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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윤종오, 용접공에서 노동 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는

기사입력 : 2025년05월05일 12:00

최종수정 : 2025년05월05일 12:00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 과정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겪은 일화부터 노동 개혁에 앞장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윤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진보당 울산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진보당에서 현역 중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원내대표도 맡고 있다. 

윤 의원은 196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뒤, 거제도 대우조선소로 직장을 옮겼다. 

윤 의원은 과도한 노동에 문제를 느껴 노동조합원으로 본격 목소리를 냈다. 이후 울산 북구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2006년 울산 시의원을 거쳐 2010년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가 지난해 22대 총선으로 복귀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윤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안녕하세요.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저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재선 국회의원이신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님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네 반갑습니다. 워낙 전국 현안이 바쁘지만 또 대표님을 알아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초대 요청드렸습니다. 먼저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가족 관계부터 좀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제 대표님 과거 부모나 가족 관계 그리고 현재 뭐 가족 관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윤종오 의원. 이하 윤) 아버지는 한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지금 90세인데 아주 건강하게 살아 계시고요. 제가 원래 5남매 중에서 장남이었는데 한 10년 정도 전에 쌍둥이 동생을 한 명 더 찾아가지고 6남매의 맞이 2남 4녀 맞이고요. 자녀는 지금 딸 둘에 아들 1명 큰 딸이 결혼을 해 가지고 또 손주를 낳아서 큰 손주가 4살 그다음에 딸 아들 쌍둥이 손주를 또 낳았어요. 걔들이 이제 돌을 지나가지고 14개월 됐는데 제가 자식도 3명을 낳았고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저보고 벌써 애국자라고 많이 그러네요.

-(윤)가족끼리 명절 때나 보면 되게 이렇게 반갑겠어요 가족들도 많아서.

▲(윤)그렇죠 이제 우리 어머님 슬하에 6남매 그 밑에 이제 손주들 또 그 밑에서 또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한 모이면 뭐 한 30명 이상 대식구죠. 명절 때 집이 막 터져 나가면

-(윤)그러니까요. 근데 또 설 명절이나 이럴 때 오히려 의원님들 더 바쁘시잖아요. 근데 또 가족들 보시는 데는 괜찮으신가요?

▲(윤)뭐 아무리 바쁜 정치 일정이 있어도 또 우리 명절 때는 가족이니까 가족들과 이렇게 따뜻한 시간도 보내야지 가족들 지지 없으면 정치 활동도 못 합니다.

-(윤)의원님 태어나신 곳은 경남 합천이시네요.

▲(윤) 그렇죠 합천은 태어나기만 태어났어요.

-(윤)그렇구나 그럼 자라신 곳은

▲(윤)초중고를 그냥 부산에서 다 다녔기 때문에 부산이 제2의 고향이고 그 군대 다녀와서 이제 울산으로 왔기 때문에 울산은 얼떨길래 돈 벌러 올라 왔다가 제가 이만큼 정치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가 인생을 바꾸더라고요.

-(윤)그러면 합천에서 태어나시기만 하셨고 부산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윤)보냈죠.

-(윤)좀 찾아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좀 자랐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윤)그게 이제 아까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 여동생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 집안 형편도 어렵고 이래서 부잣집에 한 명을 보냈죠. 그걸 이제 44년 만에 찾게 되는 KBS 생방송 사람을 찾습니다.

-(윤)그러니까요. 저 어린 시절에

▲(윤)그런 아픔도 있었는데 그래도 또 잘 극복해서 제가 이렇게 재선 국회의원까지 됐지 않습니까?

-(윤)어린 시절에 의원님의 성향 이런 게 좀 궁금해요. 반장 도맡아 했다든지

▲(윤)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냥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잘 지내고 뭐 조금 솔선수범할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일을 하고 좀 부지런하고 좀 싹싹한 이제 그런 그냥 아이였죠.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지금 뭐 자주 보긴 하는데 이 친구가 어떻게 노동 운동을 하고 이렇게 정치로 나갔지 처음에는 되게 이렇게 의아스럽게 생각했죠. 근데 사람이 이제 이렇게 어떤 환경하고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나서야 될 자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또 살아왔던 시기가 이제 군부 독재가 한참 극을 달할 정도로 좀 독재가 심한 그런 시기에 이제 그 직선제 쟁취 혹은 철폐 이렇게 역사의 어떤 확 개병기 이럴 때 누군가는 또 나서야 돼.

-(윤)그렇죠

▲(윤)그 제가 그냥 나섰더라고요.

-(윤)그러면 어릴 때 꿈은 어떤 거였어요?

▲(윤)어릴 때 꿈은 그냥 유능한 기술자 빨리 돈을 벌어야 되겠다 가정 형편도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이 많이 앞섰는데요. 고등학교 때쯤 가서는 막연하게 다음에 내가 자라면 사회복지 사업 같은 거 했으면 좋겠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이런 걸 운영하면 잘하겠다 이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막상 이제 사회에 부도 끼고 제가 이제 정신까지 하게 됐잖아요. 이것은 고아원을 100개도 만들고 200개도 만들고 다른 복지관을 더 엄청난 복지 사업도 할 수도 있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처음에 꿈은 소박했지만 또 이렇게 살아가면서 새로운 꿈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윤)그럼 어린 시절에도 어쨌든 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런 직업을 좀 생각을 하시긴 하셨나요?

▲(윤)네 조금 어릴 때 이제 종교적인 영향도 조금 받은 것도 없지 않아 있고 그래서 제가 또 봉사활동도 고등학교 딸 시와의 활동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게 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또 도움으로 이 세상에 왔고 또 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서로의 협력과 이렇게 합의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데 맞아요.
조금 그런 게 그냥 생활화됐던 것이 어느 날 이 시대가 바뀔 때 저한테 정치의 기회도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윤)의원님 혹시 MBTI 검사해 보셨어요? 그 e와 i 성향이 있잖아요. 외향형과 내향형 중에 어떤

▲(윤)이제 제가 검사니까 외향으로 나오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내향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MBTI가 다 정확하지는 않다.

-(윤)본인이 선택을 하는 거니까

▲(윤)제가 이제 제 성향이다 이러니까 우리 딸 아이는 다른 사람이 다 속고 있는 거다 이 그런데 이제 사실은 제가 제가 조금 뭐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또 적응적일 때 있고 또 이럴 때는 좀 감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또 이성적으로도 행동하고 그 사안에 맞게 이렇게 적절하게 판단을 잘 하는 것들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왜냐하면 정치인이라고 하면 되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일 거라고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도 좀 내성적이기보다는 리더 활동을 많이 했다든지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윤)저는 이제 조금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함께하고 어디 놀러를 간다 이렇게 하면 제가 챙기고 준비하고 이런 것들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이제 사회생활하면서 다 도움 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할 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면 좋잖아요. 그렇죠. 세상 살아가는데 이 시에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은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

-(윤)그러면은 중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윤)부산의 사상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했고요. 그때는 뭐 방위 산업차라고 하는데 사실은 고무를 취급하는 곳이었어요. 그 전차 바퀴의 고무 청소는 개머리판에 고무 이래 사실은 고무공장이에요. 하루 일하고 나면은 호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가 그냥 한 주먹씩 나왔어요. 또 도저히 목욕을 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가 없고 그때 방지 마스크도 제대로 안 줬어요. 지금 같으면 폐암 걸려서 다 죽었을 텐데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제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또 이제 용접비를 이제 하게 되었고 그때도 뭐 정말 현장은 열악했죠. 한 달에 체라 특권을 많이 할 때는 15개

-(윤)뭘 15개요?

▲(윤)특근

-(윤)철야 특근

▲(윤)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해야 되잖아요. 저녁에 퇴근하지 않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 좋겠지만 안 하고 그다음 날 저녁에 퇴근하는 거예요.

-(윤)그럼 거기서 먹고 자는 거예요.

▲(윤)회사에서 밥 먹고 못 자고 일을 하는 거죠. 그렇죠 조이 졸면 와서 망치 두드리고 깨우고 그러죠. 이제 그래서 막 인간이 아닌 거죠. 노동을 짤 수 있는 만큼 짜는 거죠. 그게 거제도 조선소에서도 그랬었고 이제 80 제가 6년도에 군대 제대를 하고 현대차에 입사를 하게 되는데 거기 하니까 지금 현대차 되게 좋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잖아요.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 그 선호하는 대기업 거의 뭐 타 클래스에 속하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줄을 서면 돼 갔어요. 이번 주에 한 500명 뽑고 다음 주에 또 500명 막 뽑고 그 사이에 또 몇 백 명 퇴직 퇴사해요.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왜 안 좋은 회사니까 매일 12시간씩 교대 근무로 일을 하고 당연하게 출근 일요일은 출근할까요? 안 할까요? 의도가 비죠. 무조건 출근 쉬는 날이 없어요. 그렇게 이제 막 교대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다 일해도 실제적으로 이제 임금은 한 20만 원도 채 못 받고 내 차를 산다 내 집을 산다 꿈에도 못 꿨죠.

현대차가 그랬어요. 그게 이제 87년도 60항쟁과 함께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그때 이제 저도 모르게 제가 메가폰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고 그 이후에 이제 이렇게 획기적으로 이제 임금도 오르고 이제 이렇게 여러 가지 사내 복지도 좋아지고 어 이렇게 하면서 조금 다닐 만한 회사가 된 거죠.

그러한 과정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렇죠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되고 싸우고 막 어떤 데는 진짜 분신도 하고 막 이런 어마어마한 투쟁들이 속에서 오늘의 이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의 어떤 노동자 전체의 어떤 권익은 물론이고 사회의 어떤 분배의 정의 실현 이런 부분에서도 상당 부분 이렇게 역사적 성과는 있는 거죠. 그렇죠 다소 뭐 이렇게 대기업 노조가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인 어떤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같이 올렸던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노동조합 운동이 큰 역할을 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하는 데 앞장을 서신 거죠

▲(윤)예 처음에는 그렇게

-(윤)그때 그럼 노동조합 노조장 위원장을 하셨던 거예요.

▲(윤)위원장을 하지는 않았고요. 제가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가 25살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100명에 1명씩 대표인 대의원도 하고 우리 전체 재정이 제법 그래도 조합원이 많으니까 몇백억 되는데 거기에 총괄하는 총무부장도 하고 또 한 개 공장도 커요.

제가 1공장이라는 승용차가 만드는 공장인데 한 3600명 됩니다. 거기에 노동조합 대표도 하고 전체 노동조합을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쟁의실장도 하고 이렇게 이제 10년 정도 조합 간부를 하면서 현장에서 임금이나 단협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올리는 것이 좀 한계점이 왔을 수 있죠.

그래서 이제 사회 개혁 요구가 되게 많았어요. 의료 개혁을 하자 교육 개혁을 하자 이제 이런 요구들이 많았는데 분출했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누가 만들어요? 정치가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이렇게 정치의 직접 정치에 대한 어떤 요구들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이렇게 기름을 부은 것이 IMF가 오면서 이제 정내고 바람이 확 불었던 거죠. 여기 그만두시면 갑자기 갈 데 있으신가요? 쉽지 않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 현대차를 다니다가 갑자기 잘리면 뭐 대우차나 상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제 그렇듯이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대투쟁이 일어난 거죠.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제 그렇게 하면서 96년 말 97년도 노동법 개정이라는 큰 투쟁이 한 달 동안 이렇게 벌어졌고 그때 정리해고법이 통과됐던 것이 다시 2년간 유예되는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 투쟁으로 해서 유예되는 그런 어떤 엄청난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자각을 한 것이죠. 우리 대표를 정치권으로 많이 보내자 국회로 보내자 지방의회로 보내자. 이때 이제 제가 선발대로 뽑혀 가지고 98년도 지방선거 당시 제가 나이가 36살이었는데 이제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북구의원으로 당선된 것

-(윤)그 사이에 좀 더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왜 당시에 내가 이렇게 앞서서 이 노동 현장의 처우 개선에 내가 힘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계기가 뭐였

▲(윤)그냥 운명처럼 제 앞에 마이크가 잡혀 있었고요. 이제 그때 현장의 어떤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지금 어떤 일반 직장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 당시가 이제 군부 독재 시대고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 그 군사 문화가 그대로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처음 만들어졌으니까 많은 요구들이 분출했을 거 아닙니까? 요구들이 1번부터 해서 몇십 번까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1번 1번이 뭐였을 것 같아요?

상상이 안 가죠. 두 발 자유화였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두 발 자유화를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는 그 현장이 얼마나 군대처럼 이렇게 통제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의 어떤 사회였는가 이제 이것이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내가 땀 흘려 일하는 만큼 내놔라 하는 이제 그 권리의식이 같은 것이고 제가 현장에서 이제 실질적으로 명절 때 설날 같은 날 설날 아침에 퇴근시키고 휴일은 아예 없으니까 반장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반에 전이 보면은 우리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오직 회사만을 위해서 우리는 일해야 된다 이렇게 막 주입을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일요일 날 만약에 안 나오게 되면 당연하게 놀아야 되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2개의 또는 3개를 쳐가지고 고가 먹일 때 반영해서 임금을 적게 주기도 하고 이제 이렇게 하면서 많이 여리 바다에 있었던데 때마침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저도 모르게 나서게 될 거라고요.

-(윤)그때 그 노동 운동 그런 것들이 지금 정치를 하는 데까지 이제 발판

▲(윤)예 엄청난 이제 노동조합 운동은 정치 운동을 하는데 밑거름도 되었고 발판도 되었고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는 당연하게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과거에 일반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님은 계시지만 기자님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이것을 정치적으로 어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지 권익이 더 세지는 것이고 이렇듯이 정치하는 사람이 판검사 출신만 정치하고 대학 교수 출신만 정치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안 되죠. 그런데 이제 국회에는 가면 지금도 좀 편향되게 특정 직종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가다 대표하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죠. 앞에 나갔을 때는 노동자들 서민들 영세 상인들을 위해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들을 보면은 이제 그런 것들은 억수로 좀 터부시 되고 실질적으로 자기 이해 집단과 관련된 부분들이 훨씬 더 우선적으로 좀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이런 경향들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정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이제 독일과 같이 이제 이렇게 비례대표 총량을 더 키워서 한 600명 되는데 반은 비례대표니까 거기에 이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각 정당이 이렇게 배려를 하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들어와야 되는데 우리는 영남에는 뭐 그냥 국회입니당 호남은 민주당 지역 정치가 그냥 그대로 국회에 들어와서 실제적으로 계급적인 어떤 그런 사람들을 좀 제대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윤)네 의원님 자랑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특전사로 복무하신 이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좀 알려줘.

▲(윤)아 예 제가 부드러운 모양새라 가지고 안 믿는데 홍수에서 너무 고맙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보당 활동을 하다 보니까 선거 때만 되면 종북 공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근데 그 종북이라는 게 웃기는 게 선거 끝나고 나서 나한테 종복이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선거 되면 또 종북 이야기합니다. 근데 종복 이야기할 때 제가 특전사 출신이다 이러면 상당 부분 이렇게 종북 공세를 방어하는 데 좀 유리한 부분으로 작용했고요. 네 그런데 그런 어떤 이념 논쟁이라는 게 좀 웃기는 게 저희 고향이 합천이라고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정치적으로 놓고 보면 300명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좌측에 있다고 대부분 기자님들이 그렇게 판단하시죠.

그렇죠. 근데 그러면 당연하게 자기 좌측에 있으면은 조금 이제 종복 공세하는 그런 경향이 그동안 그런 경향이 억수로 더 이렇게 진한데요. 제 고향에 가면은 아재들이 이래요. 막 정치 이야기하다가 맞아요. 제가 종복인 기라면 은 아니지 우리 종우가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어떤 이념 공세라는 게 괜히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우리 진보당에 있는 의원들도 누구보다도 애국자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로 만 만들어 갈까 하는 측면에서 이런저런 정책 제안을 하고 그것을 좀 이렇게 실현시키려는 노력들을 소수 정당이지만 이제 끊임없이 해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의제를 선도했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의 어떤 복지 모델이나 이런 어떤 사회 대개혁 과제 중에서 상당 부분 어떤 성과를 저는 저희들은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석은 작았지만 성과를 만들어 나오는데 우리 진보 정당의 역할이 있었고 앞으로 진보당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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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의혹' 강선우 살린 까닭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고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살리기로 했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낙마자 없이 넘어갈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상징적인 낙마자로 이 후보자를 선택한 것이다. 야당이 강력히 요구한 두 명 중 한 명을 낙마시킴으로써 야당의 체면을 세워주는 모양새를 취하는 동시에 독주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하려 한 것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후보자 낙마가 측근인 강 후보자에 비해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강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현역 의원 낙마 1호라는 불명예를 안게 돼 의원직을 수행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 후보자 낙마로 강 후보자를 구제한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6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마련된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2025.06.26 gdlee@newspim.com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은 지난주 이미 한 명 낙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상호 정무수석이 "일부 후보자의 경우 청문회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돼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마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특히 주말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의견을 구한 것은 최소한 한 명의 낙마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야당 대표까지 만나고 모든 후보자를 밀어붙일 경우 독주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한 낙마자 제로는 이 대통령의 결단을 부각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낙마자는 없다'는 여당의 강경론에도 이 대통령이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야당과 민심을 수용하는 모양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진 사퇴가 아니라 지명 철회라는 강수는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을 취한 것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07.16 mironj19@newspim.com 관심은 낙마자가 한 명이냐, 아니면 두 명이냐였다. 두 후보자 모두 낙마 1순위였다. 한 명을 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논문 표절과 자녀 불법 조기 유학 의혹이 불거진 데다 전문성도 결여돼 있다는 지적을 받은 이 후보자의 낙마는 사실상 결정된 상태였다. 여기에 강 후보자까지 포함시킬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파상 공세를 취하는 야당이 문제가 아니었다. 두 후보자에 대해 진보색이 강한 시민 단체마저 낙마를 요구했다. 여론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칫 지지 세력이 등을 돌릴 수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자 낙마와 강 후보자 구제는 여당 기류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대통령실 주변에서 "이 후보자는 외부에서 추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낙마자가 나올 경우 1순위는 이 후보자가 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낙마하더라도 부담이 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당 분위기는 더 노골적이었다. 강 후보자에 대해서는 입단속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지침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강 후보자에 대해서는 지난주 중반까지 여론이 싸늘했지만 그 이후 당 주변에서는 더 이상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달랐다. 김상욱 의원에 이어 강득구 의원이 공개적으로 이 후보자를 비판하며 거취를 거론했다. 강 의원은 "연구 윤리 위반, 반민주적 행정 이력, 전문성 부족 등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 결격 사유"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 낙마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듯했다.   이 후보자는 논문 표절 문제가 컸지만 이재명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유능함도 보여주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여권이 갑질 논란이 심했던 강 후보자를 감싼 논리가 유능함이었다. 청문회 과정에서 유보 통합 등 교육 정책과 관련된 기본적인 사항조차 숙지하지 못해 전문성에 심각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여당 의원들조차 "어떻게 그런 것도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임명이 안 된 11명의 장관 후보자 중 지명 철회는 이 후보자 한 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강 후보자는 임명 절차를 밟을 것임을 시사했다. 강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을 강행하려면 절차상 국회에 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해야 하는 만큼 이 대통령은 이른 시일 내에 관련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강 후보자를 임명한다고 해도 부담은 남는다. 강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한 상당수 민주당 보좌진들과 정서적으로 등을 지게 될 수밖에 없다. 강 후보자 사퇴를 요구한 시민단체의 입장도 부담이다. 야당은 여론을 돌리기 위한 파상 공세에 나서고 있다. 강 후보자도 갑질 장관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향후 여론 추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leejc@newspim.com 2025-07-2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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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왕즈이 꺾고 日오픈 우승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삼성생명)이 시즌 6승을 달성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일본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왕즈이(2위·중국)를 42분 만에 2-0(21-12 21-10)으로 완파했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안세영(왼쪽)이 20일 일본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우승한 뒤 중국의 왕즈이와 시상대에 올랐다. [사진=BWF 동영상 캡처] 2025.07.20 zangpabo@newspim.com 안세영은 이번 대회 5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다. 이로써 안세영은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에 이어 일본오픈까지 올해에만 6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부상으로 불참한 일본오픈에선 2023년 이후 2년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안세영은 왕즈이와 상대 전적에서도 13승 4패로 격차를 벌렸다. 특히 올해는 말레이시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에 이어 일본오픈에서 왕즈이를 잇달아 꺾었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안세영이 20일 왕즈이와 일본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마지막 게임 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사진=BWF 동영상 캡처] 2025.07.20 zangpabo@newspim.com 1게임 10-10으로 맞선 게 유일한 접전이었다. 안세영은 이후 8득점을 내리 따내며 승기를 잡았다. 2게임에서도 두 번 연속 5득점 하며 손쉽게 왕즈이를 꺾었다. 안세영은 22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중국오픈에서 시즌 7관왕에 도전한다. 남자복식 서승재-김원호 조(3위·이상 삼성생명)도 세계랭킹 1위인 말레이시아의 옹유신-테오예이 조를 2-0(21-16 21-17)으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서승재와 김원호는 올해 말레이시아오픈, 독일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에 이어 5번째 우승을 합작했다. zangpabo@newspim.com 2025-07-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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