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영풍이 제기한 2차 가처분 기각
고려아연, 23일까지 자사주 공개매수 가능해져
'중립 관행' 국민연금에 대한 정치권 압박 거세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영풍이 제기한 자기 주식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이 다시 기각되며 고려아연이 한숨을 돌렸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이 진행 중인 자사주 공개매수는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공개매수에 성공한다 해도 과반 지분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캐스팅보트가 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부장판사)는 이날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을 상대로 낸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공개매수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풍과 특별관계자 지위에 있지 않은 주식회사의 자기 주식 취득이 곧바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현재까지 영풍이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고려아연의 자기 주식 취득 행위가 선관주의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고려아연은 법원의 판결 이후 즉각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의 불확실성을 높여 주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꼼수라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보다 6만원이 많은 확정 이익에도 불구하고 5%가 넘는 주주들에게 인위적으로 재산상 손실을 끼쳤다는 점에서 시세 조종 및 자본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조사와 법적 처벌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은 그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것처럼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기 주식 취득 공개매수를 완료하고, 이후에도 의결권 강화를 통해 MBK-영풍 연합의 국가 기간 산업 훼손을 막아내겠다"고 했다.
영풍과 손잡고 경영권 확보에 나선 MBK 파트너스도 공식 입장문을 통해 "아쉬움을 표한다"며 "자기 주식 공개매수가 2조7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차입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향후 장기간 회사 재무구조가 훼손되고 이로 인해 남은 주주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MBK 파트너스와 영풍은 확실한 의결권 지분 우위를 바탕으로 남은 주주들과 협력해서 고려아연의 무너진 거버넌스를 바로 세우고,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2차 가처분 신청 기각에 따라 고려아연은 오는 23일까지 주당 89만원으로 제시한 자사주 공개매수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MBK는 지난 14일 마감된 주당 83만원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로 확보했다. MBK의 공개매수 결과 MBK·영풍 연합은 기존 33.13%에 5.34%를 더한 38.47%의 지분을 확보했다. 현재 최윤범 회장 및 우호 지분(백기사)의 지분은 33.99% 수준이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뉴스핌DB] |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양측의 법적 분쟁과 '쩐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가 됐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성공한다 해도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에 고려아연 측과 MBK·영풍 측 모두 과반 지분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이후 임시 주주총회 날짜가 결정되면 수탁자 책임 전문 위원회를 열어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그간 관행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유지해 왔다.
다만 이번 고려아연의 경우 정치권의 압박이 거센 편이다. MBK를 '약탈적 M&A' 세력으로 보고 고려아연의 본업인 비철금속 제련업을 국가 기간 산업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지난 18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연금 국정감사에서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MBK가 국민연금이 주요 투자자로 있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개입 시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국민연금 자금이 우호적인 M&A를 통한 기업 구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아니라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권 쟁탈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광일 MBK 부회장에게 "많은 의원들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그만큼 MBK가 그동안 해 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쏙 빼먹고 그냥 달아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도 김 부회장에게 "결국 근로자를 대량 해고하고 과도한 배당을 하고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이렇게 남발해서 약탈적이고 또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