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서 첫 전시…4년만 국내전 '서기 2000년이 오면'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간. 우리는 로켓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랫 소리 이 세상을 수놓으리.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중략)그때는 가난도 없고 저마다 행복한 마음.”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1982년 발표된 가수 민해경의 ‘서기 2000년’ 속 가사다. 37년 전 기대한 2000년의 모습을 2019년 시점에서 살펴보니 꽤 흥미롭다. 미래를 향한 낭만적인 희망을 담은 곡 ‘서기 2000년’은 양혜규(48) 작가의 손맛을 더해 전시장으로 들어온다. 4년 만에 한국에서 갖는 개인전 제목이 ‘서기 2000년이 오면’이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민해경의 ‘서기 2000’이 관람객을 먼저 맞는다.
전시 오프닝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국제갤러리에서 양혜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서기 2000년’ 노래 속 다양한 시제에 시선이 갔다면서 이번 개인전은 ‘현재를 되돌아보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노래 가사 보셨어요? ‘서기 2000년’이란 노래에서 2000년을 묘사한 모습이 황당하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현재 2019년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 가사를 살펴보면, 2000년을 먼 미래라고 생각했구나 싶더라고요. 흥미로운 부분은 노래 속 가사를 보면 많은 시제가 공존해요. 1982년, 1982년에서 바라보는 2000년, 현재 그리고 미래.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과거까지. 이번 전시는 지금의 시점을 돌아보게 하죠. 제 관심사를 많이 풀어놓았어요.”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독일 베를린과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세계적으로 더욱 활동을 많이 하는 작가다. 2015년 삼성리움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에 한국에서 펼쳐지는 전시라 미술계 안팎으로 이번 개인전에 기대감도 높다.
양 작가는 “오랜만에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끓여놓은 찌개를 계속해서 데울 수 없지 않나”라며 “개인전을 하기에 적당한 간격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의 양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진도를 나가야 하지 않겠나. 단지, 국제갤러리와 일한 지 11년 정도 됐는데 이곳 전시가 늦어진 건 맞다. 다른 기관전이 있어 그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국제갤러리 전시장 3관, 단 한 공간서 이뤄지는 전시지만 작품 수와 내용은 어마어마하다. 동차 연작 2점, 방울 조각 신작 4점, 공간 전면 벽지 작품 등이 있다.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과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텍스트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 홍보 이미지로 공개된 ‘보물선’도 포함이다. 이는 작가가 1977년경 두 동생과 함께 완성한 그림으로 도깨비, 시조새 등 상상의 산물들을 크레파스로 그린 상상화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 작품이 전시돼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뭣보다 4년 만에 이뤄진 국내 개인전은 양혜규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줘 주목된다. 그는 흔히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나 사건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읽어왔다. 이를 통해 사회적 주제, 문화,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주관적 해석을 입힌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3관 한 공간에서 이뤄지지만 다양한 이야기로 오감을 깨운다. 작가 솔 르윗의 입방체 구조를 개념화한 거대한 ‘솔르윗 동차’ 연작 2점이 전시장 중앙을 지키고 있고, 천장에 매달린 방울 조각 신작도 관객의 시선을 확 끈다.
여기에 2018년 프랑스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에서 첫 공개한 전면 벽지 작품 ‘배양과 소진’은 전시장을 걸으며 천천히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 지역을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시각화한 이 작품은 양파와 마늘, 의류 수술 로봇, 짚풀, 무지개와 번개 등 상반되는 대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전시장 한편에는 안개가 분사되고, 바닥에는 짐볼도 놓여있다. 관람객은 짐볼 위에 앉을 수 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다. 이 짐볼에는 대지의 향을 주입해 전시장에는 은은한 자연의 향도 감돈다.
시각적 장치에 이어 청각적 장치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스피커에는 새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이는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의 중계 영상에서 추출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발소리도 섞여 있다. 양 작가는 “새소리가 함정 같았다”고 회상했다.
“새소리 뒤에 숨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알게되면 다른 연상작용이 일어나죠. 저는 이러한 간극에 관심이 있어요. 남북정상회담은 정치·군사적인 이야기인데, 액면으로 들리는 소리는 새소리죠. 인간이 만든 DMZ는 인간이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자연이 활성화된 공간이죠. 그리고 이 만남은 인간적이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군사적인 대치상태고요.”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이날 작가는 입술과 그 주변에 붉은 페인팅을 한 상태였다. 이는 전시의 일부분이 아니라 ‘요소’(element)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 칠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 작가는 미술은 미술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가가 전시에서 페이스페인팅을 한 건 최초일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름의 고충도 털어놨다.
“저는 전시를 만들고 작품을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미술은 미술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작가를 왜 부르는지. 사진도 찍으셔야 하고. 저도 버겁고 힘들어요. ‘손타다’는 의미가 어울리겠군요. 오늘 한 페이스페인팅은 마스크랄까요. 광대의 느낌도 있고요.”
동시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온 그는 1994년 독일로 이주 후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모교인 슈테델슐레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8년에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에 작품이 전시돼있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작가의 네 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오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된다. 2019.09.02 alwaysame@newspim.com |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점도 주요 이력이다.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9),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2018),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2018),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2017), 파리 퐁피두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200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단독으로 전시했다. 현재 그의 작업은 뉴욕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런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있다.
빠른 속도로 글로벌 미술계에 안착한 양혜규는 지난 시간에 대해 “모르니까 했다. 그때마다 항상 어려움은 있었다. 독일어만 잘하면 인생 자체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더라. 이해도가 높으면 그만큼 오해도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운이 좋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다음 생에도 미술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거 해보고 싶어요. 꼭 이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생각해도 이 일이 되게 잘됐어요. 제 입장에서는 갈 데까지 더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이 케이스를 잘 만들어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양혜규는 올해 하반기에만 9개 전시를 준비한다. 우선 이번 전시 이후 오는 10월 21일 열리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재개관전에서 대형 설치작업인 ‘손잡이’로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