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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의 원형 현대화에 투신한 이희중 5주기전 '무한을 향한 시선'

기사입력 : 2024년10월11일 15:16

최종수정 : 2024년10월13일 21:47

추상 실재 넘나든 회화, 예술의전당 미술관서
10월 10일~18일, 용인에서도 순회 전시
이희중 예술세계 조명하는 비평세미나도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한국미의 원형을 현대화하는데 일생을 투신해온 화가 이희중을 기리는 추모전이 10월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희중은 우리 겨레의 미감이 투영된 민화를 비롯해 민담, 무속신앙, 불교 등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해온 작가다. 그러나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인 63세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 미술계에는 독창적 작업을 펼쳐왔으나 일찍 타계해 안까움을 주는 작가가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이희중은 전통에 뿌리를 두되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했던 작가라서 그 아쉬움이 매우 크다. 그런 작가의 5주기를 맞아 이희중의 작업세계 전반을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대규모 작품전이 마련돼 주목된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 이희중 '나비의 꿈' 2012, 캔버스에 유채. 97x162cm, 2011. [사진=이희중 갤러리] 2024.10.09 art29@newspim.com

이희중갤러리(대표 권정옥)는 10월 10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석운(石韻) 이희중(李熙中·1956~2019)의 회고전 '이희중 0426:무한의 시선'(Yi Hee-choung 0426:A View towords Infinity)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전시 타이틀 중 '0426'은 작가의 출생일이자 사망일을 가리키는 숫자다. 이희중은 자신이 태어난 생일 날에 아쉽게도 숨을 거뒀다.

이번 추모전에는 이상과 실재를 넘나들며 이 시대 새로운 양식의 풍속화와 추상화를 추구했던 이희중의 유작 800점 중 계열별로 주요작을 추려 총 100여점이 나왔다.

한편 한가람미술관 전시 이후에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의 이희중갤러리에서 기획전이 이어져 열린다. 이희중갤러리의 첫 전시인 5주기 추모전은 오는 11월 1일~12월 31일 개최된다. 아울러 이희중갤러리는 카이스트미술관과 이희중 작가 작품 기증과 관련해 세부사항을 협의 중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이희중 무한을 향한 시선 5주기 추모전 포스터 2024.10.09 art29@newspim.com

5주기 추모전에는 작가가 제작한 작품 중 '푸른 우주' '첩첩산중' '풍류기행' '푸른 형상' '나비의 꿈' 등의 시리즈 중 대표작에 해당되는 작품이 출품됐다. 즉 1980년대 제작한 '산과 용'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제작한 그림까지 전 시기에 걸친 주요 작품이 내걸렸다.

이번 전시는 이희중이 세상을 떠난지 5년만에 처음 열리는 회고전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작품에 매진했던 이희중 작가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유족과 제자, 평론가들이 뜻을 모았다.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끈질기게 구축했던 이희중은 교육자로서도 열심히 살았다. 용인대학교 첫 제자인 다발킴은 "용인대 졸업 후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석사과정을 밟게 된 것도 교수님의 독려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에서 자리를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기획 총괄하면서 스승의 조형세계가 다시 평가받고, 주목되길 소망한다"고 스승을 추모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이희중 '첩첩산중' 1994. 캔버스에 유채. 87x579cm [사진=이희중 갤러리] 2024.10.09 art29@newspim.com

홍익대학교 회화과 동기인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이희중은 한창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때에 쓰러져 너무 아까운 작가다. 살아서 작업을 계속하고 전시도 이어갔다면 K-컬쳐 붐 속에 그의 작품이 더욱 활짝 피어났을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가 제대로 널리 알려지기 원한다고 했다.

▲전통의 현대화에 평생을 바친 작가

이희중은 우리 민초들의 삶의 철학과 미감을 조명한 작품과 함께 기호화된 우주관을 형상화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풍속화를 선보인 것이다. 고인은 병중에도 매일 몇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타고난 화가였다.

작가로서 그는 우리 고유의 민화와 옛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에 일관되게 매진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의 재발견이자 전통의 현대화이다. 용을 주제로 한 '문자도'와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한 '풍류도',  그리고 '우주도' 등은 이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이희중의 초기작 '산과 용'. 1986. 캔버스에 유채. [사진=이희중갤러리] 145x155cm 2024.10.09 art29@newspim.com

'우리의 전통을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양식화하느냐'가 이희중 작업의 중심이었다. 이 문제를 작가는 '차용'과 '각색'을 통해 접근했다. 민화나 선대 화가들의 작품에서 일부를 차용하고, 이를 자신의 조형언오로 '자기화' 하는 방법론은 이희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시켜온 기법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해석이 나타나고, 전통적 상징이나 기호가 세련되게 각색됐다. 그것은 끊임없는 변형의 과정인 동시에 자기화, 곧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었다. 상징과 기호의 추상화의 정도는 '풍류도'보다 '문자도'와 '우주도'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렇게 한국미의 전통을 중시하며,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몰입했던 배경은 흥미롭게도 작가의 가문에서 발견되고 있다. 600여년 전부터 이어온 도도한 예술가의 피가 그의 DNA 속에 있었음이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조선시대 최초의 지도로 알려진 '팔도도(八道圖)'(1402년)의 제작자인 조선전기의 문신 이회(李薈)가 이희중의 직계 선조이며, 조선말 궁정화가이자 일제강점기 때 미술가, 삽화가, 미술교사로 활동했던 행인 이승만(1903-1975)이 그의 선대 할아버지다. 이희중이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이의 현대적 계승에 몰두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자신의 작업실에서 선 생전의 이희중 작가. [사진=이희중 갤러리] 2024.10.09 art29@newspim.com

▲독일유학 중 심화된 '전통의 차용과 각색'

이희중이 전통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게 것은 의외로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였다. 홍익대학교 졸업 후 1985년 독일 유학길에 올라 1991년까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Kunst Akademie Düsseldorf)를 졸업하고 마이스터슐러(Prof.Hohenbuechler Irene)를 취득하기까지 6년간 독일에 체류하며 한국의 문화적 원형을 찾는 작업에 몰두하게 됐다. 독일로 떠나기 전인 1980년대 초반 '잡초' 시리즈를 비롯해 문자 추상과 민화를 번안하는 작업을 시도했던 그는 독일 체류기간에 일련의 이들 작업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작업이 가져온 성과는 스테들러 화랑 초대전(1989), 스테허 화랑 초대전(1989), 안파리나 화랑 초대전(1989), 이파 화랑 초대전(1991)을 통해 나타났다. 이미 한국에서 전통 한지에 대한 재료적 실험을 지속했던 그는 독일에서 이를 더욱 깊이 파고들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실험은 민화에 대한 다각적인 탐색으로 이어졌다. 그의 이같은 작업에 독일의 여러 화랑들이 크게 호응하며 초대전 제의가 줄을 이었던 것이다.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민화는 당시 이희중에게는 작업에 있어 매력적인 보고였다. 화제(畵題)에 따라 십장생도, 백록도, 노송도, 운룡도, 금상산도, 용호도, 치우도, 어락도, 문방도, 모란도로 나뉘는 민화의 다양한 세계를 이희중은 끈질긴 연구와 분석을 거쳐 여러 형태로 변형 압축했다. 

▲이상 · 추상 · 상징 거친 '전통의 현대화'

이희중이 조선민화 특유의 기(氣)와 치기(稚氣)를 변용하고 차용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구축했다. '전통의 현대화'가 성공하려면 오늘의 관점에서 소통하며 독창적 면모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희중이 보여준 비전은 '생동감 있는 조형감각'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의 '풍류도'에 나타나는 공간 구조의 특징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땽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풍경을 그린 '풍류' 연작은 한국 특유의 자연관이 세련되게 응축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랜드스키이프이지만 독립된 작은 단위로 분할되는 특이한 구성법으로 이뤄진 것도 이희중만의 독자성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이희중 '푸른 우주' 2011, 캔버스에 유채, 70x200cm(부분).  [사진=이희중 갤러리] 2024.10.09 art29@newspim.com

각각의 산봉우리마다 하나의 독립된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는 이같은 구성법은 우리의 전통적인 자연관에 바탕을 둔 것이자, 작가의 통찰에서 비롯됐다. 산을 끼고 굽이굽이 올라갈 때마다 이어지는 연봉과 기암괴석의 등장, 지팡이를 짚고 갓을 쓴 선비나 도인들의 모습은 평면적인 화면에 입체감을 배가시킨다. 또 화려한 색채를 과감히 사용하며 오늘의 미감을 보여주는 것도 이희중 회화의 특징이다.

이희중의 작품은 대부분 비현실적이거나 이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의 작품 해석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이희중의 '풍류도'는 전통적인 유불선 사상에 입각한 이상향의 세계를, '우주도'는 다양한 상징과 기호가 종합된 추상적 세계를, '문자도'는 파편화된 물상들이 집합을 이룬 상징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서로 다른 세계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풍류도가 유일하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표상하는 세계가 오늘의 실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면 이 또한 비현실적으로 비친다"고 평했다.

이희중의 작품 '창조의 손'이 요지경과도 같은 세계가 중심에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확산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작품 '만다라'의 세계는 이와 반대로 밖에서 안으로 휘감겨 들어가는 응축의 모습을 보여줘 대비된다. 이 두 작품이 보여주는 오묘한 삼라만상의 세계는 수많은 기호와 상징, 형상들의 어우러져 많은 내러티브를 품고 있다. 민화의 세계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비롯해 작가가 창안해낸 이미지와 기호, 상징이 화면을 유기적으로 메우고 있어 그만의 독창적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서울 전시 후 경기 용인에서 전시 이어져

전시장 한 켠에는 작가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돼 아쉬움 속에서 작가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추모 전시를 기획한 이희중갤러리는 이희중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라운드테이블 비평세미나를 개막일인 10일 오후 미술관에서 개최했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이희중 작가의 작품세계 라운드 테이블'은 지난 수개월간 전시를 총괄한 이희중의 첫 제자 다발 킴(본명 김지영·작가이자 큐레이터)의 사회로 이희중 작가의 생과 작품에 대해 되돌아 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연구 분석해보는 자리로 꾸며졌다.

또한 전시에 발맞춰 작가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생애, 작품 시리즈, 국내외 전시 일정, 평문이 실린 특별도록도 발간됐다.

유족인 권정옥 이희중갤러리 대표는 "평생을 그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일관했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림에 대한 고인의 치열했던 열정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작가가 떠난지 5년이 됐지만 작가가 남긴 작품들을 이번 서울전시와 용인에서의 전시를 필두로 꾸준히 선보여 많은 미술애호가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가 그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이희중,'밤으로의 여행' 2015,캔버스에 유채, 50x73cm [사진=이희중갤러리] 2024.10.11 art29@newspim.com

▲이희중 작업에 대한 미술평단의 평가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은 "이희중 작품에 등장하는 전통적 소재는 우주를 이루며 잔존하는 기억들,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원형적 요소들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희중의 작품은 정감어린 표현으로 다가옴에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인류의 근원이 되는 보편적 가치에의 갈망이 있다. 특히 이희중의 작업에서 '청색 회화'는 매우 심오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는 비물질적인 특성과 함께 여러 의미와 상징을 내포한다"고 평했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이희중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의도는 단순한 도상의 차용이나 여러 기호들을 병렬해 나가는 것보다는 여러 상징들을 통해 근원적인 사유의 지층에 뿌리내리고 있다. 또 우리가 지속해서 대응해야 하는 '전통의 현대화'와 '한국적인 미의 구현' 그리고 참다운 의미에서의 '미술에서의 한국성의 추구' 등에 대해 보여주는 이희중의 대안적인 그림은 나름의 설득력과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김진엽 평론가는 "이희중의 작품은 마치 수를 놓듯이 형태와 면들은 화면의 중심과 부분을 연결시키는데, 이 연결에서 이희중식 조형언어의 참다운 면이 나타난다. 즉 이희중은 한국적 상징에 대한 이희중의 재해석은 단순히 존재를 구성한 작업을 넘어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고충환 평론가는 "이희중은 문자와 기호, 의미와 이미지, 추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타이포그래피와의 유기적 가능성도 보여준다. 그는 민화와 풍류도를 재해석한 작업에서는 전통적인 삶의 철학을, 그리고 기호를 재조합한 작업에서는 특유의 역동적인 우주관을 형상화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이희중의 회화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상징들이 재해석되어 공간을 아름답고도 촘촘하게 메운다. 거기에는 산과 들, 새와 나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들이 익숙하면서도 때론 낯설게 다가온다. 이희중은 이같은 양면성과 독창성으로 우리 전통의 새롭고 현대적 변용으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뮤지엄, 독일 뒤셀도르프 슈타트 슈파카세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모란미술관, 한국은행 등 전세계 주요 미술관과 기관 등에 컬렉션되어 있다.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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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트럼프 100일의 승부1. 규제 대못 뺀다…AI·자율주행·은행업 '더 쉽고 빠르게'2. 압도적 격차를 향한 전격전...MAGA 휘날리며3. 우크라 전쟁 100일 만에 끝내고 북미 대화 실마리4. 에너지 패권을 향해 '드릴, 베이비 드릴'5. 만능 치트키 관세...역대급 중국 압박6. 뉴욕증시 지진계 '경고음 요란'...2018년의 기억7. 증시 불확실성 MAGA 수혜주로 돌파..끝판왕은8. 관세와 달러, 복잡한 함수 관계9. 높아지는 미국의 만리장성...反이민 장애물도 산적 현재 뉴욕증시 여건과 시장이 직면한 위험은 당시와 닮았다. 시장에서 2018년을 반추하며 올해 뉴욕증시도 유사한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관측이 대두하는 이유다.특히 2018년 급락장에 앞서 출현한 충격파의 전조가 이번에도 포착되고 있다. 그 지진계의 수치가 이례적인 수준으로 치솟아 불안감은 더 크다. 바로 '블랙스완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스큐지수다. 1. 3주 전 신호 스큐지수는 S&P500의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에 대한 옵션시장의 우려를 보여주는 지표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주가 폭락에 대비한 풋옵션 수요가 높을수록 그 값은 올라간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시나리오에서만 가치가 있는, 그래서 당장은 가치가 없어 싼값에 거래되는, 즉 '외가격 풋옵션'이 높은 가격에 사들여진 결과다. 외가격 중에서도 가치의 무의미함이 큰 풋옵션 수요가 클수록 상승한다. 평소에는 헐값에 팔렸던 우산이 폭풍우가 예상되자 비싸져도 수요가 생기는 현상과 비슷한 셈이다. *스큐지수는 단순히 OTM 풋옵션뿐 아니라 OTM 콜옵션도 산출 대상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는 양자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한 내재변동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다. 다만 실제 산출 과정에서는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의 비중이 더 크다. 급격한 시세 변동을 염두에 둔 헤지 상품의 수요는 가파른 가격 상승을 기대한 콜옵션보다 가파른 하락에 대비하려는 풋옵션에 집중되기 떄문이다. 따라서 산출 과정에서 자연스레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상 스큐지수는 100~135 사이에서 변동한다. 135를 넘어서게 되면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급격한 하락 가능성에 대해 종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고 150이 넘어가면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스큐지수는 154다. 지금부터 3주 전인 지난달 24일에는 180으로 솟구쳤다. 두 달 전부터 수위를 높이더니 급기야 180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지금은 이때보다 낮아졌지만 추세의 층위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형성돼 있다.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들어 올린 '가드'의 높이가 한층 더 올라갔다는 얘기다. 스큐지수의 수치에 내재된 '극단적인 폭락' 가능성은 대략 30일 내 실현을 상정한다. 스큐지수를 산출하는 데 사용되는 옵션의 잔존만기 대부분이 30일 안팎이기 때문이다. 예로 잔존만기가 20일인 근월물과 48일인 차근월물이 있다면 관련 만기의 옵션에 내재된 변동성(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을 소위 보간하는 방법을 통해 30일치를 구한다. 그렇다면 현재 옵션시장에서는 2월 중순 안에 폭락장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그렇게 될까. 2. 2018년의 잔상 2018년 여름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2018년을 문두에 꺼낸 것은 당시와 현재 상황이 유사해서다. 2018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전년도 주가 상승률이 19%가 넘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해의 이듬해다. 트럼프의 법인세 감면이나 규제 완화책, 인프라 투자 확대책을 반영한 결과다. 트럼프의 고율관세 공약은 '엄포'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듬해 경제도 좋았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 우려가 부담됐지만 강한 경제가 버텨주리라는 믿음이 더 컸다. 전형적으로 '우선 먹고 배아픈 건 나중에 생각하자'는 식의 장세였다. 2018년 스큐지수는 꾸역꾸역 고도롤 높여갔다. 당해 3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위를 끌어올리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2018년 3월 하순 120이 채 안 됐던 스큐지수는 7월 150을 넘어서더니 8월 16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 달 뒤 급격한 시세 하락을 예상한 스큐지수의 경고는 적중했다. 9월 2900선을 기록했던 S&P500은 11월 2600대까지 하락해 10% 떨어졌고, 그 뒤 하락세를 재개해 12월 2300선까지 추가 하락했다. 석 달 만에 20%가 무너졌다. *S&P500은 2018년 1~2월 당시 10% 떨어져 조정 국면에 진입한 적이 있다. 주가 하락의 발단은 고용통계 호조에 따른 장기금리 상승과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우려였다. 다만 그 떄 주가 하락은 빠른 시차를 두고 격렬하게 전개됐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변동성 하락 베팅 관련 상품(크레디트스위스의 VIX 선물 가격 역추종 상품<XIV>)가격이 붕괴해 시세 변동성을 증폭시킨 일이 있었다. 소위 '볼마게돈'으로 불리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스큐지수는 한 달 전 135를 넘어 시세 하락을 예고했었다. 3. 진짜 '오싹'할 떄는 스큐지수의 경보음이 격렬해지는 순간은 그 수치가 오히려 지금처럼 하락할 때다. 주가 하락이 시작하면 스큐지수 산출 대상에 있던 외가격 풋옵션 비중이 자연스레 작아져 스큐지수의 값은 하락한다. 흔히 '공포지수'로 알려진 VIX는 주가가 떨어져야 그제서야 반응한다. VIX는 주로 ATM(등가격) 부근 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바탕으로 산출되기 떄문에 이미 멀찍이 있던 외가격에서 경보음을 낸 스큐지수보다 한발 늦다. ATM 옵션은 현재 주가와 행사가격이 '거의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장 옵션시장의 주가 상승과 하락에 대한 '양방향 베팅' 상황을 보여준다. 스큐지수가 건물의 '화재감지기'라면 VIX는 화재가 난 뒤에 내부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은 셈이다. '스큐지수의 하락→S&P500의 급락+VIX 급등'의 순서는 2018년 8월의 급락장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됐다. 최근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고 하락한 것은 주식시장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VIX는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달 24일 14를 기록했다가 현재 19.5로 올라선 상태다. 아직은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예고한다는 '20'을 넘어선 단계는 아니지만 방향성 자체가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P500도 지난달 6일 사상 최고가에서 4% 떨어지는 등 상기의 연쇄 흐름에 동참한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스큐지수가 과거의 폭락장이나 거친 시세 흐름을 항상 예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지연 우려와 시장금리의 급등, 위안화 약세,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조만간 출범하게 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관세 염려 등 주가 하락을 시사하는 퍼즐들이 짜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급격한 시세 변동 위험이 현실화될 개연성을 높인다. 특히 위안화 약세의 파급력은 2015년 갑작스러운 평가절하나 2018년 중반 급격한 약세, 2019년 '7위안 돌파' 등의 사례를 통해서 목도한 바 있다. 옵션시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이다. 4. 실질금리의 중력장 1월 중순에 진입한 현재는 불안감이 들불처럼 번지기 쉬운 시기라는 점에서 스큐지수 경고에 담긴 의미를 배가시킨다. 과거 통계상 계절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의 초입이다. 페퍼스톤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VIX 추이를 월별로 평균해 연중 추이로 그려본 결과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연초에는 기관투자자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실행하거나 기존 포지션을 조정하고, 또 관련 기간에는 기업의 결산 보고가 맞물려 있어 시세가 각종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위험자산군의 시세를 주무르다시피하는 '실질금리'가 뜀박질을 재개한 점은 계절성의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물가연동국채 10년물 금리로 본 실질금리는 지난달 초순 1.89%에서 중순 2.25%로 급히 올라섰다가 이달 초 숨고르기를 거친 뒤 최근 7일여만에 2.32%로 '레벨업'했다. 지난달 초순부터보자면 한 달 만에 43bp가 오른 셈이다. 통상 장기국채의 명목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대게 인플레 전망을 반영해 상승한 결과여서 실질금리 상승폭은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질금리 변동성이 작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 43bp라는 상승폭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 전략가의 표현을 빌려쓰자면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은 '터너(전환점)' 임박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하트넷 전략가는 실질금리 2.5%를 주시해야 할 지점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2.5%에 도달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봤다. 2.5%는 2023년 10월 하순에 기록한 최근 10년 기준 전 고점에 해당한다. 당시 실질금리는 같은 해 7월 1.48%에서 2.5%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같은 기간 S&P500의 시세를 10% 떨어뜨린 배경이 됐다. 하트넷 전략가에 따르면 현재 실질금리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2%대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주식시장의 시세가 어느 정도 방어가 됐던 것은 '강한 경제 펀더멘털이 실질금리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종전의 고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면 내성 역할을 해왔던 투자자들의 믿음에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고 봤다. 스큐지수의 급등과 급락이라는 전조가 보여준 경고는 실질금리 2.5% 돌파와 함께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5-01-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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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샤오훙수 열풍에 고무된 중국매체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이른바 미국의 '틱톡(TikTok) 난민'들이 대거 샤오훙수(小紅書)에 가입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중국 매체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틱톡이 오는 19일부터 미국 내 서비스를 종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내 틱톡 유저들이 중국의 또 다른 SNS인 샤오훙수의 글로벌 버전 '레드노트(RedNote)' 앱을 다운로드해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 조사기관인 센서타워의 조사에 따르면 1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내 사오훙수 앱 다운로드 건수는 전주에 비해 2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중국 메이르징지신원(每日經濟新聞)이 17일 전했다. 전년 대비로는 30배 증가했다. 이달 들어 샤오훙수의 다운로드량 중 22%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이 수치는 전년 동기에는 2%에 불과했다. 미국 내 틱톡 난민들이 샤오훙수로 대거 이동하면서 샤오훙수의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중국은행보험보는 이날 샤오훙수 앱은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 87개 국가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39개 국가에서도 10위 이내의 수위권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신규 가입자가 70만 명을 넘어섰다. 이같은 소식에 중국 증시에서는 샤오훙수 관련주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현재 샤오훙수는 글로벌 유저들을 위해 원클릭 번역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샤오훙수 열풍이 이어지자 중국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매체들은 미국이 2018년 이후 반중 정책 수위를 지속 높이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활발한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며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17일 환구시보는 논평기사에서 "미국의 많은 유저가 자신들을 틱톡 난민이라고 자칭하며 샤오훙수로 몰려들고 있고, 이는 뜻하지 않게 미중 양국 국민의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매체는 "미국 유저의 후기를 보면, 이들은 낯선 중국어 플랫폼에 접속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중국인의 친절한 응대에 놀라워했고, 중국인의 개방적인 태도에 경계를 풀게 됐다"며 "양국 네티즌의 교류 열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졌고, 대화 주제는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미국의 정치인들은 지속적으로 중국을 비방해 오고 갖가지 부정적인 표현을 쏟아내고 있지만, 양국 국민 간에는 교류 협력을 심화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이어 "샤오훙수 현상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수립할 때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SNS인 샤오훙수 자료사진 [사진=바이두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1-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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