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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윤종오, 용접공에서 노동 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는

기사입력 : 2025년05월05일 12:00

최종수정 : 2025년05월05일 12:00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 과정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겪은 일화부터 노동 개혁에 앞장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윤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진보당 울산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진보당에서 현역 중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원내대표도 맡고 있다. 

윤 의원은 196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뒤, 거제도 대우조선소로 직장을 옮겼다. 

윤 의원은 과도한 노동에 문제를 느껴 노동조합원으로 본격 목소리를 냈다. 이후 울산 북구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2006년 울산 시의원을 거쳐 2010년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가 지난해 22대 총선으로 복귀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윤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안녕하세요.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저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재선 국회의원이신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님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네 반갑습니다. 워낙 전국 현안이 바쁘지만 또 대표님을 알아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초대 요청드렸습니다. 먼저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가족 관계부터 좀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제 대표님 과거 부모나 가족 관계 그리고 현재 뭐 가족 관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윤종오 의원. 이하 윤) 아버지는 한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지금 90세인데 아주 건강하게 살아 계시고요. 제가 원래 5남매 중에서 장남이었는데 한 10년 정도 전에 쌍둥이 동생을 한 명 더 찾아가지고 6남매의 맞이 2남 4녀 맞이고요. 자녀는 지금 딸 둘에 아들 1명 큰 딸이 결혼을 해 가지고 또 손주를 낳아서 큰 손주가 4살 그다음에 딸 아들 쌍둥이 손주를 또 낳았어요. 걔들이 이제 돌을 지나가지고 14개월 됐는데 제가 자식도 3명을 낳았고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저보고 벌써 애국자라고 많이 그러네요.

-(윤)가족끼리 명절 때나 보면 되게 이렇게 반갑겠어요 가족들도 많아서.

▲(윤)그렇죠 이제 우리 어머님 슬하에 6남매 그 밑에 이제 손주들 또 그 밑에서 또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한 모이면 뭐 한 30명 이상 대식구죠. 명절 때 집이 막 터져 나가면

-(윤)그러니까요. 근데 또 설 명절이나 이럴 때 오히려 의원님들 더 바쁘시잖아요. 근데 또 가족들 보시는 데는 괜찮으신가요?

▲(윤)뭐 아무리 바쁜 정치 일정이 있어도 또 우리 명절 때는 가족이니까 가족들과 이렇게 따뜻한 시간도 보내야지 가족들 지지 없으면 정치 활동도 못 합니다.

-(윤)의원님 태어나신 곳은 경남 합천이시네요.

▲(윤) 그렇죠 합천은 태어나기만 태어났어요.

-(윤)그렇구나 그럼 자라신 곳은

▲(윤)초중고를 그냥 부산에서 다 다녔기 때문에 부산이 제2의 고향이고 그 군대 다녀와서 이제 울산으로 왔기 때문에 울산은 얼떨길래 돈 벌러 올라 왔다가 제가 이만큼 정치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가 인생을 바꾸더라고요.

-(윤)그러면 합천에서 태어나시기만 하셨고 부산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윤)보냈죠.

-(윤)좀 찾아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좀 자랐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윤)그게 이제 아까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 여동생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 집안 형편도 어렵고 이래서 부잣집에 한 명을 보냈죠. 그걸 이제 44년 만에 찾게 되는 KBS 생방송 사람을 찾습니다.

-(윤)그러니까요. 저 어린 시절에

▲(윤)그런 아픔도 있었는데 그래도 또 잘 극복해서 제가 이렇게 재선 국회의원까지 됐지 않습니까?

-(윤)어린 시절에 의원님의 성향 이런 게 좀 궁금해요. 반장 도맡아 했다든지

▲(윤)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냥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잘 지내고 뭐 조금 솔선수범할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일을 하고 좀 부지런하고 좀 싹싹한 이제 그런 그냥 아이였죠.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지금 뭐 자주 보긴 하는데 이 친구가 어떻게 노동 운동을 하고 이렇게 정치로 나갔지 처음에는 되게 이렇게 의아스럽게 생각했죠. 근데 사람이 이제 이렇게 어떤 환경하고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나서야 될 자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또 살아왔던 시기가 이제 군부 독재가 한참 극을 달할 정도로 좀 독재가 심한 그런 시기에 이제 그 직선제 쟁취 혹은 철폐 이렇게 역사의 어떤 확 개병기 이럴 때 누군가는 또 나서야 돼.

-(윤)그렇죠

▲(윤)그 제가 그냥 나섰더라고요.

-(윤)그러면 어릴 때 꿈은 어떤 거였어요?

▲(윤)어릴 때 꿈은 그냥 유능한 기술자 빨리 돈을 벌어야 되겠다 가정 형편도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이 많이 앞섰는데요. 고등학교 때쯤 가서는 막연하게 다음에 내가 자라면 사회복지 사업 같은 거 했으면 좋겠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이런 걸 운영하면 잘하겠다 이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막상 이제 사회에 부도 끼고 제가 이제 정신까지 하게 됐잖아요. 이것은 고아원을 100개도 만들고 200개도 만들고 다른 복지관을 더 엄청난 복지 사업도 할 수도 있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처음에 꿈은 소박했지만 또 이렇게 살아가면서 새로운 꿈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윤)그럼 어린 시절에도 어쨌든 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런 직업을 좀 생각을 하시긴 하셨나요?

▲(윤)네 조금 어릴 때 이제 종교적인 영향도 조금 받은 것도 없지 않아 있고 그래서 제가 또 봉사활동도 고등학교 딸 시와의 활동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게 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또 도움으로 이 세상에 왔고 또 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서로의 협력과 이렇게 합의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데 맞아요.
조금 그런 게 그냥 생활화됐던 것이 어느 날 이 시대가 바뀔 때 저한테 정치의 기회도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윤)의원님 혹시 MBTI 검사해 보셨어요? 그 e와 i 성향이 있잖아요. 외향형과 내향형 중에 어떤

▲(윤)이제 제가 검사니까 외향으로 나오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내향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MBTI가 다 정확하지는 않다.

-(윤)본인이 선택을 하는 거니까

▲(윤)제가 이제 제 성향이다 이러니까 우리 딸 아이는 다른 사람이 다 속고 있는 거다 이 그런데 이제 사실은 제가 제가 조금 뭐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또 적응적일 때 있고 또 이럴 때는 좀 감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또 이성적으로도 행동하고 그 사안에 맞게 이렇게 적절하게 판단을 잘 하는 것들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왜냐하면 정치인이라고 하면 되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일 거라고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도 좀 내성적이기보다는 리더 활동을 많이 했다든지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윤)저는 이제 조금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함께하고 어디 놀러를 간다 이렇게 하면 제가 챙기고 준비하고 이런 것들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이제 사회생활하면서 다 도움 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할 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면 좋잖아요. 그렇죠. 세상 살아가는데 이 시에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은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

-(윤)그러면은 중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윤)부산의 사상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했고요. 그때는 뭐 방위 산업차라고 하는데 사실은 고무를 취급하는 곳이었어요. 그 전차 바퀴의 고무 청소는 개머리판에 고무 이래 사실은 고무공장이에요. 하루 일하고 나면은 호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가 그냥 한 주먹씩 나왔어요. 또 도저히 목욕을 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가 없고 그때 방지 마스크도 제대로 안 줬어요. 지금 같으면 폐암 걸려서 다 죽었을 텐데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제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또 이제 용접비를 이제 하게 되었고 그때도 뭐 정말 현장은 열악했죠. 한 달에 체라 특권을 많이 할 때는 15개

-(윤)뭘 15개요?

▲(윤)특근

-(윤)철야 특근

▲(윤)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해야 되잖아요. 저녁에 퇴근하지 않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 좋겠지만 안 하고 그다음 날 저녁에 퇴근하는 거예요.

-(윤)그럼 거기서 먹고 자는 거예요.

▲(윤)회사에서 밥 먹고 못 자고 일을 하는 거죠. 그렇죠 조이 졸면 와서 망치 두드리고 깨우고 그러죠. 이제 그래서 막 인간이 아닌 거죠. 노동을 짤 수 있는 만큼 짜는 거죠. 그게 거제도 조선소에서도 그랬었고 이제 80 제가 6년도에 군대 제대를 하고 현대차에 입사를 하게 되는데 거기 하니까 지금 현대차 되게 좋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잖아요.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 그 선호하는 대기업 거의 뭐 타 클래스에 속하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줄을 서면 돼 갔어요. 이번 주에 한 500명 뽑고 다음 주에 또 500명 막 뽑고 그 사이에 또 몇 백 명 퇴직 퇴사해요.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왜 안 좋은 회사니까 매일 12시간씩 교대 근무로 일을 하고 당연하게 출근 일요일은 출근할까요? 안 할까요? 의도가 비죠. 무조건 출근 쉬는 날이 없어요. 그렇게 이제 막 교대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다 일해도 실제적으로 이제 임금은 한 20만 원도 채 못 받고 내 차를 산다 내 집을 산다 꿈에도 못 꿨죠.

현대차가 그랬어요. 그게 이제 87년도 60항쟁과 함께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그때 이제 저도 모르게 제가 메가폰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고 그 이후에 이제 이렇게 획기적으로 이제 임금도 오르고 이제 이렇게 여러 가지 사내 복지도 좋아지고 어 이렇게 하면서 조금 다닐 만한 회사가 된 거죠.

그러한 과정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렇죠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되고 싸우고 막 어떤 데는 진짜 분신도 하고 막 이런 어마어마한 투쟁들이 속에서 오늘의 이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의 어떤 노동자 전체의 어떤 권익은 물론이고 사회의 어떤 분배의 정의 실현 이런 부분에서도 상당 부분 이렇게 역사적 성과는 있는 거죠. 그렇죠 다소 뭐 이렇게 대기업 노조가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인 어떤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같이 올렸던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노동조합 운동이 큰 역할을 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하는 데 앞장을 서신 거죠

▲(윤)예 처음에는 그렇게

-(윤)그때 그럼 노동조합 노조장 위원장을 하셨던 거예요.

▲(윤)위원장을 하지는 않았고요. 제가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가 25살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100명에 1명씩 대표인 대의원도 하고 우리 전체 재정이 제법 그래도 조합원이 많으니까 몇백억 되는데 거기에 총괄하는 총무부장도 하고 또 한 개 공장도 커요.

제가 1공장이라는 승용차가 만드는 공장인데 한 3600명 됩니다. 거기에 노동조합 대표도 하고 전체 노동조합을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쟁의실장도 하고 이렇게 이제 10년 정도 조합 간부를 하면서 현장에서 임금이나 단협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올리는 것이 좀 한계점이 왔을 수 있죠.

그래서 이제 사회 개혁 요구가 되게 많았어요. 의료 개혁을 하자 교육 개혁을 하자 이제 이런 요구들이 많았는데 분출했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누가 만들어요? 정치가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이렇게 정치의 직접 정치에 대한 어떤 요구들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이렇게 기름을 부은 것이 IMF가 오면서 이제 정내고 바람이 확 불었던 거죠. 여기 그만두시면 갑자기 갈 데 있으신가요? 쉽지 않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 현대차를 다니다가 갑자기 잘리면 뭐 대우차나 상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제 그렇듯이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대투쟁이 일어난 거죠.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제 그렇게 하면서 96년 말 97년도 노동법 개정이라는 큰 투쟁이 한 달 동안 이렇게 벌어졌고 그때 정리해고법이 통과됐던 것이 다시 2년간 유예되는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 투쟁으로 해서 유예되는 그런 어떤 엄청난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자각을 한 것이죠. 우리 대표를 정치권으로 많이 보내자 국회로 보내자 지방의회로 보내자. 이때 이제 제가 선발대로 뽑혀 가지고 98년도 지방선거 당시 제가 나이가 36살이었는데 이제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북구의원으로 당선된 것

-(윤)그 사이에 좀 더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왜 당시에 내가 이렇게 앞서서 이 노동 현장의 처우 개선에 내가 힘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계기가 뭐였

▲(윤)그냥 운명처럼 제 앞에 마이크가 잡혀 있었고요. 이제 그때 현장의 어떤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지금 어떤 일반 직장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 당시가 이제 군부 독재 시대고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 그 군사 문화가 그대로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처음 만들어졌으니까 많은 요구들이 분출했을 거 아닙니까? 요구들이 1번부터 해서 몇십 번까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1번 1번이 뭐였을 것 같아요?

상상이 안 가죠. 두 발 자유화였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두 발 자유화를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는 그 현장이 얼마나 군대처럼 이렇게 통제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의 어떤 사회였는가 이제 이것이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내가 땀 흘려 일하는 만큼 내놔라 하는 이제 그 권리의식이 같은 것이고 제가 현장에서 이제 실질적으로 명절 때 설날 같은 날 설날 아침에 퇴근시키고 휴일은 아예 없으니까 반장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반에 전이 보면은 우리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오직 회사만을 위해서 우리는 일해야 된다 이렇게 막 주입을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일요일 날 만약에 안 나오게 되면 당연하게 놀아야 되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2개의 또는 3개를 쳐가지고 고가 먹일 때 반영해서 임금을 적게 주기도 하고 이제 이렇게 하면서 많이 여리 바다에 있었던데 때마침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저도 모르게 나서게 될 거라고요.

-(윤)그때 그 노동 운동 그런 것들이 지금 정치를 하는 데까지 이제 발판

▲(윤)예 엄청난 이제 노동조합 운동은 정치 운동을 하는데 밑거름도 되었고 발판도 되었고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는 당연하게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과거에 일반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님은 계시지만 기자님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이것을 정치적으로 어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지 권익이 더 세지는 것이고 이렇듯이 정치하는 사람이 판검사 출신만 정치하고 대학 교수 출신만 정치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안 되죠. 그런데 이제 국회에는 가면 지금도 좀 편향되게 특정 직종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가다 대표하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죠. 앞에 나갔을 때는 노동자들 서민들 영세 상인들을 위해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들을 보면은 이제 그런 것들은 억수로 좀 터부시 되고 실질적으로 자기 이해 집단과 관련된 부분들이 훨씬 더 우선적으로 좀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이런 경향들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정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이제 독일과 같이 이제 이렇게 비례대표 총량을 더 키워서 한 600명 되는데 반은 비례대표니까 거기에 이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각 정당이 이렇게 배려를 하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들어와야 되는데 우리는 영남에는 뭐 그냥 국회입니당 호남은 민주당 지역 정치가 그냥 그대로 국회에 들어와서 실제적으로 계급적인 어떤 그런 사람들을 좀 제대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윤)네 의원님 자랑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특전사로 복무하신 이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좀 알려줘.

▲(윤)아 예 제가 부드러운 모양새라 가지고 안 믿는데 홍수에서 너무 고맙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보당 활동을 하다 보니까 선거 때만 되면 종북 공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근데 그 종북이라는 게 웃기는 게 선거 끝나고 나서 나한테 종복이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선거 되면 또 종북 이야기합니다. 근데 종복 이야기할 때 제가 특전사 출신이다 이러면 상당 부분 이렇게 종북 공세를 방어하는 데 좀 유리한 부분으로 작용했고요. 네 그런데 그런 어떤 이념 논쟁이라는 게 좀 웃기는 게 저희 고향이 합천이라고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정치적으로 놓고 보면 300명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좌측에 있다고 대부분 기자님들이 그렇게 판단하시죠.

그렇죠. 근데 그러면 당연하게 자기 좌측에 있으면은 조금 이제 종복 공세하는 그런 경향이 그동안 그런 경향이 억수로 더 이렇게 진한데요. 제 고향에 가면은 아재들이 이래요. 막 정치 이야기하다가 맞아요. 제가 종복인 기라면 은 아니지 우리 종우가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어떤 이념 공세라는 게 괜히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우리 진보당에 있는 의원들도 누구보다도 애국자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로 만 만들어 갈까 하는 측면에서 이런저런 정책 제안을 하고 그것을 좀 이렇게 실현시키려는 노력들을 소수 정당이지만 이제 끊임없이 해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의제를 선도했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의 어떤 복지 모델이나 이런 어떤 사회 대개혁 과제 중에서 상당 부분 어떤 성과를 저는 저희들은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석은 작았지만 성과를 만들어 나오는데 우리 진보 정당의 역할이 있었고 앞으로 진보당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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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스테이지' 첫 주자 민주·김마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이 개최하는 싱어송라이터 경연대회 '히든스테이지'가 드디어 막이 오른다. 20일 오후 4시 10분 유튜브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되는 '히든스테이지'는 미래의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갈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경연 대회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24팀(명)이 매주 2명(팀)씩 출연하여 실력을 겨룬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의 첫 경연 주자는 민주와 김마누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민주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민주(본명 김민주·24)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아직까지 정형화된 음악 대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부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고향 부산에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세상 사람들과 만나왔다. 이번 '히든스테이지' 출전을 계기로 부산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다섯 살 때 김종국의 '사랑스러워'를 불러서 칭찬을 받은 것이 노래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7살 무렵부터는 빅뱅의 열렬한 골수 팬이 됐다.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성악을 공부하면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왔다.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하여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김마누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밴드 '밍글'로 활동할 당시에 KT&G 상상 라이브 연습실 우승(2023)을 차지했고, 부산 MBC '마이스테이지' 가을 특집 출연(2024), KNN '마실가요, 따스함으로 물들다'에 출연(2024)하는 등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음악과 달리 개성이 넘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한다. 또 강렬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 로커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도 좋아한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참가곡은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와 '수도 없이'라는 곡이다. '너가 외롭고 아프지 않았음 해/ 내가 외로워져 아파지더라도 말야/ 넌 좀 달랐으면 해. 나와는 말야/ 내가 흘린 눈물의 반의 반만 흘렸으면 해'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는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는 이타적 감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수도 없이 많은 밤을 새웠어/ 수도 없이 많은 꿈을 꾸어 왔어/ 수도 없이 많은 사람 만나왔고/ 수도 없이 별 수도 없이/ 이제 나는 빈껍데기만 남아/ 아직도 꿈을 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며/ 밤을 새워'라는 노랫말을 가진 '수도 없이'는 코로나 시국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만든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민주. 2025.06.19 oks34@newspim.com 김마누(본명 김지범 ·34)는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싱어송라이터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언젠가는 음악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한다. 몽환적이면서도 따스한 분위기의 음악인 베드룸팝과 인디록을 지향한다. 베드룸팝의 대표주자인 Mac de Marco의 노래를 좋아한다. 엄청난 훅을 가진 그의 노래들과 일상 하나하나가 밈이 되는 스타일까지 마음에 든다. 제28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JTBC '슈퍼밴드 1'에도 출연했다. 멜로망스의 7집 앨범 '너랑'의 작곡자이며,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OST에서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2022년도 1월 'I'll Be There'로 데뷔했으며 올해 또 다른 앨범 발표와 공연을 준비 중이다. '히든스테이지' 출연을 계기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크게는 해외 페스티벌 참가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운드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꿈이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고 있는 부모님, 연인, 친구들에게 주는 노래 'I'll Be There'는 김마누의 대표곡이다. '이제 내게 기대/ 내가 늘 옆에 있어 줄게'라는 노랫말처럼 한 편의 멜로영화처럼 아련하고 고요하다. 여기에 비 오는 날의 숨결과 사랑의 리듬을 표현한 'Tiny Couch'를 부른다. 'Tiny Couch'에서 김마누는 사랑이란 거창한 말 없이도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속삭인다. 'You hum that tune like you always do/ And I'll sing low, just like I promised to/ Your laugh fills me, baby I won't let go'라는 노랫말처럼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포옹과 같은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김마누.2025.06.19 oks34@newspim.com 미래의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히든스테이지'는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녹화 경연을 진행 중이다. 9월 첫째 주 본선 경연이 끝나면 심사위원과 응원단의 점수를 합산하여 톱 10 진출자를 결정한다. 10월 1일 오후 서울 홍릉 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문화광장에서 마지막 톱 10 경연대회를 펼친다.  '히든스테이지' 대상(1명)은 500만 원, 최우수상(2명)은 각 300만 원, 우수상(1명)과 루키상(1명)에게는 각 200만 원 등 총 1,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상이 주어진다. 본선 진출자 모두에게 포트폴리오로 활용 가능한 라이브 클립 제작, 각종 공연 참여 기회 및 언론 인터뷰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 또 최종 우승자인 대상 수상자에게는 음원 발매를 지원한다. 뉴스핌과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서울특별시·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후원하는 '히든스테이지'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미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대회로 손꼽히고 있다. 제1회 대회에서는 대상을 수상한 에이트레인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파일럿과 우수상을 탄 미지니가 배출됐다. 지난해 2회 대회에서는 뉴스핌 '히든 스테이지' 대상에 이찬주, 최우수상은 헤밍·채겸이 차지했다.  oks34@newspim.com 2025-06-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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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깊어가는 '당권 고민'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당권 도전을 놓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한 전 대표의 출마에 무게가 실렸으나 최근 '친한(친한동훈)'계 측근들 다수가 출마를 만류하고 있어서다. 출마 땐 승산이 있지만 당내 다수파인 구 '친윤(친윤석열)'계의 벽에 가로막혀 당 쇄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선 참패에도 구 주류는 건재하다. 원하는 후보를 쉽게 원내 사령탑으로 만들었고, 당 개혁안을 다수의 힘으로 저지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한계와 쇄신파가 밀었던 김성원 의원이 친윤계의 지원을 받은 송언석 의원에게 완패했다. 30대 60으로 사실상 게임이 되지 않았다. 구 주류가 지배하는 당의 세력 분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개혁안은 이들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탈락한 한동훈 후보가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5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2024.05.03 photo@newspim.com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어렵사리 당 대표 자리에 오른다 해도 이들이 비토할 가능성이 높다. 영남 중심의 다수파인 이들이 반대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당대회에서 63%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가 이들에 의해 쫓겨난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전 대표의 출마를 강력히 주장했던 측근들조차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이다. 물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측근들 다수가 반대해도 본인이 출마를 결심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마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19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서 "한동훈 전 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안 나온다고 하다가 나올 것"이라며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고, 결국 당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한 전 대표가 패배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한동훈 비토가 세기 때문에 최종 결선 투표에서 진 게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 실제로 한덕수 총리에 대한 지지세라는 게 있었다"면서 "그런 분들이 아무래도 단일화나 이런 것에 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문수 후보한테 갔던 것"이라고 봤다. 이 의원은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한 전 대표가 김문수 후보와 일대일로 만약에 붙는다고 봐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기류는 출마 만류 쪽이다. 원내대표 선거 완패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 개혁안 표류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설령 대표가 돼도 현실적으로 당 쇄신은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친한계인 정성국 의원은 18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개혁안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든지, 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송언석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당의 변화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한동훈이 등판하면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며 "지금 당내 분위기가 아직까지 많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만약 출마를 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제일 높다고 본다"면서도 "지금 굉장히 복잡해졌다. 의견들이 5대 5라고 봤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출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그러다 보니 한 전 대표가 나와서 이런 당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라며 "저항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친한계 핵심인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도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전당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좀 신중해야 된다는 의견"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번 출전할 수는 없다. 현실은 그렇다"고 했다. 그는 "친한동훈 그룹 내에서는 신중파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동훈이라는 존재는 보수 재건의 최강병기인 동시에 최종병기, 마지막 보루"라며 "한동훈이 무너지면 보수 혁신, 보수 재건은 거의 물 건너간다. 그러니까 소중한 만큼 아껴 써야 한다"고 했다. 친한계 인사 중 강력한 출마론자였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김 전 최고위원은 20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당의 최대 위기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출마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지만 최근 원내대표 선거와 당 개혁안 표류 등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 전 대표가 대표가 돼도 구 친윤계의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출마를 권유하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한 전 대표의 고민이 깊어간다. 한 전 대표는 출마 쪽에 무게를 싣고 조직 확산 작업 등을 해왔으나 측근 그룹의 만류와 쇄신과는 거리가 먼 당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마냐, 포기냐의 기로에 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된다.    leejc@newspim.com 2025-06-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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