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공산당이 문화대혁명(1966∼1976)에 대해 이례적으로 '마오쩌둥이 당과 국가 정치 상황에 대해 잘못 예측한데서 발단이 된 착오로서 국가와 인민에 큰 재앙이 됐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총서기 시대를 맞아 중국 공산당 역사상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에 이어 세번째로 19기 6중전회서 채택된 '역사 결의(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는 문화대혁명이라는 10년 내란이 마오쩌둥의 잘못된 상황판단에 의해 발동이 되고 전개됐다고 지적했다.
'역사결의'는 린뱌오와 장청 등 반혁명 집단이 마오쩌둥의 착오를 이용해 죄악행위를 벌이고 이에따라 문화대혁명이 국가와 인민에 심대한 대재앙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에 대해 공식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문화대혁명을 종식시키고 등장한 덩샤오핑 지도부는 1981년 공산당 사상 두번째 역사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을 국가적 재난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당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동지의 공이 7이요, 과오가 3이다' 며 이후로는 더이상 문혁을 거론하지 말고 경제건설에 전력투구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을 비롯해 당 차원에서 누구도 문화대혁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공산당이 성지로 여기는 예안의 왕자핑 유적지에 시진핑 총서기겸 국가주석과 옛 지도자 마오쩌둥 사진이 나란이 걸려있다. 2021.11.16 chk@newspim.com |
1945년 마오쩌둥 시절의 1차 역사결의, 1981년 덩샤오핑 시대 2차 역사결의에 이어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번째로 시진핑 시대에 채택된 공산당 '역사결의'에 무게가 실리고, 시진핑 총서기가 이미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의 권좌에 올라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분석이다.
시진핑 시대에 채택된 세번쩨 역사결의는 또 문화대혁명에 대해 10년 내란이 발동됨으로써 당과 국가, 인민은 신중국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겪어야했으며 교훈은 지극히 통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결의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1976년 10월 당과 인민의 의지를 받들어 4인방을 분쇄하고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재난을 종결시켰다고 강조했다.
관영 신화 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11월 11일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채택된 3만 6000여자 분량의 공산당 사상 세 번째 역사결의 전문을 16일 공개했다.
3차 역사결의는 서문, 신민주주의혁명의 위대한 승리,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과 사회주의 건설 추진, 개혁 개방 진행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창립,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결의,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경험, 신시대 중국공산당 등 총 8개 장으로 짜여졌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