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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⑯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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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노사관계의 대전환, 4차산업시대의 노조, 기업, 정부의 역할

말뫼의 눈물 뒤에 숨은 진짜 말뫼의 얼굴

말뫼의 눈물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크레인이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 해체된 해는 2002년이다. 1999년 말뫼를 방문했을 때 크레인은 주인을 찾지 못해 외롭게 혼자 서 있었다. 조선소 도크에 남아 있는 기름 때, 철판조각, 그리고 쓰레기들만 바닷바람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는 코펜하겐과 연결되는 다리를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말뫼의 눈물은 한국적 시각에서 스웨덴을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말뫼는 사실 회심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한국으로 떠난 크레인이 있던 자리는 지금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 되었다. 옛 조선소 자리에 신도시가 세워졌다. 해양대학과 말뫼대학 등 2개의 대학과 바이오제약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메디콘벨리가 들어섰고, 친환경 주거시설, 그리고 문화와 휴식이 있는 최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내가 한국 참가자들과 말뫼시를 방문했을 때 정치인들은 크레인이 노동력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마지막 상징이라고 했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스웨덴은 조선소 대신 새로운 신산업을 꿈 꿨다. 바이오산업, 관광, 휴식, 문화, 친환경 아파트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그리고 대학이 어우러지는 현대적 도시로 탄생시켰다. 말뫼에서 코펜하겐까지 연결되는 외레순드 다리(Öresundsbron)는 1995년 착공되어 2000년에 완공되었다. 코펜하겐에서 사는 사람들을 끌어 들여 국제적 도시로 거듭났고 스웨덴에서 가장 생활수준이 높은 친환경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말뫼의 눈물은 사실 왜곡된 것이고 말뫼는 뒤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말뫼시의 정치인들은 다 계획이 있었던 셈이다. 자기 돈 한 푼 안들이고 해체해 치워줬으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단 돈 1크로네, 백 원에 넘겼지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노사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코쿰스 조선소가 선박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자 과감하게 칼스크로나 조선소에 매각을 결정했다. 노사가 함께 합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코쿰스 조선소가 합병된다고 했을 때 노동자 시위나 파업은 없었다. 노사합의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코쿰스를 떠난 노동자들은 재취업교육과 업종전환을 위한 직업교육, 혹은 대학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퇴사 후 직업교육과 창업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국가차원에서는 실업급여를 1년 동안 지급하면서 코칭과 직업훈련 등의 활동지원, 대학 재교육을 택한 노동자들에게는 CSN을 통한 학업지원금을 제공해 주었다. 말뫼의 웃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코쿰스 해고 노동자를 위한 기업의 재취업과 재교육 지원, 그리고 정부의 재고용 지원책과 사회안전망의 합작품이다.

노사 간의 평화적 관계는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다. 산업구조 개편은 기술의 발전, 국제경쟁력, 국제경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신흥 경제도상국이 낮은 임금이라는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 주력산업의 미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 노사 간의 공통의 인식과 협력은 성공을 위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경쟁력이 없는 조선사들을 통폐합시키면서 마지막 단계에서는 국가가 인수해 국방산업 생산시설만 남기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군함과 잠수함 등 국방산업 부분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스웨덴 기업 SAAB에게 생산권을 최종적으로 넘겨주었다.

이 산업재편 과정에서 고용 보호법(LAS, Lagen om anställningsskydd)의 LCFG(Last come, first go) 원칙에 따라 장기근속 노동자를 먼저 보호해 주었고, 최근 신규 채용자들은 재취업 교육 제공, 창업지원, 업종변경 대학교육 등의 정책수단으로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기업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가는 특별지원금을 투입해 노동자의 재취업을 적극 지원해 주었다.

[출처=게티이미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부의 역할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 노사관계다. 너무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할수록 자생적 노사관계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에는 최저임금에 관한 법이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임금정책은 노사 간의 협의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너무 높게 요구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업은 너무 낮게 책정해 노동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동인식이 맞아 떨어져 적정선에서 매년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이 정적선은 한꺼번에 수직 상승할 걱정이 없다. 노사 간의 합의에 맡겨 놓았기 때문이다. 노사문제는 노사 간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성공적 모델이 바로 1938년 스웨덴의 살트쉐바덴 협약이다.

협약 체결 전까지 완전 적대적 관계였던 스웨덴의 평화적 노사관계 구축 경험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사가 협상하지 않으면 파업금지법과 직장폐쇄금지법을 제정해 노사의 힘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평화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준 것이 정부였다. 또 다른 정부의 역할은 불법파업에는 법에 따라 엄정대처하고, 노조 활동 방해, 고용과 해고, 그리고 임금을 무기로 노동자에게 폐해를 끼칠 때는 법에 따라 기업을 제재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친노조 정권이나 친기업 정권 모두 건강한 노사문화를 위해서는 중립을 지켜 주는 것이 좋다.

살트쉐바덴 협약은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지 3년간의 노력 끝에 성사될 수 있었다. 고용, 노동환경, 임금에 관한 사안은 오로지 노사 간의 협의로 해결하고 상시 대화 체제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진 것이 주효했다. 상반기와 하반기 정례모임과 수시 임시 모임을 가동해 양자 간의 의견 차이를 줄여 나갔고, 이 전통은 1984년까지 유지되었다. 1960년대 철광석 금속노조의 파업 등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46년간 무난하게 노사 간 평화체제가 유지된 전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자기금법 제정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대화 채널은 1991년 기금법 폐지로 1997년부터 다시 복귀될 수 있었다. 이후 25년간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이 노사평화 체제는 스웨덴의 복지모델과 함께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의 핵심적 요소를 이룬다.

스웨덴 평화적 노사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제조건이 존재한다. 사민당 정부가 노조에게 오로지 노동 문제만 가지고 협상에 임하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었다는 점이다. 노조의 정치화와 폭력화는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조건이었다. 친노조 노선인 사민당 정권은 이점을 분명히 했다. 사민당 내에서는 노동자의 교육이 노조의 능력배양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고, 사민당 주도로 노동자 교육을 위한 노동자 지도자 학교인 브룬스빅 직업고등학교(Brunsvik folkhögskola)를 1906년 설립했고, 이어 노동자교육협회(Arbetarnas bildningsförbund, ABF)도 1912년 설립해 노동자의 교육에 집중했다. 브룬스빅 학교의 교육을 잘 알고 있는 ABF 학교의 교육담당자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경제, 무역, 기업, 세계사 등을 모르면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되고 기업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강성노선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협상법을 알지 못하면 억지 논리만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 그리고 레토릭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고 한다. 1920년대부터 이때부터 의식개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에서 협상과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전국노총 LO는 스스로 노동자의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과 국제연대를 통한 국제 공조를 통해 국가의 중요한 권력기관으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책임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살트쉐바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들도 노조의 불인정과 고자세 일변도에서 노조의 인정과 협상이 장기적으로 서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사민당의 중간자적 노력에 답하기 위해 노조와의 대화에 나섰다. 이것이 좌파계열 정당들의 역할이다. 불법파업이나 폭력 점거, 파업 비참여자 활동방해, 산업현장 일자리 편취, 관행적 뒷돈 요구, 출근 도장만 찍고 퇴근 등은 좌파 정당들이 이들에게 페어플레이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계열 정당들의 당대표, 의원들이 노조의 비리와 문제를 지적해 시정해야 한다고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 하나 없다. 하지만 진보계열 정치인들과 이야기 해 보면 한결같이 문제가 있거나 시정을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표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친분관계와 배신프레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당과 정부도 기업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쓴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근무환경개선, 장애인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에 버금가는 처우 등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파 정부의 노사 간 중립적 모습이다. 또한 어떤 정부든 기업인의 일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업 CEO를 모아 놓고 수시로 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고용대책을 요구하고, 해외순방에 함께 대동하고, 올림픽, 박람회, 월드컵 유치에 동원시키는 것은 자제해야 된다. 기업회장들이 각 스포츠 단체장을 역임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모든 기업을 동원해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무리다. 미국(트럼프는 제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에서 기업회장들을 모아 놓고 경제진작 회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기업인들을 단체로 만나는 대통령을 볼 때마다 일을 잘한다는 생각보다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비록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면 각 기업체를 방문해, 혹은 저녁시간에 따로 식사와 함께 만나는 것이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 올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이다. '기업인들 손을 보고 왔다'고 하는 정치인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기업인이 경영능력을 발휘해 이윤을 내고, 그 이윤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존경해 주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관리감독을 통해 적발되면 사법적 책임과 판단은 사법기관에 맡겨 놓으면 된다.

스웨덴에서 노조가 먼저 연대임금제를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해 온 루돌프 마이드너(Rudolf Meidner)라는 걸출한 노조 수석 경제연구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국 노총회의에서 채택될 수 있을 정도로 노조대의원들의 의식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당시 스웨덴 고소득 노조였던 금속노조가 대폭 양보해 저임금 노조의 임금인상을 위해 스스로 임금인상을 양보해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열린 인식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제안 자체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1950-60년대 빠른 경제성장의 열매는 노동자의 연대임금제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것을 기업이 모를 리 없었다. 연대임금제를 통해 노동자간의 임금격차가 빠르게 줄어 들 수 있었고, 주력 수출 기업들의 산업경쟁력도 금속노조의 임금인상 양보로 빠르게 강화되었다. 전형적인 win-win 모델인 셈이다.

노사 패러다임의 전환

스웨덴 노동운동의 핵심적 메시지는 노동운동이 더 이상 좌파정치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전환되는 순간, 순수 노동운동의 성격은 상실되고 정치적 행위가 된다. 파업은 순수하게 노동자의 권익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정치파업 자체가 불법이다.

이제 파업구호와 전투적 머리띠, 삭발식을 벗어 던지고, 일상적 모습으로 노사 간의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단체들이 스웨덴 노조를 방문해 토론하면서 받은 영감 그대로 한국에서 한번 멋지게 펼쳐 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의 노조들도 국민적 지지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용주들도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를 존경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임금을 매개로 한 계약의 주종 관계로 매출을 높여주는 기계부품이 아니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좋은 서비스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아야 한다. 직장을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역할은 고용주의 역할이다. 나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본다. 직업상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나이가 드니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화면의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이 힘들어 교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학과장에게 이야기 했다. 위 아래로 높이가 조절되는 책상, 허리 통증에 효과가 있는 특수 의자, 그리고 28인치 모니터를 원한다고 했다. 학과장은 나의 사정을 다 들어 주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우리 학과에 젊은 교수들, 그리고 신임 행정 직원들, 장애가 있는 직원, 출산 직전에 있는 직원들의 책상과 의자, 컴퓨터, 모니터 등을 우선 배정하다 보니 올해 예산이 고갈되었어요. 내후년에는 꼭 예산을 배정해서 교체해 드리도록 할게요." 학과장실을 나와 새로 입사한 행정직원의 열린 사무실을 지나가며 본다. 최신의 기능을 가진 의자와 높낮이 조절 책상, 32인치 커브드 모니터, 아주 작고 가벼운 랩탑, 활모양으로 휜 컴퓨터 자판으로 커피를 마시며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노동환경법에 따라 고용주는 피고용자의 최적의 노동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무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과 장애인, 그리고 여성, 특히 산모와 임산부에게 먼저 예산을 배정한다. 하지만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고용주들은 피고용자들이 하는 일에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산성에도 좋고 회사에도 좋다. 스웨덴의 직장에서는 매년 직원만족도를 조사해 부족한 부분을 더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스파가 있는 고급 숙박시설에서 1박 2일 머물며 갖는 연말 회의에서 직원만족도 결과를 평가하고 또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직원이 행복해야 직장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 매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해보고 싶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작든 크든, 노동현장이든 사무실이든 이런 직장문화를 어디든 제공할 수 있다면 세계적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직장에서는 노조도 머리띠 두르고, 삭발식을 치르고, 구호를 외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스웨덴에서 신임교수로 채용되었을 비정규직으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채용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인사팀 직원이 정규직 교수 평균 임금자료를 보여 주면서 정규직에 준하는 초임을 설정했고, 정규직 교수가 받는 여름휴가 33일(나이별로 책정되지만 최소 29일을 받는다. 주말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5주에서 7주가 1년 유급 휴가기간이 된다), 정규직에게 주어지는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 제공(봉급의 20%로 자유 연구, 융통적 사용 가능)이 주어진다고 했다. 정규직과 차이가 없는 임금과 휴가 적용, 그리고 자기 계발 인센티브 등이 적용되었다. 아플 때도 정규직과 똑 같이 병가급여가 지급되었다.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근무 연수 증가에 따라 봉급이 조금 더 오른 것 빼고는 비정규직과 차이가 없었다. 스웨덴의 모든 직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이 불가능한 것은 노사 간의 협약에 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간제노동자(Part-time workers)의 임금적용, 직원복지와 사회복지 적용에 있어 차이가 없으니 정규직과 비정규간의 미묘한 갈등이나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노사 대전환을 위하여

이제 변해야 할 때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경영하기 좋은 나라 뿐 아니라 모든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노동환경, 직원의 복지를 챙겨주는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 노사중립적 자세를 취할 것을 권한다. 노조는 노동문제에만 국한한 노조활동을 할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하고, 연대임금제를 실천할 것을 선언해 중장기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직종 노조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임금협상도 스웨덴 노사의 협상방식처럼, 물가상승률, 매출, 연구투자, 국제적 환경 등을 고려한 타협안 제시를 통한 평화적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변화지 않으면 국민적 대저항과 쇠퇴 밖에 퇴로가 없다. 새로운 MZ세대의 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자를 파트너로 진심으로 대하고 사원들의 근무환경을 피고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성과급을 더 주는 것은 자유시장 기업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노동환경을 신입사원, 장애인, 임산부들 우선으로 챙겨주고, 노동조건과 환경을 팀워크와 화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너지 효과가 분명 나타난다. 구조 조정시 재취업을 완벽하게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스웨덴의 예에서 보듯 해고 후 1년간 재취업 교육, 창업기금 보조 등으로 해고 후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의 도래로 산업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양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퍼붓지 말고, 신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동유연성이 가능하게 하려면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실업기금, 재취업교육지원, 창업교육지원, 필요할 경우 2년제 전문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개인 코칭을 통한 직업매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유연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스웨덴에서 구조조정 시 노조의 반발이나 노동자의 시위가 없는 이유는 꼼꼼한 사회안전망과 기업과 연계한 재취업 프로그램이 탄탄해 다른 직종이나 직장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 폐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스웨덴 기업이 높은 복지기여와 세금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업경쟁력과 스웨덴 시장에서 남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배경은 기업들의 경영권 보장과 기업환경이 세계에서 최고로 잘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적용하고 있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과 비의결권 주식으로 구분해 창업주들이 공격적 해외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제도도 검토해 볼 만 하다.

노조가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들이 많아 나와 줄 때 국민들은 살 맛이 난다. 사양 산업이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 노사협약에 따라 평화적으로 산업재편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도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체제전환이 요구된다. 모두가 바뀌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서로에게 미루지 말고 함께 무릎을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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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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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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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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