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선 벽보·현수막 훼손 혐의로 120명 수사중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반증"
"선거 벽보 훼손은 공정한 선거에 차질…처벌 대상"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6·3 조기대선을 열흘 정도 앞둔 가운데 전국적으로 선거 벽보·현수막을 훼손하거나 선거운동원을 폭행하는 등 선거폭력·방해 사범이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23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기준 선거 벽보·현수막 훼손 혐의로 120명을 수사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같은 기간 45명 대비 2.6배 증가한 수치다.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선거사범 수사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엄정 수사에 나섰다.
![]() |
[구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선거사무원들이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3일 구미역 광장에서 율동을 하고 있다. 2025.05.13 mironj19@newspim.com |
◆ 1시간 동안 벽보 12개 훼손…만취해 선거운동원 폭행도
지난 20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 벽보 12개를 1시간 동안 찢거나 훼손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날에는 전북 전주시 전동성당 인근에 게시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현수막이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는 한 남성이 유세 중이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운동원 4명을 발로 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부산 기장군에서는 만취한 남성이 유세 중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운동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전국 각지에서 선거 벽보를 훼손하거나 선거운동원을 폭행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정성은 건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진영 간 갈등이 과열되다 보니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폭력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성은 교수는 "요즘 SNS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상대 후보자나 정치인들을 악의적으로 합성한 사진을 이용해 비난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에 있는 선거 벽보에 낙서를 하거나 찢는 행위들도 별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 차량이 유세를 돌고 있는 모습(위)과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원이 인사하는 모습(아래). 2025.05.23 jeongwon1026@newspim.com |
◆ "선거 벽보 훼손은 공정한 선거에 차질…처벌 대상"
선거 벽보나 현수막을 훼손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나 현수막을 훼손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선거 벽보나 현수막은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모든 유권자가 공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특정 후보자의 선거 벽보나 현수막이 훼손돼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 후보자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결국 공정한 선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원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행위도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곽준호 변호사는 "정치가 너무 과열되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그냥 인정하지 못하고 증오하면서 상대 진영의 선거운동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 같다"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인정돼야 하지만 폭력적인 방식은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 |
[서울=뉴스핌] 양윤모 기자 = 21대 대통령선거를 19일 앞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 담장에 대선 후보들의 선거벽보(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2025.05.15 yym58@newspim.com |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정치인의 자정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자정 노력을 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성은 교수는 "정치 혐오나 갈등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가 가짜뉴스"라며 일반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각 후보마다 좋은 공약도 있지만 비판받아야할 공약들도 있다. 이를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특정 후보만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 정파성 속에서 이성적인 토론과 논의의 장은 사라지게 된다"며 "이는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매우 심화됐다"며 "이번에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에서는 통합의 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진영 대결과 폭력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선거폭력·방해 사범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경찰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출입구, 대학가, 공원 인근 등을 중점 장소로 지정하고 기동순찰대를 투입해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율방범대 등 지역 공동체 치안 자원과도 협력 체계를 구축해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정한 선거 문화를 위협하는 벽보 훼손 행위는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선거 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촘촘한 예방 활동과 동시에 선거사범에 대해 엄정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