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통일·외교

속보

더보기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⑨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하)

기사입력 : 2023년03월01일 08:00

최종수정 : 2023년03월30일 08:43

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어찌보면 모두들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참석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아름다움을 새삼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일까. 피비린내 나는 아일랜드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노선이 바라는 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됐다. 한 쪽에서는 무력 항쟁을 통한 나라의 통일을, 다른 한 쪽에서는 무력 진압을 통한 치안과 평화의 유지를 꿈꿨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느릿느릿하지만 그 벡터가 평화와 이해와 관용으로 지향되는 아일랜드 국민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자신의 주장들을 포기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때가 1990년대 초반이다.

목헌 트리니티대 교수

그리고 세계 여기 저기서 어쩌면 작은 발걸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나 모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중요한 활동들이 벌어진다.

첫째는 폭탄 테러 및 북아일랜드의 국가 기관 전복을 위한 돈 줄을 끊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가장 큰 옹호 집단이자 결정적인 자금 지원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시 4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도 200여년 전인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사실에 그들이 너무도 감동해서 그런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는 IRA의 재정적 지원이 곧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아일랜드의 민족 통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는 아일랜드에게 지원을 주는 동포 단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북아일랜드 구제 위원회인 노레이드(NORAID, Irish Northern Aid Committee)는 그들의 모금액 중의 대부분을 IRA (엄격히 말하면 당시의 명칭은 임시 IRA, Provisional IRA)에게 주어졌다. 노레이드는 심지어 미국 마피아 조직 범죄단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밀수하기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의 제재로 직접 밀수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리비아를 독재 통치하면서 반 외세를 표방하던 카다피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90년대 부터 평화 프로세스가 강조됨에 따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노레이드에 대한 지원은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컸다.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글싣는 순서

1. '감자농사' 빈국서 1인당 명목GDP 세계 2위로
2. 대기근으로 인구 3분의 1 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잘사는 비결
3. 더블린 산책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4. 영국의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독립 투쟁
5. 아일랜드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두 얼굴
6. 아일랜드의 세계 최고 기업들…기네스맥주에서 의료기기까지
7. 아일랜드 교육의 백미...중고생에 숨통 트여준 전환학년제
8.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上)
9.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下)
10. 한·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와 재외동포 역량
11. 골칫덩이 국가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위기극복 DNA 채워진 아일랜드 (끝)

급진노선 IRA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이 주효 

둘째는 IRA 소속의 정치계파인 신 페인 (Sinn Fein)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전폭적인 측면 지원이 있었다. IRA의 주류는 무력으로 영국의 통치를 거꾸러뜨리고 아일랜드 섬의 통일을 염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비록 그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파가 생겨 IRA에서는 그들의 일부 활동을 허락하여 준다.

특히 이 새로운 노선을 강하게 피력한 IRA의 제리 아담스 (Gerry Adams)의 신선함에 많은 IRA 사람들이 호응을 하였으나 여전히 주류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많은 정부 관료들이 아담스를 음으로 양으로 격려를 주게 된다. 테러 조직으로 정의되어 미국내에서 그 활동이 금지된 IRA임에도 불구하고 제리 아담스에게는 특별히 미국 입국 비자를 허용하고 미국의 주요 정치 인사들을 만나도록 도와주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을 통하여 신 페인의 정치 자금 모금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IRA 내부에서도 그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고, IRA 주류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협상에도 필수적으로 선결될 IRA의 테러 활동 종식을 1994년으로 앞당기게 되었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이의 필요성을 꾸준히 피력했던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북아일랜드에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주의 이상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 민주 노동당 (SDLP, Social Democratic and Lbour Party) 이 있었는데 그들의 뛰어난 지도자 죤 휴움(John Hume) 덕분에 평화적인 프로세스를 위한 행보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점이다.

1998년 오마(Omagh) 시의 폭탄테러. [사진=목헌 교수 제공]

셋째는 아일랜드 공화국도 북아일랜드의 이슈를 함께 풀어주는 주체 중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IRA가 감행하는 갖가지 테러 활동을 북아일랜드 내부의 치안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미국이나 서방 세계가 이에 대하여 의견을 표현하면 이를 내정 간섭이라 여기며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정보국에서도 IRA의 완벽한 진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여기에 미국이 그 동안 북아일랜드에서의 인권 유린을 강력하게 비난하여 1985년에 영국-아일랜드 협정 (Anglo-Irish Agreement)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기여가 컸다.

넷째, 양 진영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 organization)의 무장 해제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살상용 무기를 가까이 둔 상황에서 진정된 평화 프로세스의 추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치였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형평성 있게 해체를 할 수 있는 기구도 전례도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미국의 상원의원 죠지 미첼 (George Mitchell)을 위원장으로, 핀란드의 전임 총리 하리 홀케리 (Harri Holkerri), 그리고 캐나다의 전임 군 최고 사령관인 죤 드샤스틀레인 (John deChastelain)과 함꼐 구성된 무장 해제 위원회가 (예정보다 수 년 지연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였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영국·아일랜드 정부 당국이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째, 경제적인 협력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992년 미국 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약하여 선출된 클린턴 대통령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하게 된다. 즉,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이리쉬 계통의 미국인 보다 좋은 예가 없으며 만약 평화를 되찾도록 온 민족이 노력을 하면 미국의 큰 투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 뿐만 아니라 EU 도 큰 기여를 했으니 미국은 아일랜드 국제기금(The International Fund for Ireland) 을 통하여 25여년에 걸쳐 9억 달러의 지원을 하고, EU 도 북아일랜드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n Northern Ireland) 을 통하여 20여년에 걸쳐 약 13억 유로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실로 많은 나라의 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배경으로 드디어 1996년 6월 10일에 미국 상원의원 죠지 미첼을 의장으로 다자협의체가 구성되었으며, 미첼의 어록처럼 '700 여 번의 실망'을 모든 참여자들이 경험 하였다. 이 기간 중에 IRA 내의 소수 분파가 테러 활동을 재개하여 연방주의 준군사조직들이 이내 보복을 할 것으로 염려가 되었으나 다행하게도 자제를 하였고, 연방주의를 표방하는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연방당 (UUP, Ulster Unionist Party)은 당수 데이비드 트림블 (David Trimble)의 용감한 리더쉽이 아니었다면 언제라도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아일랜드 정부의 대 양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헌법 틀은 1937년 제헌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으로 아일랜드 국가 영토에 (북아일랜드 영토를 포함하여) 아일랜드 섬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주의자들의 북아일랜드 영토의 주권에 대한 염려를 십분 고려하여 아일랜드 헌법의 개정을 전격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의 개정안은 아일랜드의 영토를 정의했던 기존의 제2조와 달리, 개정된 제2조는 아일랜드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였으며 개정된 제3조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양 국가의 국민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에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진행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 체결을 위하여 자국 헌법의 가장 기조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새삼 묻게 된다. 그리고 이 헌법 개정안이야 말로 그간 700여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머리 터지도록 대화에 임한 다자간 협의체의 진정성을 상징한다고 하여야 될 것이다. 또 이 협정의 성공 요인은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주고 양보하는 정신(winning-by-giving-up)을 실천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평화 여정의 소중한 결실이 된 벨파스트 협정

이 눈물나고 감동적인 노력은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협정 또는 성금요일 협정 (Belfast Agreement or Good Friday Agreement)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협정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와 정부의 구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관계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과의 관계가 포함됐다. 새로 설립되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는 권력 공동 책임제(power-sharing)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연방주의 대표와 민족주의 대표가 (의석 수에 비례하여) 북아일랜드 정부의 수상(First Minister) 또는 부수상(Deputy First Minister)을 맡도록 했다. 또한 모든 업무에 있어서 합의를 원칙으로 나라를 꾸려가도록 하였다.

1998년 4월 10일 벨파스트 협정에 서명하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버티 에이헌 아일랜드 총리. [사진=목헌 교수 제공]

항상 편파적으로 연방주의자들만을 위한다고 민족주의자들의 의심을 받아왔던 얼스터 왕립 경찰 (RUC, Royal Ulster Constabulary)은 완벽하게 새로이 개편하여 북아일랜드 경찰청(PSNI, Police Service of Northern Ireland)으로 개명되었다. 아울러 무장 해제를 완성하도록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IRA·UVF 등의 준군사조직 소속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던 재소자들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이토록 어렵게 살얼음을 걷듯 다자간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담은 벨파스트-성금요일 협정에는 한 가지 남은 숙제가 있었다. 이의 채택을 국민 투표로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협정 체결 약 한 달 후인 1998년 5월 22일에 선거가 이뤄졌다. 예측이 가능한 부정적인 미래를 선택할지 또는 예측 불허의 잠재적으로 밝은 미래를 선택할지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까 아니면 자식의 앞날을 고려할까를 다루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고 또한 용감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채택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쪽으로 나왔다. 북아일랜드에서의 국민 투표에서는 81%의 투표율에 71.12%의 찬성을 받았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에서의 헌법 개정 투표에서는 56%의 투표에 94%의 찬성을 받았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한 민족의 800년 역사의 숙명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결정을 아일랜드 백성들은 해냈던 것이다.  

협정의 세부 내용 중에는 그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조항도 있었다. 또 IRA가 협정에 참여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참 IRA(Real IRA)' 라는 분파가 1998년 8월 오마(Omagh)시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9명이 목숨을 잃는 대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에 대한 반응이 일체의 극단적인 행동 없이 최대의 자제를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민주적인 절차로 기획한 민족의 대 청사진에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답을 전 세계에 알려준 것이다.  

이 협정이 체결된지 25주년이 되는 올해 짚어보야 할 대목도 있다.

우선 슬픈 사실이지만, 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는 점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경우 생명을 잃은 사람이 3532명, 부상을 입은 자들이 4만명 이상이었다.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IRA 등 민족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사람이 전체의 59%, 연방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29%, 영국군 또는 얼스터 경찰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자들이 10%였다. 다시 말해 약 90%의 희생이 공권력이 아닌 양 진영의 군사 조직 테러에 의하여 자행됐다.

둘째는 민중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시민의 권익을 개인의 권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 또는 단체가 참으로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저 당시의 세태와 상황과 감정이 북받치는 대로, 올곧게 서 있지 못하고 비참한 소용돌이 속에 모두가 함께 휘말려 있었던 긴 30년 기간의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그리고 영국이었다.

앞서 16세기에는 종교의 차이를 명분으로 핍박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으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계속하면서 20세기에 까지 종교를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종교 제도권이 희생적인 사랑으로 계속되는 불의를 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본다. 

셋째는  흔히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와 비교하는 신문 기사나 논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연하게 다른 점들을 형평성 있게 다루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상대방도 그에 못지 않게 원 상태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에 공통적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었다. 즉 폭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3500 여명의 희생자들 중 90%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지 않고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성금요일 협정 당시의 다자간 대화 때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테이블에 나온 사회민주노동당(SDLP) 와 얼스터 연방당 (UUP)이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인 죤 휴움과 데이비드 트림블은 199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 받았다. 

너무도 많은 희생이란 대가를 치룬 북아일랜드의 소용돌이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함께 중지를 모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지혜롭게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목헌 교수는 = 아일랜드에 2006년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Dublin)의 생화학⋅면역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백질 3차 구조 연구 및 항암제 개발을 수행하고, 신약 개발 회사인 해믈리트 파마 (HAMLET Pharma, 스웨덴)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또,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40여개국의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하여 설립한 공동 연구개발 R&D네트워크인 유레카 (Eureka)의 전문 심사 위원, ICMRBS 의 이사 등을 지내고 있다. 목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약학 계열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후 도미, 버클리 대학교 (UC Berkeley) 에서 학사, 퍼듀 대학교에서 (Purdue University) 박사, CJ제일제당 종합 연구소 선임 연구원, 그리고 영국 외무성 치브닝 Chevening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실천을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벗삼으며, 더블린 한글 학교 발기위원장 그리고 아일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수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아일랜드에서의 재외 한국인의 위상 제고 및 그늘진 곳에 살며 탄식하는 아일랜드 인의 구제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LH "윗집 발망치 소리, 내년부터 끝" [세종=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지난 2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택성능연구개발센터(HERI). 세종시에 위치한 이곳에는 주택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여러 시험동이 있지만, 5층짜리 실제 아파트 건물 한 동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구 한켠에는 'db35lab(데시벨 35 랩)'이란 영문과 숫자 표기가 부착돼 있었다. 아파트 1층 내부에 들어가야 이 표기의 의미를 알게 됐다. 이는 LH가 층간소음 1등급 기준인 37데시벨보다 낮은, 도서관처럼 조용한 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층간소음기술연구소의 시험동 이름이다. 층간소음 등급별 시연 모습 [사진=국토부기자단 공동] 거실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화면에는 2층의 층간소음을 일으킬 수 있는 런닝머신, 책상과 의자, 공 등의 도구들이 보였다. 우선 화면을 통해 윗층에서 아래층에 전달되는 성인의 발걸음 소리를 들려줬다. 말 그대로 '발망치' 소리였다. 들려오는 소음은 49데시벨로 4등급 수준이다. 층간소음의 기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2005년 전에 지어진 공동주택의 경우 일부에서 이러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중량충격음이다. 이번에는 실제로 윗층에서 걷는 소리를 듣는 순서였는데, 귀를 쫑긋 세우지 않고서는 소음을 느끼기 어려웠다. 미세한 진동음이 들리긴 했지만, 불편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어 1m 높이에서 3kg 무게의 공을 떨어뜨리는 실험도 시연됐다. 이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중량충격음으로, 역시 4등급 수준에서는 참기 어려운 소음과 진동이 느껴지지만, 이곳의 실제 시연에서는 역시 진동음이 확 줄었다. 의자 끄는 소리는 비교적 가볍고 딱딱한 충격음이어서 경량충격음이라고 하는데 4등급 수준에서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했지만, 실제 시연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충격음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처럼 층간소음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데는 1등급 기준인 37데시벨에 맞춘 성능으로 시공된 바닥 때문이었다. 기존 슬래브 두께보다 두꺼운 250mm로 시공하고, 그 위에 40mm 복합완충재와 30mm 고밀도몰탈 및 와이어 메쉬 등을 함께 깔아 놓은 바닥재다. 공동주택 층간소음 저감기술은 2023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으나, 슬래브 두께는 210mm로 상대적으로 얇고 낮은 등급의 완충재와 일반 몰탈을 적용해 3등급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를 매년 개선해 온 결과 올해 1등급 기준을 충족하게 됐다. LH는 이러한 기술 개발을 실험동 연구에 그치지 않고, LH 공동주택 각 현장에 실증 시공을 하면서 실증 결과 데이터를 쌓아왔다. LH가 층간소음 저감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한 단지는 양주회천 A15블록으로, 당시 3등급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평택고덕 ab57-2블록에 2등급 수준으로 끌어 올려 적용했다. LH 연구원 관계자는 "이 같은 1등급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2022년부터 지속적으로 관련 기술과 공법을 연구해 왔다"면서 "47개의 기술 모델 개발과 총 1347회에 걸친 실증을 거쳐 자체 1등급 기술 모델을 정립해 내년부터 주택 설계에 본격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1등급 기준 설계로 분양가 상승의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기존 공동주택 24평형(전용면적 59㎡) 기준으로 가구당 300만~400만 원의 공사비가 더 소요되는 것으로 LH는 추정하고 있다. 정운섭 LH 스마트건설본부장은 "층간소음 1등급 설계 적용 때문에 수분양자의 분양가 상승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자체 원가절감과 함께 정부 재정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면서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공사비 상승의 주요인인 슬래브 두께를 슬림화하면서도 1등급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층간소음감지기를 통해 경고 알람이 뜨는 월패드 시연 장면 [사진=국토교통부기자단 공동] 층간소음 1등급 설계는 새로 짓는 공동주택에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구축에서는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LH는 이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층간소음 감지기를 IT업체와 협력해 개발 중이다. 바닥에 여러 차례 충격을 줄 경우, 층간소음 감지기의 센서가 작동해 해당 세대 월패드를 통해 주의를 당부하는 알람이 뜨도록 하는 장치다. 정승호 LH 스마트주택기술처 팀장은 "구조적으로 층간소음을 줄일 수는 없겠지만,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기준을 해당 세대에게 알림으로써 아래층 이웃과의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시연은 기존 공동주택에 적은 비용으로도 층간소음을 저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팸투어에 참여한 국토교통부 기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층간소음 1등급 바닥구조 [사진=뉴스핌DB] LH는 바닥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에 국한하지 않고, 옆 세대와의 벽간소음, 화장실 배관 소음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생활소음 저감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벽간소음을 저감하는 소음 차단 성능 1등급 벽체 구조는 2019년 11월부터 이미 설계에 반영한 바 있다. 내년부터는 화장실 배관이 아래층을 통하지 않고 각 세대 내에서 설치되는 자체 배관을 적용해 배관을 통해 전달되는 소음도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내구성이 좋은 장수명 주택, 수요자의 취향에 맞게 가변형 평면 구성이 가능한 라멘 구조 주택, 레고처럼 조립·건설하는 모듈러 주택 등 주택 건설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는 주택 유형에도 층간소음 1등급 접목 방안을 모색해 적용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LH는 층간소음 저감 기술 저변을 민간으로 확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선, 민간의 고성능 신기술을 발굴하고, 다양한 1등급 기술 요소의 시장화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올해에는 층간소음 기술 마켓을 통해 6개의 고성능 기술을 발굴했으며 LH 공공주택 현장에서 그 성능을 검증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LH는 층간소음 1등급 적용 확산을 위해 db35lab을 내년 3월부터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자체 층간소음 시험 시설이 없는 중소기업에 데시벨 35랩을 테스트베드로 제공해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LH는 또 그간 개발해 온 층간소음 저감 기술 요소와 시공법, 실증 결과를 중소 민간 건설사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더불어 자체 기술 개발과 층간소음 저감 시공·품질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에 대한 기술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이한준 LH 사장은 "2년 전 취임 당시 제일 먼저 강조한 게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약속한 것이었다"면서 "내년부터는 LH가 짓는 모든 아파트에 1등급 기준을 적용해 국민 일상의 생활 고통을 덜어주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벽식 구조의 공동주택에서 벗어나 라멘(기둥식) 구조와 모듈러에도 층간소음 1등급 기준을 적용해 100년 이상 가는 장수명 주택의 근간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dbman7@newspim.com 2024-11-24 11:00
사진
기후동행카드, 고양·과천도 30일부터 [서울=뉴스핌] 이경화 기자 =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가 오는 11월 30일 첫 차부터 고양시와 과천시까지 서비스를 확장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로써 서울~고양~과천을 오가는 시민들도 월 5만~6만원대로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난 1월 27일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출발한 기후동행카드는 3월 30일 김포골드라인, 8월 10일 진접선·별내선까지 확대됐다. 서울 공동생활권인 인구 100만의 대규모 도시 고양시와 지리적으로 서울시와 경기남부의 길목에 위치한 과천시까지 연결됨에 따라 수도권으로 본격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시는 기대한다.  서울 외 지역 기후동행카드 이용 가능 도시철도 구간 [이미지=서울시] 서울시와 고양시, 과천시는 지난해 2~3월 기후동행카드 참여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후속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11월 30일 고양시(3호선·경의중앙선·서해선), 과천시(4호선)의 기후동행카드 참여를 확정지었다. 관계기관들과 함께 시스템 개발·최종 점검을 완료했다. 이번 확대로 3호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역에서 서울시 송파구 오금역까지 모든 역사(44개)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경의중앙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역에서 구리시 구리역까지 34개 역사, 서해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역에서 서울시 강서구 김포공항역까지 7개 역사, 4호선은 남양주시 진접역에서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역사까지 34개 역사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현재 기후동행카드 서비스 범위에 이미 고양시를 경유하는 서울 시내버스 28개 노선과 과천시를 경유하는 6개 노선이 포함돼 있음을 고려하면 서울과 고양·과천을 통근·통학하는 약 17만 시민의 이동 편의가 더욱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용범위가 대폭 확대되면서 과천·고양 등 시민들도 기후동행카드의 다양한 문화 혜택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과천시 4호선 확대로 대공원역도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방문 시 서울대공원 50% 할인 등 혜택을 참고하면 된다.  기후동행카드는 올해 1월 23일 서비스 시작 이후 70일 만에 100만 장이 팔리는 등 시범사업 단계부터 큰 호응이 확인된 바 있다. 7월부터 본사업에 들어가면서 청년할인권·관광객을 위한 단기권 등 다양한 혜택이 더해졌다. 평일 최대 이용자가 65만명이 넘어가는 등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고양·과천 지하철 적용을 시작으로 수도권 시민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협의·시스템 개발 검토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확장을 위한 타 경기도 지자체와의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고 시는 덧붙였다.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려면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전화에서 '모바일티머니' 앱을 무료로 다운받아 충전하면 된다. 실물카드는 서울교통공사 1~8호선 고객안전실, 지하철 인근 편의점 등에서 구매한 후 서울교통공사 1~8호선, 9호선, 신림선·우이신설선 역사 내 충전기에서 권종을 선택·충전 후 사용할 수 있다.  기후동행카드의 고양시, 과천시 확대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고양시(031-909-9000), 과천시(02-3677-2285),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윤종장 서울시 교통실장은 "김포·남양주·구리에 이어 고양·과천 확대로 경기도 동서남북 주요 시군까지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대중교통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며 "교통비 절감·생활 편의·친환경 동참 등 일상 혁명을 수도권 시민들까지 누릴 수 있도록 수도권 지역 서비스 확대·편의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kh99@newspim.com 2024-11-21 11:15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