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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마약 생산기지'로 다시 돌아가나

기사입력 : 2021년08월20일 14:20

최종수정 : 2021년08월22일 11:40

아프간의 해외자산 대부분 미국 중앙은행 예치
자금과 지원 동결로 극심한 재정난 불가피
아편 재배를 통한 마약 수출이 거의 유일한 탈출구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돈줄이 막히고 경제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아프간이 예전의 '마약 생산기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프간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금은 4월 기준 94억달러(약 11조원)다. 이중 금 13억달러와 미 국채 61억달러가 미 중앙은행에 예치돼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즉각 동결했다. 현재 외국으로 탈출한 상태인 아프간 아즈말 아흐마디 중앙은행 총재는 17일 "지난주 탈레반이 공세를 강화하자 미국은 예정된 달러 선적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IMF도 18일 아프간에 예정된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SDR은 IMF 회원국이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달러, 유로, 엔, 파운드, 위안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한 권리다. 따라서 외환 보유고 3억6200만 달러 정도만이 탈레반이 쓸 수 있는 돈이다. 

아프간은 IMF 명목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로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92달러 수준이다. 세계 204위의 최빈국이다. 지난해 아프간 GDP의 43%가 개발원조금이다. 아프간 정부는 세입의 10배에 달하는 돈을 외부 원조로 메워왔다. 그러나 주요 지원국이었던 유럽연합(EU)과 독일이 개발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다른 나라들도 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간 국내로 유입되는 민간인 송금도 끊긴다. 지난해 아프간인들이 해외에서의 돈벌이를 통해 고향에 보낸 돈이 7억9000만달러, GDP의 4%였다. 송금 통로인 웨스턴유니온도 이 송금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북한처럼 아프간의 대외교역을 막을 수도 있다. 불법 무역을 제외한 아프간 지난해 수출액은 7억8000만달러에 그쳤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수입이 막히면 식량난으로 인한 고통은 엄청나게 가중될 것이다.

현재 아프간은 그동안의 내전과 2018년 이후 지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약 3300만 명 총인구의 1/10이 넘게 난민이 발생한데다, 인구의 절반 정도도 심각한 기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달러가 막히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치솟으면 이들 생계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탈레반이 안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민생고를 달래줘야 하는데, 이를 해결할 재원이 막막한 상황이다. 단적으로 말해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탈레반에게는 없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카불 점령 후 첫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 마약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다분히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유화정책이다. 해외 지원이 절실한 여건에서 서방의 화를 돋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탈레반 대변인도 외부의 원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이런 태도를 곧이곧대로 믿는 시각은 거의 없다. 지난 2010년 무렵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했을 때도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편 재배를 금지한 적이 있지만, 아편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농촌 가구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몇 달만에 흐지부지 무산된 전력도 있다. 따라서 곤궁할대로 곤궁해진 탈레반의 아프간이 옛날처럼 다시 마약 생산기지로 돌아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술도, 산업도, 심지어 다른 중동국가들처럼 석유도 없는 이 나라의 유일한 소득원이 아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전 미군이 한 아편 재배지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제공] 2021.08.20 digibobos@newspim.com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아편은 지난 2020년 한해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4%를 차지했고, 이중 대부분이 탈레반 점령 지역에서 재배됐다. UNODC의 <아프간 아편 조사 2020>을 보면, 코로나19로 모든 경제활동이 뒷걸음치는 상황에서도 아프간 아편 재배 면적은 전년보다 37% 늘어난 22만4000㏊를 기록했다.

재배 면적이 가장 넓었던 2017년 아편 생산액은 14억달러로, 아프간 GDP의 7%에 달했다. 아편 재배뿐 아니라 원료 공급 등 전후방 효과까지 고려하면 전체 규모는 6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버넷 루빈 전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도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불법 마약은 전쟁 다음으로 큰 산업"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02∼2017년까지 86억달러를 투입해 아프간 아편 근절 사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의 연간 총 수입은 3억~16억달러로 추정된다. 이중 탈레반이 지배하는 영토에서 마약을 재배하거나 해당 지역을 마약 운반 통로로 이용하게 해주는 대가로 거둬들이는 돈은 연간 4억6000만달러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프간 경제가 대부분 현금 기반이라서 추적이 불가능한 돈이 많다. 실제 유엔이 지난 2019년 탈레반의 테러자금 조달을 막기 위해 동결한 자금은 240만달러에 그치고 있다. 미 아프간특별조사관(SIGAR) 보고서는 아편 수입이 탈레반 전체 수입의 60%에 이를 것으로 봤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아프가니스탄 아편과 마약 무역의 경로도. [사진= UNODC 보고서 캡쳐] 2021.08.20 digibobos@newspim.com

물론 아편말고도 탈출구가 있기는 하다. 아프간 전역에 묻혀 있는 광물이다. CNN에 따르면 아프간에 매장된 광물 가치는 1조 달러로 추정된다. 철, 구리, 금을 비롯해 네오디뮴과 같은 희토류와 리튬, 코발트 같은 탄소 감축용 자원이 다량 매장돼 있다. 리튬은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진 볼리비아와 매장량이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지난해 오닉스, 대리석, 금, 희토류, 구리, 주석, 아연 등을 팔아 4억6400만달러의 외화도 벌어들였다. 그러나 전면적인 채굴 자금과 기술력이 없는 게 문제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발에 참여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이를 채굴해 현금으로 회수하기 까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 

알자지라는 탈레반이 2000년 아편 금지에 나섰다가 민심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그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고, 자금 동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아편 산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탈레반 지휘관들이 마약 거래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 마약을 금지한다면 그 이상의 보상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도 마약 수출이 감소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탈레반은 매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일 기자회견에서는 "여성들의 취업과 공부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바로 이튿날 탈레반의 고위급 인사 와히둘라 하시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학생들의 등교 허용 여부와 여성들이 어떤 복장을 해야 할지는 울레마(학자들)가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기반이 전혀 없다. 아프간에 어떤 정치 체제를 적용해야 할지는 논의조차 필요 없다. 이미 명백하다. 바로 샤리아(이슬람 율법), 그게 전부"라고까지 말했다. 이같은 이중적 태도로 볼 때 마약 수출에 대해서도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탈레반 체제가 '정상국가'처럼 행동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우리는 말보다는 테러에 대한 태도, 범죄와 마약에 대한 태도, 그리고 여학생들의 교육권 등으로 탈레반 정권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패퇴 이후 베트남은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갔기에 아시아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되면서 경제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아프간도 그럴 수 있을까. 오히려 카불은 제2의 모가디슈, 아프간은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990년대 미군의 퇴각 이후 소말리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과 군벌이 판치면서 해적질로 먹고 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아프간의 탈레반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테러, 난민, 마약 3대 요소의 '스필오버'가 이미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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