘을’도 아닌 ‘정’이더라고요.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었죠. 절 마음대로 단정 짓고는 찍어내서 가공시키려고 했어요. 마치 마켓 과자처럼요. 누구도 절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았죠. 이러다 제가 무너질 듯해서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저 자체로 존중해주는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어요.”

[사진=CGV아트하우스]

그렇게 현 소속사 마이컴퍼니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전종서는 3일 후 ‘버닝’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은 6~7번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화 형식이었다.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어떤 영화인지, 누구의 영화인지 모르고 오디션에 임한 건 아니다.

“이창동 감독님은 물론, ‘버닝’에 대한 기본 정보는 있었어요. 다만 이창동 감독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다는 거죠. 직접 겪은 감독님은 되게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신인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셨어요. 굳이 어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옆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사소한 거에도 관심이 있고 사람에 애정이 있으신 분이었죠.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덕분에 낯선 현장에서 어려울 수 있었던 것들이 어렵지 않았죠. 거기서 느낀 고마움은 간과하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갚아나갈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

첫 현장은 낯설었지만, 연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 또한 이창동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전반적으로 시나리오 자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삶, 제 사람의 일부와 닮아있었다”는 게 전종서의 설명이다.

“전 해미의 모든 행동이 결핍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죠. 저도 결핍 때문에 많이 방황했거든요.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기댄 적도 있고 해미가 춤을 추듯 그렇게 자유를 표현하기도 했죠. 돈이 없으면서 돈을 쓰기도 했고요. 그런 면에서 혜미를 많이 이해했고, 나중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청춘으로서, 배우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뭐고, 어떤 곳을 지향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하게 됐죠. 또 내가 사는 곳, 시대가 어떤 색깔인지 생각하게 됐고요. 안타까운 건 나이였죠. 제가 조금 더 연륜이 쌓이면 더 많은 걸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요.”

[사진=CGV아트하우스]

전종서가 처음 공식 석상에 오른 게 지난 4월24일 진행된 ‘버닝’ 제작보고회니 정식 데뷔를 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전종서는 짧은 시간 너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모두 우호적인 시선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중에는 질타와 비난도 많았다. 

“다양한 것들이 있었죠. 근데 좋은 말과 시선, 혹은 좋지 않은 말과 시선이 과연 저를 향하는 걸까 싶어요. 많은 사람이 영화처럼 분노를 표출할 곳과 사랑을 표현할 대상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죠. 전 하루에도 여러 번 현실이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쏟아지는 관심도 모르겠고, 그걸 그대로 수용하고 싶지도 않죠. 그게 제가 연기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니니까요. 칸에 간 것도 마찬가지죠. 전 그 자리가 제자리가 아닌 걸 스스로 너무 잘 알아요. 그냥 구성원으로 따라간 거죠. 기뻤던 건 작업이 끝나고 못만날 줄 알았던 좋은 분들과 함께 또 어딘가를 향했다는 정도예요.”

신인 배우에게는 빠질 수 없는 ‘앞으로의 전종서’에 대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잃지 않고 싶다고, 다만 흐르는 시간이, 그리고 세월이 자신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지에 이제 선 하나 그린 거잖아요. 그게 어떤 그림, 이미지가 될지는 그 수많은 선이 레이어드 돼야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당장의 어떤 것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 당장 보이는 모습, 들리는 말이 전부라고 판단될 수 있지만, 그래도 전 더 멀고 넓고 깊은 곳을 보고 싶죠. 또 시간을 두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유연성도 생기고 균형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서툴면 서툰 대로 저를 두고 싶죠. 저를 잃고 싶지도 않고 꼭두각시처럼 바비 인형처럼 존재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제가 괜찮은 인간이라면, 건강하게 산다면, 상대를 진정성 있게 대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 믿고요.”

jjy333jjy@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