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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⑮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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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절제와 질서의 뿌리를 찾아

스웨덴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 몇 가지를 소개한다.

사례 1. 철로결빙으로 열차가 4시간 연착합니다

여행 중 환승역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에는 백여 명 정도의 승객이 운집해 있었다. 연일 안내전광판과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벌써 30분 째 기차가 연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시간, 2시간, 3시간. 핸드폰을 보는 사람, 대합실에 설치된 TV를 보는 사람,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창구에 찾아가 언성을 높여 가며 항의 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평온한 여느 대합실의 모습이다. 4시간 30분이 되어서야 기다리던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선다. 땅거미가 떨어진 추운 겨울, 질서정연하게 탑승하는 모습은 5시간 가까이 기다린 사람들이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일상적 여행객의 모습이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사례 2. 영하 15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사람들

11월 초 아침 8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온 눈으로 온통 나무들이 눈꽃을 피워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적한 동네라 아침 배차 시간은 30분마다 하나씩 되어 있다. 정시에 오던 버스가 15분을 기다려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지났고 결국 그 다음 버스도 10분을 기다렸지만 나타나질 않는다. 총 40분을 기다린 것이다. 옆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차분해 보였다.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본다. 40분 기다린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그 때부터 약속이나 한 듯 택시를 부르거나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지역뉴스를 보니 갑자기 내린 폭설 때문에 겨울 타이어로 교체되지 못해 버스가 곳곳에서 이탈 사고를 내 1~2시간 동안 버스가 배차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례 3. 비행기가 안개로 착륙을 못 합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여행 중 착륙 30분을 남기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어 옆 도시에 착륙하도록 하겠습니다." 칼마르(Kalmar)라는 도시가 종착지였으나 옆 도시 론네뷔(Ronneby)라는 곳에서 내리게 되었다. 비행기 착륙시간은 밤 11시, 숙소까지는 1시간 정도 거리였다. 도착해 택시를 잡기 위해 모두 민첩하게 움직인다. 시내에서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대기시켜 놓지 않았느냐는 항의나 무책임하다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례 4. 파업으로 비행기가 뜰 수가 없습니다

SAS 파일럿 노조와 사측의 임금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톡홀름 아를란다 국제공항에는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승객들이 긴장하며 타협소식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타협까지 이르지 못하고 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가 계획으로 들뜬 마음으로 공항을 찾았던 승객들은 하나 둘씩 조용히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비행기를 타지 못한 승객의 수는 적게 잡아도 5000명이 넘었다고 저녁 뉴스에 나온다. 불상사나 항의 승객, 고함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내면

스웨덴 멘탈리티(Svenska mentalitet)를 출판해 인기를 끈 민속학자 오케 다운(Åke Daun)은 이렇게 분석한다. 스웨덴 사람들의 내면에는 누구와 충돌하거나 주목받는 것을 회피하는 통제장치가 있다. 이를 그는 갈등공포증(Konfliktfobi)과 갈등회피(Konfliktundvikande)라 지칭한다. 자신의 큰 목소리에 누군가 받을 불쾌함이나 당혹감을 생각해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면전에 누구와 부딪힌 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다. 누구와 따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오케 다운 교수의 분석은 이런 멘탈리티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로 향한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다운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 문화의 핵심에는 무엇보다 가정의 양육에 있다고 보았다. 스웨덴에서 부모의 자녀 양육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자녀를 보호해 주기 위한 최선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틀과 규정, 그리고 제도에 대한 전수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의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식당에서 뛰어 다니며 소리 지르는 아이를 보기 드물다. 크게 떠들거나 떼를 쓰는 아이를 부모는 예외 없이 아이의 눈을 보며 손으로 "쉿"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통제가 안 되는 아이는 바로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식당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대합실, 병원대기실, 민원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주위사람들과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들이 사회적 규범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적인 전통이 내면의 세계형성에 깊게 자리 잡고 있고, 1940년대 이후 회자되기 시작한 얀테의 법칙과 라곰이 만들어낸 내적 평형상태에 이른 듯하다.

[사진=스톡이미지]

단 것을 토요일에만 주는 문화

스웨덴에서 아이들이 떼를 쓸 때 부모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얼까? 이 표현을 주로 쓴다고 한다. "쉿, 토요일 사탕을 생각해야지!" 더 떼를 쓰면 토요일 사탕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유추적 레토릭처럼 들린다. 막무가내로 떼쓰거나 우는 아이에게 이 한 마디는 즉각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토요일 사탕은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일주일의 최대 위안거리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구디스(Godis, 젤리, 사탕, 초콜릿 등 단 것을 총칭)를 사는 것이 아이들이 있는 보통 집안의 주 중 행사다. 장 볼 때 주로 아이들이 함께 구디스 가게에 동행하는 이유다. 토요일(Lördag)과 결합한 단어 토요일 사탕(Lördagsgodis)은 대명사 형태로 사용된다. 아이들은 토요일 사탕을 먹기 위해 1주일 동안 순한 양처럼 부모의 말을 따른다. 연구에 의하면 2차 대전 당시 치아 건강을 위해 정부에서 자녀가 있는 가정에 권장한 공익 캠페인이 전 가정에서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곳에 숨겨 놓고 혹시 찾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게 한다. 국민의 치아 건강상태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연구결과들이 나와 점차 스웨덴 전통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하는 가설들이 소개된다. 주말 함께 단 것을 먹는 것이 가족마다 즐거운 축제이자 작은 예식이 된 셈이다. 여전히 이 구디스 문화는 스웨덴 사람들의 정서를 관통하는 전통 중 하나다. 이 토요 구디스는 특히 아이들의 감정이 폭발할 때 달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적 브레이크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 사탕예식도 규율을 가르치는 사회심리교육의 일환인 셈이다.

그들의 감정 통제에 대한 나만의 해석은 이렇다. 스웨덴은 2000년부터 정식으로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1536년부터 정교일치 국가였다. 루터교를 받아들인 이후 교회는 국가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온 국민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의무였다. 성경을 읽게 하고 암기하도록 했다. 암기를 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심리적 압박 뿐 아니라 회초리 등도 사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는 역사책을 본 적이 있다. 또한 교회는 학교가 생기기 전까지 마을의 교육기관이었다. 마을 교회 교구장은 목사님이자 선생님, 그리고 결혼식 때 주재자였으며, 돌잔치, 생일파티 등 함께 하는 마을어른 역할도 수행했다. 내가 35년 전 스웨덴에 처음 갔을 때 동네 교구사무소에서 주민신고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목사님은 이장님이기도 한 셈이다. 이렇듯 교회는 국민들이 국가의 규율을 따르게 하고 기독교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자 마을 질서를 바로 잡는 규율 반장의 역할도 함께 수행했다. 500년 동안 국가 규율을 따르고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던 관행과 습관이 법과 질서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 한 주요 원인이 아닐까 짐작된다.

기독교 문화적 설명도 사실 불완전하다. 내가 손해 볼 것이 확실한데 과연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은 이익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는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금전적, 정신적 손해에 대한 보상체계가 기본적으로 작동해야 그나마 마음이 너그러워 지지 않을까? 그래서 이들의 행정보상 제도를 들여다보았다.

[사진=게티이미지]

스톡홀름 시내버스의 경우 예정했던 여행에서 20분 이상 연착하면 2023년 기준 최대 1350 크로네(한화 약 15만원)까지 환불이 가능하다. 버스가 오지 않아 택시를 탔다면 사유서와 함께 영수증을 3개월 이내 고객 상담실에 제출하면 최대 환불금액까지 되돌려 준다. 그리고 3년 이내 영수증과 사유서를 제출하면 최대금액까지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도시마다 약간씩 절차와 규정은 달라도 비슷한 방법으로 환불 받을 수 있다. 기차의 경우 150Km 이상 여행할 때 20분 연착시 50%, 40분 연착시 75%, 1시간 이상일 경우 100%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

항공기의 경우 여행자 보험을 통해 추가되는 비용을 변상 받을 수 있다. 금전적 보상은 어떤 경우든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는 셈이다. 정신적 스트레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부분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중교통이나 열차, 항공편의 연착과 관련하여 병원치료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면 여행자보험이나 가정보험으로 어느 정도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고 그 과정을 준비하고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것이 현명하기는 하지만 권리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은 확실하다.

행정 결정의 편지에 담긴 내용

어떤 행정결정이든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행정법에 따라 행정결정 통지서는 다음의 문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결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3주 내에 서면으로 재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의 행정업무로 인한 예정된 손해 혹은 불이익에 대한 재심의 요청권은 시민들이 굳이 결정 기관을 달려가지 않아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나 당연히 내지 않아도 될 세금 혹은 범칙금 등의 경우 재심의 요청권을 사용하면 된다. 스웨덴 행정법(Förvaltningslagen) 43조에 따라 반드시 서면으로 결정사항에 대해 3주 내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고, 해당 기관에서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경우 사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면 행정소송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행정심판절차는 3심제도로 되어 있어 행정대법원까지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행정소송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사유로 선뜻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잘못된 근거 사유나 오판에 따른 행정결정에 대한 시정절차가 열려 있고, 결정 근거에 대한 설명과 유사한 사례에 대한 정보의 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굳이 결정권자에게 달려가 항의하거나 얼굴을 붉힐 일이 없어진 셈이다. 스웨덴에서 다양한 시 건축과와 환경과, 자동차 시험장, 세무서, 동사무소를 다녀 보았지만, 공공기관에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불편한 입싸움들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행정결정 재심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예기치 못한 실수와 결과를 인정하는 사회

어떨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멘탈리티의 핵심은 얀테의 법칙에 기반한 배려와 겸손의 미덕, 그리고 상호신뢰에 따른 선을 넘지 않는 행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이론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원인의 4가지 양상을 제시한 데보라 스톤(Deborah Stone)의 연구 '정책의 패러독스: 정치적 결정의 예술'을 보면 행위의 두 차원 (의도 목적적/비목적적) 그리고 행위결과의 두 차원(예기된 결과/비예기 결과)에서 4가지 사례가 나 올 수 있다.

명확한 의도와 목적에 따른 행위에 따른 원하던 결과(버스 기사의 높은 서비스 질과 승객의 만족도)
명확한 의도와 목적에 다른 행위에 따른 예상치 못한 결과(버스나 기차 운행이 갑자기 내린 폭설이나 기계의 고장으로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결과)
불명확한 의도 혹은 비목적적 행위에 따른 원하던 결과(우연히 친구가 구입해 준 복권이 1억에 당첨)
불명확한 의도 혹은 비목적적 행위에 따른 예상치 못한 결과(후진하는 자동차에 보행자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1번과 3번은 원하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소비자는 만족하는 경우이지만, 2번과 4번은 모두 원하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불만족스럽거나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네 가지 예문 중 제일 심각한 경우는 4번에 해당한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거나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경우는 책임소재가 명백하다. 하지만 2번의 경우 아무리 목적적 행위라 해도 전혀 예측 못했던 상황, 예를 들어 자연재해(태풍, 눈사태, 폭설, 폭우), 타이어 펑크와 같은 예기치 못한 기계적 결함 등에 있어서는 불가항력 적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경우 2번에 매우 관대하고 이해력이 높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이 불편한 상황을 다른 사람과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대들지 않고, 적절한 보상으로 만족하려 한다. 원인을 규명해 더 효율적인 대처를 위한 노력과 제도적 조치를 신뢰한다. 4번 경우에 있어서도 슬퍼하고 좌절하면서도 감정을 통제한다.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제공하는 심리치료를 받거나 비슷한 시련을 겪었던 사람끼리 함께 위로 받으며 심리치료를 받거나,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법제화 운동과 경각심을 높이는 사회운동을 전개한다.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의 경우 2번 상황에서 당장 그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한 데도 누군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2번과 4번의 경우 관련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소비자는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다. 가장 명확한 경우는 꼼꼼한 관련법규가 마련되어 있어 제공받지 못한 서비스나 경제적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을 때다. 그렇지 않고 떼를 더 쓰는 사람이나 적극적으로 항의한 사람에게만 배상이 제공되거나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너도 나도 그 행위에 동참하려 한다. 즉 잘 구축된 보상제도의 유무와 예기치 못한 실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완충장치, 원인규명과 추후 유사한 사고에 대한 효과적 대처 등의 유무와 신뢰정도가 사회적 반응의 차이를 보여준다.

2번과 4번의 경우 피해자를 위로하기보다 피해자 가족을 부추기거나 정부의 책임으로 전가하며 함께 투쟁하면 사회적 상처는 치유하지 못한 채 더 오래 지속되고 화를 더 조직적으로 키울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정치화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정치의 영역은 책임 규명 과정의 투명화와 유사한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추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했을 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법제화 하고 시설 설치와 점검 등에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는 노력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보상제도의 적절성, 희생자 가족을 위한 심리치료 서비스의 유무와 효과성, 엄청난 충격으로 생긴 국민들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국민 정서 보듬기 등 국가의 화합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절제와 질서의 뿌리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연구서 '변화하는 사회의 정치질서(1968)' 와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연구서 '정치질서의 근원(2011)'에서 인지적 관성(Cognitive inertia), 즉 변화의 요구에 대한 완고성과 저항성이 강할 때 무질서와 폭력적 행태가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바뀌는 사회, 변하지 않는 사회, 지키려는 세력이 완강한 저항을 할 때 더 많이 분노하게 된다고 본다. 또한 이권이나 친분과 연결되어 거래하는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와 가족 및 친척끼리 끌어주는 친족주의 (Nepotism)로 구성되는 후원주의(Patronage)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이를 깨트리기 위해 격렬한 반항과 폭력이 더 쉽게 수반되어 질서가 파괴된다고 보았다. 이런 나라일수록 질서가 낮게 뿌려내려 정치민주화의 기반이 약하다고 보았다.

더 순간적으로 흥분하는 국민일수록 기다리지 못하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많은 시간 기다림이 있었지만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격하게 요구하면 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굳이 요구하거나 어필하지 않아도 규칙에 따라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정도나 똑 같은 수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굳이 반응을 할 필요가 없고 추후에 절차를 밟아 진행하면 된다.

후쿠야마는 질서 잡힌 국가의 3가지 조건으로 행정부의 능력, 법치, 민주적 책임성을 든다. 이 세 가지가 잘 작동하는 국가일수록 질서와 규칙이 잘 지켜지고, 약할수록 사회적 불안정 현상, 즉 저항, 항의, 감정 폭발 등이 쉽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절제하면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제도화와 관습화는 많은 시간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더 좋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문화의 개조와 사회심리적 요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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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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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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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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