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꼰대인턴' 박기웅이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었다. 다소 각잡히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간의 캐릭터들을 벗은 아주 신선한 시도다.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에 남궁준수 역으로 출연했던 박기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당일 아침에도 김응수가 단체 대화방에 보낸 꽃 사진을 보여주며 여전한 작품 사랑을 드러냈다. 다소 경우없는 '싸가지' 남궁준수 역을 연기한 그는 "이런 역이 처음은 아니었다"면서도 여느 드라마와 확실히 다른 감상이 든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에요. 여운이 좀 있죠. 끝나고 배우들끼리 연락도 굉장히 많이 하고 통화도 하고. 이상하게 이번 작품은 좀 더 먹먹한 기분이 드네요. 12부작이라 좀 짧기도 했고요. 아마 시국이 이런 때라 종방연도 못하고 종영 분위기가 안나서 더 그렇겠죠. 마지막회도 약간 열린 결말이라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기분이에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꼰대인턴'에 출연한 배우 박기웅 [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2020.07.08 jyyang@newspim.com |
'꼰대인턴'은 사실 대단히 시청률이 높고 성공한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박기웅은 "표면적인 시청률은 예전같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콘텐츠 유통 채널과 플랫폼이 다양해진 현재 상황을 짚었다. 그의 말대로 이 드라마는 OTT 플랫폼 웨이브, 온라인 SNS와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소비됐고 그래서 반응이 더 뜨거웠다.
"드라마 방영 시간에 웨이브에서 동시방송했고 끝나자마자 MBC 케이블채널에서 바로 오버랩해 방송하기도 했죠. 시청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도 피드백이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관계자분들이나 감독님들도 연락 많이 해주셨어요.(웃음) 이런 류의 캐릭터가 굉장히 오랜만이기도 했어요. 제 연기가 좋았단 얘기도 좋았고 만족스러운 반응이 이어졌죠.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인사 많이 받았다세요. '각시탈' 때만큼은 아니지만요. 하하. 요즘 힘든 분들 많은데 즐겁게 보고 웃을 수 있는 공감되는 소재를 다룬 게 좋았어요. 누구든 재밌게 보셨으면 만족해요."
실제로 조금은 답답한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어려운 취업장벽 등 다양한 현실의 요소가 드라마 속 내용과 맞물렸다. SNS에는 '꼰대인턴' 속 인물들의 특성을 살린 유행어나 패러디가 올라오고, 극중 상품들이 실제 MD로도 출시되며 사랑받았다. 박기웅은 이런 반응에 대해선 아직은 거리감을 느낀다.
"제가 인터넷 잘 안해서 좀 느려요. 온라인 속 반응들은 체감을 잘 못한 것 같아요. SNS도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안돼요. 트위터는 좀 재밌게 했지만 그게 '각시탈' 때라 군대도 가기 전이었죠. 지금은 다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어서요. 제가 거울도 안보기로 유명하거든요. 면도할 때나 겨우 보죠. 하하. 현장에서도 한번도 안보는 날도 있어요. 가끔은 이런 저를 주변에서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꼰대인턴'에 출연한 배우 박기웅 [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2020.07.08 jyyang@newspim.com |
스스로 거울을 안보는 배우라면서도, 그는 "예전에 연기 훈련을 할 때는 거울을 많이 봤다"고 고백했다. 얼굴 근육을 훈련하고 연기 공부에 몰두할 때는 전혀 안하던 짓도 할 정도다. 다만 연기 외에 다른 데엔 전혀 신경을 안쓴다. 그러면서 이번에 좀처럼 많이 해보지 않았던 '센 캐릭터'를 연구한 과정들을 들려줬다.
"예전엔 영화가 더 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신인으로선 드라마에 비해 미리 준비하고 연기에 할애할 시간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때 드라마 제작환경이 지금보다 어려웠던 것도 있고요. 시간이 좀 지나고보니, 영화는 말 그대로 '낙장불입'이더라고요. 신 하나가 목적에서 벗어나는 순간 전체가 뒤틀리죠. 드라마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준수가 좀 독특하고 튀는 캐릭터였죠. 강렬한 느낌도 있고요.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지만, 전체 줄기에서 엇나가지 않게 애썼어요. 저 혼자 오버하면 가라앉는 배에서 나만 살려고 하는 식이 되는 거예요. 저만 보이고자 하면 다 죽는다, 그걸 염두에 뒀어요."
이제와 담담히 얘기하지만 사실 쉽지는 않았다. 극중 남궁준수는 '준수그룹' 총수인 회장 아들이자 안하무인 싸가지인 바지사장. 조금은 마케팅영업팀 팀원들 위주로 흘러가는 일관적인 이야기에서 순간적으로 훅 들어오는 존재감을 도맡았다. 극 전체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누구나 흥미롭게 느낄 만한 역할을 해줘야 했다.
"일단 준수가 '이런 애구나' 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게 초반 과제였어요. 모든 사건들을 겪어나가면서 시종일관 함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피자 먹다 콜라 한모금 하듯이, 고구마 먹다 김치 한 번 먹듯 해줘야 했어요. 이 캐릭터 자체가 호불호가 될 수도 있었어요. 말하자면 '닥터페퍼'가 될 위기인 거죠. 이 음료는 좋아하는 분은 엄청 좋아하는데 안좋아하시는 분도 있잖아요. 그냥 콜라나 사이다처럼 누구나 즐길 만한 인물이길 바랐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꼰대인턴'에 출연한 배우 박기웅 [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2020.07.08 jyyang@newspim.com |
마케팅영업팀의 가열찬(박해진), 이만식(김응수), 이태리(한지은)를 위주로 극이 흘러가다보니, 남궁준수의 분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박기웅은 "역할 비중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홀가분하게 말했다. 다행히 '꼰대인턴'은 어느 정도 패턴이 정해진 여느 드라마의 캐릭터 구성을 충실히 따른 극은 아니었다. 바로 그 점이 그가 이 드라마를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비중 같은 걸 신경쓰는 건 이제 아예 없어졌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첫 주연작이 2006년이었는데 연기를 쭉 해오면서 이런 맘이 굳어졌죠. 그 어떤 역도 없어서는 안되더라고요. 큰 역도, 작은 역도 해보면서 왔다갔다 해보니 정형화된 패턴의 글에 지루할 때도 있었죠. 많은 대본들이 주인공 두명과 조연들 이렇게 도식화된 경우가 많잖아요. '굿닥터'에 카메오 출연했을 때 사실 기뻤거든요. 이제 드라마에 이런 주인공도 나오는구나. 다양성이 생긴 것 같아서요. '리턴' 같은 경우엔 대본만 봐선 누가 주인공인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이제 배역의 크기보다 기능에 집중하게 돼요. 가능하면 배우를 오래하고 싶고, 비중보단 기능적으로 다양한 역을 하고 싶어요."
극중 준수가 독특한 캐릭터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은 것처럼, 박기웅의 독특한 연기습관도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할 만한 독특한 웃음소리나 특유의 제스처들이 그랬다. 그는 영화를 볼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작은 디테일들을 수집하는 버릇이 있다. 이제는 연기와 삶을 완벽히 분리하는 게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박기웅은 이런 점을 자신만의 '새로운 워라밸'이라고 칭했다.
"평소 쓸데없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해요. 처음 연기할 때부터 여러 가지 웃음소리를 만들어두려 했죠. 후시녹음을 하는데 다섯가지 버전의 웃음소리를 들려드리고 '어떻게 해볼까요' 했어요. 하하. 평소에도 그런 걸 수집해두죠. 안경을 내리는 제스처라든가, 어떤 캐릭터를 참고한다기보다 사람의 작은 디테일 같은 걸 캐치하는 버릇이 들었어요. 연기가 지금도 너무 재밌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고요. 사실은 일상과 연기의 선을 완벽히 긋진 못하겠어요. 문득 계속 연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은연 중에 계속 관찰하고 생각하죠.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워라밸이라면, 제 일상과 연기가 잘 섞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동시에 연기에서 계속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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