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신감독 세계·삶·모빌리티·미래 키워드로 기획
태도 디자인하는 포용디자인,모두를 위한 디자인
19개국 429 작가의 다양하고 신박한 작품·프로젝트 눈길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먼저 삶, 그 다음 공간, 그 다음 건물이 중요하다. 반대 순서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얀 겔). "좋은 디자인은 가능하게 만들고 나쁜 디자인은 불가능하게 만든다"(패트리샤 무어). "다름이야말로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새로운 정상이다"(엘리스 로이)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와 시각디자인 교수들은 디자인에 있어서 '포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엔날레는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어떻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을까. 날 선 대립과 골 깊은 갈등이 팽배한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포용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그리자'며 포용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대표이사 윤범모)가 '너라는 세계(You, The World)'라는 타이틀로 2025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지난 8월 30일 개막했다. 오는 11월 2일까지 광주광역시 북구 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는 세계 19개국에서 429명의 작가가 참여해 다양한 '포용의 디자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비엔날레의 서브 타이틀 또한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이다. 결국 다양한 주체들의 개별적 삶을 연결하는 포용의 가능성에 촛점을 맞춘 미술제인 셈이다. 이미 개막 공연과 국제심포지엄, 72시간 포용디자인 챌린지는 개막과 즈음해 열렸고, 본전시인 디자인비엔날레는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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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2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놀공(NOLGONG)의 게임 기반 참여형 전시 '포용도감: 포용하지 않으면 죽는다' 부스. 이 작품 속 '포용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부제는 과장이 아니라 게임 속 경고의 메시지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포용하지 못하면 고립되고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이자 포용받지 못해 사라지는 존재가 외치는 마지막 절규이기도 하다. 2025. 2025.09.19 art29@newspim.com |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지난 2013년 이후 12년 만에 (재)광주비엔날레가 다시 주관해 막을 올렸다. 지난 12년 간은 광주디자인진흥원이 비엔날레를 맡아 선보였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디자인으로 주변 존재, 즉 타자를 생생하게 인식해보는 미술제이자, 디자인 전공자들의 교육현장, 그리고 디자인 이론이 오가는 학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참여 아티스트들은 총 163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2025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디렉팅한 최수신 총감독(미국 사바나예술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은 디자인의 의미와 역할을 성찰하는 힘으로 '포용 디자인'을 제안했다. 타이틀인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는 개별적인 '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너'인 우리가 디자인을 통해 서로를 인식하고 만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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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전경. [사진=광주디자인비엔날레] 2025.09.19 art29@newspim.com |
이번 비엔날레는 ▲세계 ▲삶 ▲모빌리티 ▲미래라는 네 가지 관점으로 짜여졌다. 각 섹터를 맡은 네 명의 큐레이터들은 현대사회 속 시민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얼마나 많은지 그 차이를 파악하고, 서로의 존재를 포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찾는데 기획의 촛점을 맞췄다. 어느 가정에서나 무시로 쓰고 있는 감자칼이라든가 포크, 청소도구 같은 작은 일상용품에서부터 기후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대항하는 구조물까지 비엔날레는 미시적인 요소에서부터 전지구적인 문제를 포용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또 누군가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문구, 성소수자와 이민자 등 소외된 존재를 잇는 앱, 신체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까지 공동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구축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최수신 총감독은 "흔히들 포용디자인이라 하면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배려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상의 언어'다. 이번 비엔날레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 전체의 활력으로, 산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나아가 국가의 미래 비전으로 확장될 수 있는 촉매제로서 '포용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의 시작인 인트로존은 2025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핵심 가치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즉 포용디자인이 '너'로부터 각각의 삶을 반영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이자,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의 출발임을 알린다. 이후 본 비엔날레는 네 개의 주제에 기반해 포용디자인과 감각으로 하나가 되는 뉴노멀 플레이그라운드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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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 텍스타일 카토그래피 실로 그린 지도(Textiles Cartographies)(2025). 전세계 29개 대학, 예술단체에서 6천명이 참여한 섬유공예 프로젝트다. 2025.09.19 art29@newspim.com |
◆1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세계(Inclusive World)
1전시관에서는 전세계가 실천해온 포용디자인의 흐름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접근성과 연대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일본 규슈대학교의 '텍스타일 카토그래피: 실로 그린 지도'(2025)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사각의 섬유작품들을 길게 늘어뜨려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놓은 프로젝트다. 규슈대 APECV 리서치그룹은 섬유공예를 이야기 도구로 삼아 전세계인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대학, 예술단체, NGO 등 29개 단체의 참여자 6000여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섬유공예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사각의 작은 직물에는 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려넣은 것에서부터 단추 달기, 뜨개질 등 각양각색의 기법으로 내면을 표현한 '소박한 예술'이 이어진다. 전 지구적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자기 서술을 통해 현대의 인간과 사회를 세심히 통찰할 수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공과대학의 '부유하는 둥지'(2025)는 기후 위기로 발생한 해수면 상승에 대응해 '지식의 도서관'이라는 개념으로 열 개의 수상 구조물을 선보이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 베네치아를 비롯해 리스본, 이스탄불, 마요르카까지 각 구조물은 서로 다른 지리적 문화적 맥락에 맞춰 다르게 설계됐다. 예를들어 베네치아의 경우 베네치아 석호의 상징이자 아이콘인 전통 레이스공예를 차용해 눈길을 끈다. 이들 구조물은 문화와 사회가 만나는 대안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삶(Inclusive Life)
2전시관은 '나', '나와 우리', '나와 사회'를 위한 포용이라는 세가지 시각으로 전시가 짜여졌다.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사회적 관계까지 디자인이 공감과 환대의 태도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포용 디자인을 살펴보고, 사용자 관점에서 모두의 관점으로 확장되는 포용디자인의 영향력을 분석한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다.
한국 프로젝트그룹인 놀공(NOLGONG)의 '포용도감: 포용하지 않으면 죽는다'(2025)는 게임 기반의 참여형 설치작품이다. 관람자는 게임에 참여해 직접 '포용'이라는 개념을 탐색하고 기록할 수 있다. 여기서 "포용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부제는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포용하지 못하면 고립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이자, 포용받지 못해 사라지는 존재의 절규를 담고 있다. '포용'이라는 키워드 아래 다양한 상황의 선택을 마주해야 하는 관람자는 게임(작품) 속 지령을 하나씩 수행해야 생존할 수 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를 더 포용적인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소망을 전하는 작품이다.
토스 유니버설 디자인팀의 '일상을 잇는 도구들'(2025)은 뛰어난 전문성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각장애인 다섯 명의 인터뷰로 구성된 작품이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이들이 각자의 이유에 따라 한 몸처럼 선택한 각각의 도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에 설치된 '마음보듬소'(Quiet Room)(2023)도 2전시관에서 소개되고 있다. 이 작품은 발달장애 아동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국내 박물관이나 교육프로그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공간으로 미래 공공문화시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빛과 소리를 관람객이 직접 조절하며 감각 과민을 완화할 수 있으며, 발달장애 아동 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관객 모두 쉴 수 있는 장소로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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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디자인드 바이 현대(Designed by HYUNDAI), 마이크로 모빌리티 E3W, E4W(Micro-mobility E3W, E4W)(2025). 2025.09.19 art29@newspim.com |
◆3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모빌리티 (Inclusive Mobility)
3전시관은 현대인에게 이동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즉 이동이 단순히 물리적 수단이 아니며, 인간 존엄성과 삶을 보장하는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빌리티가 수단이 아닌 목적과 본질에 다가가는 배경임을 포용디자인을 통해 제시한다. '모두를 위한 이동'의 성찰과 그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주식회사 하이코어가 디자인한 '스마트 로봇체어 에브리고 HC1'(2025)은 이동약자를 위한 차세대 이동 보조기기다. 다양한 신체 조건을 고려해 좌석 높이와 등받이를 제작했으며, 전동식 이동시스템으로 사용자의 체력 소모를 줄였다. '로봇체어'라는 새로운 명칭을 통해 교통약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제고하고, 개인형 모빌리티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관람객은 누구나 직접 로봇체어를 시승하며 교통약자의 시선을 체험볼 수 있다.
디자인드 바이 현대의 '마이크로 모빌리티 E3W, E4W'(2025)는 인도에서 대중적으로 각광받는 이동수단 릭샤를 패러디했다. 노인과 장애인도 탑승하기 편한 넓은 출입구와 낮은 탑승 높이, 외부 환경이나 도로주행 시 충격에 대비한 구조를 갖췄다. 릭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와 전기차 기반 설계가 적용됐다. 2025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한 작업이다.
영국의 대표 택시브랜드인 LEVC 코리아는 블랙캡 모델인 'LEVC T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2021)를 선보이고 있다. 이 택시는 모두의 이동권 보장을 목표로 한다. 휠체어, 유모차, 고령자, 짐 많은 승객 등 다양한 이용자가 쉽게 탑승할 수 있도록 높고 넓은 층고를 채택했고, 최대 6명이 탑승 가능하도록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췄다.
◆4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미래 (Inclusive Future)
4전시관은 ▲로보틱스 ▲인공지능(AI) ▲자연 ▲웰빙 등 네 가지 키워드로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 윤리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기술이 또 다른 배제와 단절을 초래하지 않고, 인간과 나란히 설 수 있도록 한 실험적 작업들이 다수 나왔다. 이를 통해 포용디자인이 기술 보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임을 감지할 수 있다.
팽민욱 작가의 '스시 2053'(2023)은 4전시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금속빛 초밥들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초밥의 형태는 인간 통제를 벗어난 자연 속 돌연변이의 비선형성과 닮았다. 이는 오염과 기후변화에 따라 변한 환경과 우리가 곧 맺게 될 새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형상은 매우 익숙하나 매우 낯선 초밥의 질감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DLX 디자인 랩과 도쿄대학교 수의행동학 연구소의 '도시 속 쥐'(2025)는 도쿄에서 1년간 쥐를 관찰한 기록으로 제작된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이다. 프로젝터로 투영된 쥐의 그림자와 움직임을 따라가며 무조건적인 방제 방식을 재고할 것을 이야기한다. 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과 생태적으로 더 포용적인 도시로 나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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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시각 중심의 관람방식을 뛰어넘어,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체험 방식을 제안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마지막 5관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의 전시전경. 작품을 만지고 듣고 냄새 맡으며 기대고 쉴 수 있도록 조성된 디자인 놀이터다.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9.25 art29@newspim.com |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 감각으로 연결되는 놀이터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 감각으로 연결되는 놀이터'는 말 그대로 놀이터같은 전시장이다. 시각 중심의 전시 관람방식을 뛰어넘어, 다양한 감각 체험을 제안하고 있다. 빛, 소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원형 공간을 지나면서 여러 가지 감각을 동시에 경험해볼 수 있다. 관람자들은 동선에 따라 앞서 경험한 감각이 오버랩되며 각기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무뎌진 감각과 경험을 되살려 다양한 감각을 한자리에서 느끼도록 디자인된 이 공간은 아인투 아인(Ayinto Ayin)의 기획으로 조성됐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일까지 계속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단 추석연휴인 10월 6일 월요일은 정상적으로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