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통일·외교

속보

더보기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⑨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하)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어찌보면 모두들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참석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아름다움을 새삼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일까. 피비린내 나는 아일랜드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노선이 바라는 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됐다. 한 쪽에서는 무력 항쟁을 통한 나라의 통일을, 다른 한 쪽에서는 무력 진압을 통한 치안과 평화의 유지를 꿈꿨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느릿느릿하지만 그 벡터가 평화와 이해와 관용으로 지향되는 아일랜드 국민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자신의 주장들을 포기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때가 1990년대 초반이다.

목헌 트리니티대 교수

그리고 세계 여기 저기서 어쩌면 작은 발걸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나 모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중요한 활동들이 벌어진다.

첫째는 폭탄 테러 및 북아일랜드의 국가 기관 전복을 위한 돈 줄을 끊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가장 큰 옹호 집단이자 결정적인 자금 지원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시 4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도 200여년 전인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사실에 그들이 너무도 감동해서 그런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는 IRA의 재정적 지원이 곧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아일랜드의 민족 통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는 아일랜드에게 지원을 주는 동포 단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북아일랜드 구제 위원회인 노레이드(NORAID, Irish Northern Aid Committee)는 그들의 모금액 중의 대부분을 IRA (엄격히 말하면 당시의 명칭은 임시 IRA, Provisional IRA)에게 주어졌다. 노레이드는 심지어 미국 마피아 조직 범죄단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밀수하기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의 제재로 직접 밀수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리비아를 독재 통치하면서 반 외세를 표방하던 카다피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90년대 부터 평화 프로세스가 강조됨에 따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노레이드에 대한 지원은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컸다.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글싣는 순서

1. '감자농사' 빈국서 1인당 명목GDP 세계 2위로
2. 대기근으로 인구 3분의 1 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잘사는 비결
3. 더블린 산책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4. 영국의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독립 투쟁
5. 아일랜드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두 얼굴
6. 아일랜드의 세계 최고 기업들…기네스맥주에서 의료기기까지
7. 아일랜드 교육의 백미...중고생에 숨통 트여준 전환학년제
8.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上)
9.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下)
10. 한·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와 재외동포 역량
11. 골칫덩이 국가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위기극복 DNA 채워진 아일랜드 (끝)

급진노선 IRA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이 주효 

둘째는 IRA 소속의 정치계파인 신 페인 (Sinn Fein)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전폭적인 측면 지원이 있었다. IRA의 주류는 무력으로 영국의 통치를 거꾸러뜨리고 아일랜드 섬의 통일을 염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비록 그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파가 생겨 IRA에서는 그들의 일부 활동을 허락하여 준다.

특히 이 새로운 노선을 강하게 피력한 IRA의 제리 아담스 (Gerry Adams)의 신선함에 많은 IRA 사람들이 호응을 하였으나 여전히 주류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많은 정부 관료들이 아담스를 음으로 양으로 격려를 주게 된다. 테러 조직으로 정의되어 미국내에서 그 활동이 금지된 IRA임에도 불구하고 제리 아담스에게는 특별히 미국 입국 비자를 허용하고 미국의 주요 정치 인사들을 만나도록 도와주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을 통하여 신 페인의 정치 자금 모금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IRA 내부에서도 그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고, IRA 주류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협상에도 필수적으로 선결될 IRA의 테러 활동 종식을 1994년으로 앞당기게 되었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이의 필요성을 꾸준히 피력했던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북아일랜드에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주의 이상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 민주 노동당 (SDLP, Social Democratic and Lbour Party) 이 있었는데 그들의 뛰어난 지도자 죤 휴움(John Hume) 덕분에 평화적인 프로세스를 위한 행보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점이다.

1998년 오마(Omagh) 시의 폭탄테러. [사진=목헌 교수 제공]

셋째는 아일랜드 공화국도 북아일랜드의 이슈를 함께 풀어주는 주체 중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IRA가 감행하는 갖가지 테러 활동을 북아일랜드 내부의 치안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미국이나 서방 세계가 이에 대하여 의견을 표현하면 이를 내정 간섭이라 여기며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정보국에서도 IRA의 완벽한 진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여기에 미국이 그 동안 북아일랜드에서의 인권 유린을 강력하게 비난하여 1985년에 영국-아일랜드 협정 (Anglo-Irish Agreement)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기여가 컸다.

넷째, 양 진영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 organization)의 무장 해제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살상용 무기를 가까이 둔 상황에서 진정된 평화 프로세스의 추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치였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형평성 있게 해체를 할 수 있는 기구도 전례도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미국의 상원의원 죠지 미첼 (George Mitchell)을 위원장으로, 핀란드의 전임 총리 하리 홀케리 (Harri Holkerri), 그리고 캐나다의 전임 군 최고 사령관인 죤 드샤스틀레인 (John deChastelain)과 함꼐 구성된 무장 해제 위원회가 (예정보다 수 년 지연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였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영국·아일랜드 정부 당국이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째, 경제적인 협력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992년 미국 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약하여 선출된 클린턴 대통령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하게 된다. 즉,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이리쉬 계통의 미국인 보다 좋은 예가 없으며 만약 평화를 되찾도록 온 민족이 노력을 하면 미국의 큰 투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 뿐만 아니라 EU 도 큰 기여를 했으니 미국은 아일랜드 국제기금(The International Fund for Ireland) 을 통하여 25여년에 걸쳐 9억 달러의 지원을 하고, EU 도 북아일랜드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n Northern Ireland) 을 통하여 20여년에 걸쳐 약 13억 유로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실로 많은 나라의 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배경으로 드디어 1996년 6월 10일에 미국 상원의원 죠지 미첼을 의장으로 다자협의체가 구성되었으며, 미첼의 어록처럼 '700 여 번의 실망'을 모든 참여자들이 경험 하였다. 이 기간 중에 IRA 내의 소수 분파가 테러 활동을 재개하여 연방주의 준군사조직들이 이내 보복을 할 것으로 염려가 되었으나 다행하게도 자제를 하였고, 연방주의를 표방하는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연방당 (UUP, Ulster Unionist Party)은 당수 데이비드 트림블 (David Trimble)의 용감한 리더쉽이 아니었다면 언제라도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아일랜드 정부의 대 양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헌법 틀은 1937년 제헌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으로 아일랜드 국가 영토에 (북아일랜드 영토를 포함하여) 아일랜드 섬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주의자들의 북아일랜드 영토의 주권에 대한 염려를 십분 고려하여 아일랜드 헌법의 개정을 전격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의 개정안은 아일랜드의 영토를 정의했던 기존의 제2조와 달리, 개정된 제2조는 아일랜드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였으며 개정된 제3조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양 국가의 국민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에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진행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 체결을 위하여 자국 헌법의 가장 기조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새삼 묻게 된다. 그리고 이 헌법 개정안이야 말로 그간 700여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머리 터지도록 대화에 임한 다자간 협의체의 진정성을 상징한다고 하여야 될 것이다. 또 이 협정의 성공 요인은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주고 양보하는 정신(winning-by-giving-up)을 실천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평화 여정의 소중한 결실이 된 벨파스트 협정

이 눈물나고 감동적인 노력은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협정 또는 성금요일 협정 (Belfast Agreement or Good Friday Agreement)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협정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와 정부의 구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관계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과의 관계가 포함됐다. 새로 설립되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는 권력 공동 책임제(power-sharing)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연방주의 대표와 민족주의 대표가 (의석 수에 비례하여) 북아일랜드 정부의 수상(First Minister) 또는 부수상(Deputy First Minister)을 맡도록 했다. 또한 모든 업무에 있어서 합의를 원칙으로 나라를 꾸려가도록 하였다.

1998년 4월 10일 벨파스트 협정에 서명하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버티 에이헌 아일랜드 총리. [사진=목헌 교수 제공]

항상 편파적으로 연방주의자들만을 위한다고 민족주의자들의 의심을 받아왔던 얼스터 왕립 경찰 (RUC, Royal Ulster Constabulary)은 완벽하게 새로이 개편하여 북아일랜드 경찰청(PSNI, Police Service of Northern Ireland)으로 개명되었다. 아울러 무장 해제를 완성하도록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IRA·UVF 등의 준군사조직 소속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던 재소자들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이토록 어렵게 살얼음을 걷듯 다자간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담은 벨파스트-성금요일 협정에는 한 가지 남은 숙제가 있었다. 이의 채택을 국민 투표로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협정 체결 약 한 달 후인 1998년 5월 22일에 선거가 이뤄졌다. 예측이 가능한 부정적인 미래를 선택할지 또는 예측 불허의 잠재적으로 밝은 미래를 선택할지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까 아니면 자식의 앞날을 고려할까를 다루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고 또한 용감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채택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쪽으로 나왔다. 북아일랜드에서의 국민 투표에서는 81%의 투표율에 71.12%의 찬성을 받았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에서의 헌법 개정 투표에서는 56%의 투표에 94%의 찬성을 받았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한 민족의 800년 역사의 숙명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결정을 아일랜드 백성들은 해냈던 것이다.  

협정의 세부 내용 중에는 그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조항도 있었다. 또 IRA가 협정에 참여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참 IRA(Real IRA)' 라는 분파가 1998년 8월 오마(Omagh)시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9명이 목숨을 잃는 대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에 대한 반응이 일체의 극단적인 행동 없이 최대의 자제를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민주적인 절차로 기획한 민족의 대 청사진에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답을 전 세계에 알려준 것이다.  

이 협정이 체결된지 25주년이 되는 올해 짚어보야 할 대목도 있다.

우선 슬픈 사실이지만, 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는 점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경우 생명을 잃은 사람이 3532명, 부상을 입은 자들이 4만명 이상이었다.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IRA 등 민족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사람이 전체의 59%, 연방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29%, 영국군 또는 얼스터 경찰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자들이 10%였다. 다시 말해 약 90%의 희생이 공권력이 아닌 양 진영의 군사 조직 테러에 의하여 자행됐다.

둘째는 민중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시민의 권익을 개인의 권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 또는 단체가 참으로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저 당시의 세태와 상황과 감정이 북받치는 대로, 올곧게 서 있지 못하고 비참한 소용돌이 속에 모두가 함께 휘말려 있었던 긴 30년 기간의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그리고 영국이었다.

앞서 16세기에는 종교의 차이를 명분으로 핍박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으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계속하면서 20세기에 까지 종교를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종교 제도권이 희생적인 사랑으로 계속되는 불의를 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본다. 

셋째는  흔히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와 비교하는 신문 기사나 논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연하게 다른 점들을 형평성 있게 다루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상대방도 그에 못지 않게 원 상태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에 공통적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었다. 즉 폭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3500 여명의 희생자들 중 90%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지 않고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성금요일 협정 당시의 다자간 대화 때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테이블에 나온 사회민주노동당(SDLP) 와 얼스터 연방당 (UUP)이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인 죤 휴움과 데이비드 트림블은 199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 받았다. 

너무도 많은 희생이란 대가를 치룬 북아일랜드의 소용돌이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함께 중지를 모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지혜롭게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목헌 교수는 = 아일랜드에 2006년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Dublin)의 생화학⋅면역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백질 3차 구조 연구 및 항암제 개발을 수행하고, 신약 개발 회사인 해믈리트 파마 (HAMLET Pharma, 스웨덴)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또,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40여개국의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하여 설립한 공동 연구개발 R&D네트워크인 유레카 (Eureka)의 전문 심사 위원, ICMRBS 의 이사 등을 지내고 있다. 목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약학 계열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후 도미, 버클리 대학교 (UC Berkeley) 에서 학사, 퍼듀 대학교에서 (Purdue University) 박사, CJ제일제당 종합 연구소 선임 연구원, 그리고 영국 외무성 치브닝 Chevening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실천을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벗삼으며, 더블린 한글 학교 발기위원장 그리고 아일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수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아일랜드에서의 재외 한국인의 위상 제고 및 그늘진 곳에 살며 탄식하는 아일랜드 인의 구제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충청·남부 곳곳 소나기…한낮 33도 [서울=뉴스핌] 송은정 기자 = 화요일인 18일은 충청권과 남부지방 중심으로 곳곳에서 소나기가 내릴 전망이다. 이날 기상청과 케이웨더에 따르면 중부지방 구름이 많겠으나 남부지방과 제주도가 대체로 흐리겠다. 오전에는 경상권과 전남 남해안 중심으로 비가 오고 오후에는 충청권과 남부지방 중심으로 소나기가 내리겠다. 화요일인 18일은 경남 남해안 중심으로 비가 내리고 모레 오후까지 소나기와 돌풍, 천둥·번개에 유의해야겠다. [사진=뉴스핌DB] 예상 강수량은 대전·충남 남부내륙, 충북 남부 5~30mm다. 전북 남동부와 광주·전남은 5~30mm,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남부는 5~30mm다. 아침 최저기온은 21~25도로 예상된다. ▲서울 24도 ▲인천 24도 ▲수원 23도 ▲춘천 23도 ▲강릉 23도 ▲청주 24도 ▲대전 24도 ▲전주 24도 ▲광주 24도 ▲대구 24도 ▲부산 25도 ▲울산 24도 ▲제주 26도다. 낮 최고기온은 30~33도로 예상된다. ▲서울 32도 ▲인천 31도 ▲수원 32도 ▲춘천 31도 ▲강릉 32도 ▲청주 32도 ▲대전 32도 ▲전주 32도 ▲광주 32도 ▲대구 32도 ▲부산 31도 ▲울산 33도 ▲제주 32도다.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미세먼지는 전 권역이 '좋음'으로 예상된다. 바다의 물결은 서해 앞바다 0.5m, 남해 앞바다 0.5~1.5m, 동해 앞바다 0.5~2.0m로 일겠다. yuniya@newspim.com 2026-08-18 06:30
사진
美 30년물 국채금리 급등 5.31%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17일(현지시간)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의 재정 상황에 대한 우려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과 맞물리면서 국채 금리를 끌어올렸다.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79bp(1bp=0.01%포인트) 상승한 4.724%를 기록했다. 30년물 수익률은 4.43bp 오른 5.3103%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바클레이스의 안슐 프라단 애널리스트는 월요일 보고서에서 "부진한 경제지표는 장기물 국채 금리를 낮췄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30년물 국채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로 입찰됐고, 이후 금리는 오히려 더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미 달러화.[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는 "악화하는 재정 전망, AI에 따른 기업들의 장기물 채권 공급 확대, 가격에 민감해진 투자자층이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도 'AI가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빅테크의 AI 차입이 미국의 장기 금리를 높은 수준에 묶어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용도가 매우 높은 기업이 국채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제시하자 국채를 팔아 그 돈으로 회사채를 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주요 경제지표 발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중동 정세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향방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날 로이터에 이란이 대응 태세를 "전면 공세"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폭스뉴스를 통해 이란이 항복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시장은 장기화하는 미·이란 갈등에 점차 익숙해지는 분위기다. DRW 트레이딩의 루 브리언 시장 전략가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시장이 조금 무뎌지고 있는 시점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한 2년물 국채 수익률은 0.9bp 상승한 4.18%를 기록했고, 2년물과 10년물 국채 금리 차이는 54.7bp로 확대됐다. ◆ 수요일 FOMC 의사록·20년물 입찰…채권시장 변동성 변수 이번 주 채권시장에서는 수요일이 주요 분기점이 될 전망으로, 연준은 이날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을 공개한다. 지난달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첫 기자회견 이후 채권시장이 불안정한 반응을 보였던 만큼 의사록에서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DRW 트레이딩의 브리언 전략가는 "워시는 시장에서 그가 연준 내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이라기보다 트럼프 측 인사라는 생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뉴욕주 제조업 활동 지표는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급등해 미국 경기의 일부 회복 신호를 보여줬다. 미 재무부의 20년물 국채 입찰도 같은 날 예정돼 있어 장기물에 대한 투자자 수요를 가늠할 주요 이벤트로 꼽힌다. 한편 시장이 반영하는 중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5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255%, 10년물은 2.284%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이 향후 10년간 미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약 2.3%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연준 금리 인상 기대 후퇴에 달러 약세 달러화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약세를 보였다. 최근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가 잇따라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오면서 시장의 연준 금리 인상 전망이 후퇴한 영향이다. 지난주 발표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물가 압력이 다소 완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여기에 7월 소매판매가 예상 밖으로 감소하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기존 전망만큼 견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이에 시장에서는 연준의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한층 낮게 반영했다.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0.06% 내린 99.6을 기록했고, 유로화는 0.09% 오른 1.1579달러에 거래됐다. 유로화는 장중 1.1614달러까지 올라 6월 17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의 시선은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 신호로 향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물가 지표가 잇따라 둔화하면서 연준이 당분간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달러화에 추가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엔화는 장 초반 상승분을 반납하고 달러당 159.49엔 수준으로 0.11% 하락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온 것도 엔화에 부담이 됐다. 앞서 일본과 미국 당국은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7월 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모간스탠리의 데이비드 애덤스가 이끄는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 노트에서 "시장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글로벌 위험선호가 강하고 미국의 최종금리 전망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다소 완만하게 나온 상황에서도 달러/엔 환율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wonjiun@newspim.com 2026-08-18 06:39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