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제1주적' 한마디에 한반도 정세 요동
이달 말 노동당 전원회에 김정은 언급 주목
트럼프 귀환 따른 2025년 변수도 만만치 않아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2024년 한해는 북한의 대남 적대노선과 핵‧미사일 도발 속에 한반도 안보정세가 요동쳤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포탄과 무기 제공을 이어오던 김정은이 대규모 전투 병력까지 파견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파장을 던졌다.
[서울=뉴스핌] 지난 10월 17일 북한군 2군단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4.12.24 |
이 와중에 한국에서 불거진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은 대북 대응은 물론 남북관계 전반에 불투명성을 더욱 높이는 상황을 초래했다.
집권 13년차를 맞은 올해를 시작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어느 때 보다 극단적이고 호전적인 행태를 드러냈다.
입에 담기 거북한 대남 비방과 위협뿐 아니라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집착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단절 상황을 맞았다.
◆김정은 "한국이 제1적대국" 주장하며 남북관계 파국 몰아가
이는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제1의 주적이자 적대국'으로 규정하면서 상당 부분 예고됐다.
평양 지하철의 통일역을 없애고 모란봉역으로 바꾸거나 김일성의 통일‧대남 관련 유물인 '3대헌장 기념탑'을 폭파시키는 등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후속조치는 극단을 치달았다.
북한군은 물론 노동당과 각 기구들은 대남 적대감 고취와 남북 갈등과 대립을 고조시키는 조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15일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를 폭파 방식으로 전면 차단한 김정은은 이틀 후 개성지역을 관할하는 북한군 2군단을 방문해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버리고 부질없는 동족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지난 10월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문한 서부지구의 군 특수 작전부대 훈련기지의 북한군. [사진=조선중앙통신] 2024.10.27 |
김정은은 앞서 같은달 7일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란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사시 남조선 평정' 등의 호전적 언급을 일삼고 대남 타격 훈련 참관이나 무기체계의 개발에 집중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도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균열을 집요하게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의 경우 지난 2019년 2월 하노미 북미 정상회담에서 파국을 맞은 후유증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재집권 관망 속 대미비난 공세 여전
그는 지난 10월 21일 평양에서 열린 무기전시회 '국방발전 2024'에서 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對) 조선정책이었다"며 미국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재선 이후 북미 관계와 관련한 첫 언급에서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듯한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미국은 저들의 지배주의 정책에 불가극복의 도전으로 되고 있는 우리 공화국의 급진적인 강세를 견제하고 추종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핵을 공유하는 군사 동맹체계를 확대하는 한편 우리 국가 주변에 방대한 전략 타격수단들과 동맹국 무력을 전개해 놓고 군사적 압박과 도발의 수위를 극도로 높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지금처럼 조선반도에서 교전쌍방이 위험천만하게, 첨예하게 대치돼 각일각 가장 파괴적인 열핵전쟁으로 번져질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18.6.12 |
하지만 이런 언급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트럼프의 귀환에 반색하면서 북미 협상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우리 대북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김정은도 "우리 당(노동당)과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국가의 안전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손으로 군사적 균형의 추를 내리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임을 다시금 분명히 한다"고 말해 북핵 불포기를 앞세운 대미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북한은 북미관계와 함께 북러밀착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올 한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지난 10월 18일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러시아에 4개 여단 1만2000여명의 병력을 파견했다고 밝히면서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파장이 일었다.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김정은이 대규모 전투병력을 보냈다는 점에서다.
앞서 북한은 포탄과 무기 등을 비밀리에 러시아에 제공하고 있었고, 지난 6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주축으로 한 북러 신조약을 체결했다.
◆김정은-푸틴 평양 정상회담 넉달 후 전격 파병
북러는 이 조약에 상호 군사지원을 명문화 했고, 유엔헌장까지 인용해 북한군 파병을 정당화 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외부로부터의 침략 상황에서 자위권 차원의 지원을 허용한 유엔현장 조항을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거론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까지 북러는 북한군의 우크라 투입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북한군 병사들에게 러시아 군복을 입혀 투입하고 있고, 특히 러시아 국적의 신분증까지 발급해 위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군이란 사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지난 22일(현지 시각) 텔레그램에 공개한 북한군 추정 시신 3구에서는 신분증이 발견됐는데 각각 김 칸 솔라트 알베르토비치, 동크 잔 수로포비치, 벨리에크 아가나크 캅울로비치 등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서울=뉴스핌]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12월 22일(현지 시각) 공개한 북한군 신분증.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됐다 사살 당한 이 북한군의 러시아어 신분증 서명란에는 한글로 '리대혁'이란 이름이 적혀있다. 구멍이 뚫린 부분은 총알이 뚫고 간 흔적. [사진=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텔레그램] 2024.12.24 |
그렇지만 서명란에는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리대혁, 조철호, 반국진이란 이름이 드러났다.
또 신분증에 사진이나 발급처가 없고, 출생지는 북러 파병을 김정은과 직접 협의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전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고향 투바 공화국이 표기돼 있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군은 낯선 전장 환경과 드론 전쟁에 대한 적응 부족 등으로 많은 전사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달 중순 100명 수준으로 전해졌던 전사상자는 23일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의 브리핑에서는 1100명 안팎으로 크게 늘어났다.
투입병력 전체규모의 10% 정도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군을 용병 형태로 파견한 것이 푸틴의 요청이 아닌 김정은의 제안에 따른 것이란 보도가 나오는 등 관련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북한 군인들이 군복과 군화 등을 지급 받는 장면이라고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측이 18일(현지 시간) 공개한 영상. [사진=SPRAVDI 페이스북] |
뉴욕타임스(NYT)가 23일 정보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파병하겠다고 제안하자 푸틴이 이를 빠르게 받아들였다"고 전하면서 병력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영양실조'(malnourished) 상태에 처해있는 것으로 전했다.
다음달 20일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조지 종전을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이에 대비한 영토 점령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어 북한군의 희생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 파병과 북러 관계의 향배, 대규모 희생자 발생에 따른 북한 내부의 동요 여부 등은 2025년 김정은 체제의 중요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