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기타

속보

더보기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의 94년 인생 발자취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서울=뉴스핌] 고은나래 기자 =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 김용)이 지난 30일 향년 94세로 홍콩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무협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으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평생 학생'이었다. 풍부한 상상력에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년이었던 그는 세계 무협 소설 분야에서 누구도 감히 넘볼수 없는 화려한 금자탑을 쌓았다. 

젊은 시절 진융 [사진=바이두]

 '평생 학생' 완고한 책벌레

진융은 1924년 3월 10일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저장의 최고 명문가로 손꼽히는 해녕 사가(海寧 査家) 출신으로 청(淸)대 가장 유명한 시인인 사신행(査愼行)의 후손이다. 청 강희제(康熙帝) 때는 집안에서 무려 열 명의 진사를 배출하고, 숙질 가운에 다섯이나 한림원(翰林院) 관리를 지낼 정도로 학문에 있어서는 따라올 가문이 없었다.

이처럼 대대로 학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진융은 어릴 적부터 지독한 책벌레였다. 독서에 심취하여 끼니를 놓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해 부모님의 걱정을 살 정도였다. 오로지 책밖에 모르는 ‘책 벌레’였지만, 사업에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그는 배우지 않아도 돈이 되는 길을 알았다. 15살이 되던 해에 진융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중학교 입시 수험서’를 집필, 베스트 셀러를 탄생시키며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자유분방하고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학창시절 두번이나 퇴학을 당했다. 1940년 저장 연합고등학교 재학 시절, 벽보에 지도교사를 풍자한 글 ‘아려사만유기(阿丽丝漫游记)’를 실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진융은 퇴학 당한 뒤에도 학업을 멈추지 않았다. 외교관의 꿈을 안고 쓰촨 충칭 중앙정치대학에 입학하지만 학교 교풍에 불만을 품고 글로써 당시 행태에 대해 항의했다. 이로써 인생 두 번째 퇴학 처리를 당하며, 동시에 외교관의 꿈도 접게 된다.

화려한 금자탑을 쌓다

그런 진융이 무협 소설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그저 단 한번의 우연이었을 뿐이었다. 1955년 다궁바오(大公報)에서 인기리에 무협소설을 연재 중이던 량위성(梁羽生)은 계속된 연재에 환멸을 느끼고 돌연 연재 중단을 선언한다. 이때 그의 빈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진융이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무협소설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이 우연한 계기로 인해 무협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자신의 본명 루이스 차량융(査良鏞) 중 ‘용(鏞)’자를 파자해 만든 진융이란 필명도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인 서검은구록(书剑恩仇录)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연달아 벽혈검(碧血剑), 설산비호(雪山飞狐), 신조영웅전(射雕英雄传)등을 집필, 불과 10여년 만에 15편의 무협 대작을 남겼다. 1972년 마지막 무협 소설 ‘녹정기(鹿鼎记)’를 끝으로 진융은 집필 작업을 마친다.

진융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초에 들어서부터다. 그의 소설에 빠진 수많은 중국 팬들이 생겨났고,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 드라마가 쉴새 없이 제작됐다. 

외교관을 접고 기자의 길로

진융은 당대 최고의 무협 소설가임과 동시에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다.

충칭 중앙정치대학에서 퇴학 당하며 외교관의 꿈이 좌절된 후에도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1947년 상하이 다궁바오에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돼 기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듬해 다궁바오 홍콩판이 출간되면서 당시 24살이었던 진융은 홍콩 파견을 자청한다.  그 당시의 홍콩은 상하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라 선뜻 나서는 자가 없던 상황에서 “나는 누구보다 모험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타이완의 유명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인 리아오(李敖)는 진융의 무협 소설을 두고 “사실성이 결여됐다. 모두 허구이고 거짓이다”며 당시 '진융 기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기자 진융은 1959년 ‘거짓 사실’에 대응해 ‘진실된’ 보도만을 하겠다며 ‘밍바오(明報)’를 창간, 덤덤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갔다. 당시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오늘날 밍바오는 홍콩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매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창간 초기만 해도 발행부수는 고작 6000부가 채 되지 않았다. 경영 위기로 휘청거릴 때는 직원들 월급을 20% 이상 삭감한 적도 있었다. 진융은 그때를 회상하며 “직원 모두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밍바오가 존재한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20대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65세가 되던 해에 진융은 사장직을 내려놓고 현업에서 물러난다.

여든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공부에 매진하는 진융 [사진=바이두]

열정으로 가득찬 홍콩의 4대 천재 

진융은 무협소설가 예광(倪匡), 작곡가 황점(黃霑), 미식가 채란(蔡瀾)과 함께 홍콩 4대 재자(香港四大才子)로 불린다. 예광, 황점, 채란 등 3명은 자기들은 집안이 좋아 재자로 불릴 뿐, 본인 능력이 출중한 자는 진융 밖에 없다며 입을 모아 얘기한다.

진융은 평생 동안 자기 개발에 힘써왔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의 불타는 학구열은 식을 줄을 몰랐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여한 명예 박사학위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 같은 대학 박사 과정에 등록해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81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는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전공서적으로 가득 찬 가방을 양 어깨에 매고 교정을 누볐다. 그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학위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공부가 하고 싶을 뿐이다”.

 

nalai12@newspim.com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이혜훈 "韓 경제, 회색코뿔소 상황"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이혜훈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가 29일 지명 후 첫 출근길에서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인 위협에 빠지게 되는 회색코뿔소(Gray Rhino)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임시 집무실이 차려진 서울 종로구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제가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고물가 고환율의 이중고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본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12.29 choipix16@newspim.com '회색코뿔소'라는 용어는 미국 경제학자 미셸 워커가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사용했다.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말한다. 이 후보자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서서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그런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며 "이런 맥락에서 기획예산처가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5대 구조적 문제점으로는 인구, 기후, 극심한 양극화, 산업 대격변, 지방 소멸을 꼽았다. 다만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발생한 '위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과 기획을 연동하는 방식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기획과 예산을 연동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불필요한 지출은 찾아내서 없애고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국민의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게 하고, 그 투자는 또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런 전략적 선순환을 기획예산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 후보자는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별도로 (간담회 등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야당 정치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기획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했다. wideopen@newspim.com 2025-12-29 10:00
사진
다시 '청와대'…李대통령, 오늘 첫 출근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부터 청와대로 공식 출근한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지 약 3년 7개월 만으로, 대통령실의 공식 명칭도 '청와대'로 다시 돌아간다. 이 대통령이 출근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 걸려 있던 봉황기가 내려가고 동시에 청와대에 게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옛 국방부 청사인 용산 대통령실로 마지막 출근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는 청와대에서 집무한다. [사진=대통령실] 봉황기는 대통령 재임 중 상시 게양되는 국가수반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가운데 두고, 상상 속의 새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문양이다. 봉황기는 윤석열정부 시절 한 번 하기된 바 있다. 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선고하면서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출근함에 따라, 업무표장(로고) 역시 과거 청와대 것으로 돌아간다. 용산 시대가 저물고 청와대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의 청와대 연내 복귀는 많은 해석을 낳는다. 새해부터 국민주권정부의 새 출발을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과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등의 사건이 벌어진 지난 정부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 등이다.  청와대가 다시 문을 열면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통령 집무실이 여민관에 마련된 점이다. 청와대는 크게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본관' ▲비서관실과 수석실이 분산 배치된 '여민관 1~3동' ▲외빈 맞이와 행사를 갖는 '영빈관' ▲'대통령 관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등으로 구성된다. 박근혜 정부까지는 대통령 집무실이 본관에 위치했다.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과 500m 떨어져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참모진이 있는 여민관에 마련해 거리를 좁힌 바 있는데, 이 대통령도 여민관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과 여민관 집무실을 함께 쓴다는 방침이다. 주로 쓰는 집무실은 여민관이다. 여민관에서 일하는 '3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참모진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국가상징구역 종합계획도 [자료=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대통령 집무실이 '구중궁궐'이라는 비판을 듣는 청와대로 이전을 한 만큼 국민과의 소통이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도 이를 의식 중이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지난 7일 "청와대 이전 후에는 대통령 일정과 업무에 대한 온라인 생중계 등을 더 확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청와대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꾸준히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2일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의 입지가 확정되기도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대통령 세종집무실 목표 준공 연도는 2030년 상반기다. 아직 목표만 세운 단계라 더 늘어질 수도, 더 당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행복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다"며 공정 단축을 주문한 바 있어 준공 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 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pcjay@newspim.com 2025-12-29 06:01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