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애비규환'이 이제는 흐릿해진 결혼과 이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구도 악의는 없었지만 이혼가정이 돼버린 가족. 이들의 주체적인 선택이 조금은 속 시원한 감동을 전한다.
영화 '애비규환'은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배우 정수정이 주연을 맡고, 주연배우와 또래인 최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라인과 감정들이 영화를 이끌어가지만, 그 안에 담은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혼전임신과 결혼, 이혼에 관한 현실적인 접근이 보는 이들의 공감대를 무한 자극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주)리틀빅픽처스] 2020.11.03 jyyang@newspim.com |
◆ '예쁨'은 내려놓은 임산부 정수정…중견 배우들의 든든한 합
사자성어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비틀어 지은 제목처럼, 영화에서는 임신 5개월차 토일(정수정)이 엄마와 이혼한 친아버지를 찾으러 나서며 시작된다.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PPT로 작성할 만큼 똑부러지고, 주체적인 토일은 '누굴 닮아 이러냐'는 말에 친아버지를 만나보지만, 엄마의 실패한 결혼을 접하고 약간의 좌절을 겪는다. 그 순간 호훈의 행방이 묘연해지며 또 하나의 '아빠'를 찾아 헤매는 상황. 말 그대로 '애비규환'이다.
토일 역의 정수정은 시종일관 '예쁨'은 내려놓고 부른 배에 티셔츠, 헐렁한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다. 영화 내내 대단한 감정을 펼쳐내는 것은 아니지만, 토일은 요즘 애들답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한다. 어린시절, 엄마의 과거, 재혼한 엄마와 15년간 함께 산 현 아버지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친아버지 사이에서 갈등과 마주하는 토일. 믿었던 호훈까지 자취를 감추자, 불안감이 폭발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주)리틀빅픽처스] 2020.11.03 jyyang@newspim.com |
토일의 연하 남친 호훈 역의 신재휘보다 돋보이는 건 역시 부모님 역 배우들이다. 엄마(장혜진)은 자신과 꼭 닮은 똑부러진 딸 토일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15년간 어색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온 현 아빠(최덕문)은 묘하게도 딸과 서로 가장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친아버지 역의 이해영은 자유로운 영혼이자 토일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 싱크로율로 서사와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 끝없는 '애비찾기' 여정…가만히 생각해보는 '망한 결혼'의 의미
임신 5개월이 돼서야 가족에게 알릴 만큼, 토일은 모든걸 스스로 결정하고 똑똑한 자신에게 도취돼있는 캐릭터다. 호훈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않고, 본인의 결혼은 성공적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거치며, 또 엄마의 과거를 마주하며 불안이 생겨난다. 그리고 호훈마저 사라지자, 토일은 급기야 "망할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주)리틀빅픽처스] 2020.11.03 jyyang@newspim.com |
그런 토일에게 엄마와 두 명의 아빠는 "우리처럼 될까봐 못하겠다는 거냐"고 묻는다. 망한 결혼의 결과는 이혼이지만, 이혼이 끝은 아니다. 토일은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사람들의 시선은 냉혹했지만 나름대로 오붓한 가정을 꾸렸다. 15년간 엄마와 현 아빠의 헌신적인 노력을 경험한 만큼, 토일은 더이상 이혼 이후를 의심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아직도, 마냥 행복하려고만 하는 결혼을 꿈꾸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애비규환'은 바로 그들에게 결혼은 "좋을 수도 있으니까 하는 것" "망해도 괜찮은 것"이라는 속 시원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 망할까봐" 두려운 모두에게도 "망해도 괜찮다"고 용기를 불어넣는, 재기발랄한 영화다. 오는 12일 개봉.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