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작년 11월까지 임기단축 개헌에 적극적
비상계엄 후 조기 대선 가능성에 입장 급선회
개헌 여론·자신의 지지율 정체에 타협 가능성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론에 포위된 형국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은 개헌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출신 정대철 회장이 이끄는 헌정회도 개헌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지금은 탄핵에 집중할 때"라며 즉답을 피하는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 정도다. 역설적으로 37년 만의 개헌은 이 대표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개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치 세력은 이 대표의 친명계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5년)를 1년 또는 2년 단축한다는 부칙을 담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을 추진하려 했다. 윤 대통령 탄핵보다 임기 단축 개헌이 현실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민의힘은 부정적이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과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설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2025.01.24 choipix16@newspim.com |
갑작스러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 국면이 조성되면서 독주 체제를 갖춘 이 대표와 친명계는 개헌을 거둬들였고 국민의힘은 개헌으로 선회했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우선 여야 대선 주자들은 개헌에 적극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이제 개헌을 논의하자"면서 "지도자 리스크로 인한 혼란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나라 운영 시스템을 완전히 개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수명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면서 "대통령 임기를 다음 총선, 그러니까 제23대 국회가 출범하기 전까지로 하고, 23대 국회 출범과 함께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신"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다음 개헌 때 헌법재판소가 폐지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개헌을 시사했다. 나름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아직까지 개헌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 없다.
야당의 대선 주자들도 적극적이다. 김부겸 전 총리는 최근 "현행 헌법에 유신헌법의 잔재가 남았기에 개헌을 해야 한다"며 "정치권은 적어도 2026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안을 확정짓겠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87년 체제'는 효용과 시효를 다했다"며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출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스스로를 '개헌론자'라며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켜서 국회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얼마 전 "40년 된 87년 체제(1987년 개헌으로 이뤄진 체제)가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바꿔야만 더 이상 불행한 사태 반복을 막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최근 정대철 헌정회장과도 만나 개헌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개헌을 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도 적극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키를 쥔 이재명 대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독주하고 있는 이 대표는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만큼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의미다.
변수도 있다. 여론의 흐름이다. 50%가 넘는 개헌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역대 대통령의 불행이 되풀이되면서 권력 분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대표는 최근 각종 여론 조사에서 30% 중반대의 박스권에 묶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절대 유리한 국면에서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적어도 45% 이상은 나오는 게 정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만큼 비호감도가 높아 중도층 공략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대표가 대선 전략 측면에서 개헌을 수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개헌을 하되 2026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안을 처리하는 타협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개헌 성사 여부도 여론의 추이에 달렸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