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된 검찰주사보 33차례 부적절 행동
1심 원고 패소·2심 원고 승소 엇갈려
대검의 피해자 비실명 처리...대법, 2차 피해 예방 목적 판단
[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성비위 관련 징계 절차에서 가해자의 방어권과 피해자의 보호가 충돌하는 경우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더라도 가해자의 방어권은 침해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제주지검 전 검찰주사보 고 모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을 열어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고씨의 해임이 정당하다는 취지다.
고씨는 2018년 2~3월 제주지검 재무팀 회식자리에서 "요즘 A수사관이 나를 좋아해 저렇게 꾸미고 오는 것"이라며 말하는가 하면, 2018년 8월 사건과 사무실에서 "B선배 옷 입은 것 봐라. 나한테 잘 보이려고 꾸미고 온 것"이라고도 했다.
고씨의 비위 일람표를 보면 ▲성희롱 등 품위유지 의무위반 13회 ▲갑질 등 품위유지 의무위반 19회 ▲공용물의 사적사용 1회 등 총 33차례에 달했다.
이 가운데 한 수사관한테는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함께 "키스 한번 하자"라고 성희롱 발언을 해댔다. 또 다른 피해자한테는 "와이프와 처음 만난 날 잤다"라고 하는 등 여러명의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았다.
대검찰청은 고씨에 대해 2019년 4월 국가공무원법 제 63조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해임 징계 의결과 함께 같은해 5월 해임했다. 이에 고씨는 대검 처분의 혐의사실 중 일부는 과장·왜곡된 사실관계에 기초하거나, 대화의 맥락을 무시한 채 일부 발언만을 부각했다며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 나섰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2심 판결은 엇갈렸다. 1심 서울행정법원에서는 고씨가 패소했으나 2심은 해임처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고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대검의 감찰조사 절차를 비롯해 처분 절차와 소청심사 절차 등이 위법해 고씨의 방어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을 뿐 아니라 실체법적으로도 그 징계사유에 대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의 나머지 주장에 관해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은 고씨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지장이 초래됐다고 보기 어렵고, 또 대검이 조사 등 관련 서류에 피해자들의 이름을 비실명 처리한 점 역시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봤다.
대법은 "이 사건 징계혐의사실은 원고가 직장동료인 제주지검 여직원 다수를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이나 언어폭력 등을 가하였다는 것으로, 징계처분 관계서류에 피해자 등의 실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각 징계혐의사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 및 구체적 상황이 특정되어 있다"고 판시했다.
성비위 행위의 경우 징계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 및 구체적 상황이 다른 행위들과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징계 대상자가 징계 사유의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면 가해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법 관계자는 "향후 하급심에서 이 판결이 동종 유사 사건에 관한 일응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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