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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김창열회고전' 아직 못보셨나요? "물방울이 전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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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말하기위해 찾은 가장 절제된 형식' 물방울
전생애 창작여정과 예술세계 망라한 대규모 전시
미공개작 31점,뉴욕시기 작품 포함 120여점 공개
김창열 상징하는 '물방울'로 향하는 예술여정 조명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우리에게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창열은 말했다. "말없이 말하기 위해 찾은 형식이 물방울이었다"라고. 가장 절제된 조형어법이 김창열에겐 물방울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물방울 그림'의 작가 김창열의 예술세계는 그러나 물방울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데뷔초 다양한 대상과 앵포르멜 작업을 두루 시도했고, 뉴욕시기에는 이른바 '옵아트'에도 심취해 강렬한 옵아트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한국인 모두에게 물방울 작품으로만 오랫동안 각인된 김창열의 다채로운 예술세계와 창작여정을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관장 김성희)은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의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을 오는 12월 21일까지 개최한다. 아직 김창열 회고전을 보지 못했다면 서둘러야 한다. 폐막일이 가까와오면 몰려드는 관람객으로 쓸려다니다가 앞사람 뒷꼭지만 보다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김창열 회고전의 물방울 전시실 전경. 어두운 공간에 오직 3점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침묵 속에서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5.08.21 art29@newspim.com

MMCA는 한국 근현대미술사 정립을 위해 원로작가및 당대 미술사 연구에 기반한 전시를 선보여왔다. 이번에 그 일환으로 김창열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했다.

김창열은 1950년대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하며 서구 현대미술의 어법을 한국적 정서로 녹여내는데 힘썼다. 1965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작업했고, 1969년에는 파리에 정착했다. 작가는 혼돈의 이 시대에도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을 묵묵히 이어갔다. 하지만 이 시기 작업들은 일반에겐 별반 소개되지 않아 우리는 1970년대부터 평생에 걸쳐 천착한 물방울 작업으로만 김창열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물방울 그림은 김창열을 통칭하는 상징이자 작가와 동의어다. 하지만 물방울 이전에 작가는 어떤 창작에 몰두했으며,  물방울 그림이 나오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번 김창열 회고전은 작가의 전 시기 창작여정을 세밀하게 조명하면서 작품세계에 내재된 근원적인 미의식을 중심으로 물방울 회화의 전개과정을 탐색한다. 또 그동안 작품의 대중적, 상업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김창열 작업에 대한 미학적 연구를 심화해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동시대적 가치를 다시 짚어본다는 목표도 있다.

전시는 6,7전시실에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8전시실에서는 미공개 자료와 작품들로 이루어진 '별책부록'같은 공간을 조성해 작가의 삶과 창작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유리를 깎아 만든 김창열의 물방울 조각과 초기 미공개 회화들이 함께 걸린 김창열 회고전 전시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5.08.21 art29@newspim.com

◆첫 번째 장 '상흔'=MMCA 6전시실에서 시작된 전시는 김창열의 초기작을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세계가 형성된 시대배경과 활동을 살펴본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김창열은 16세에 홀로 월남했다. 해방과 분단,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맞닥뜨리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처절하게 겪은 그에게 이 때의 상흔은 예술세계 전반에 중요한 바탕이 됐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극단적 생존상황 속에서 보낸 김창열에게 '죽음과 삶'이라는 주제는 필연적으로 내면화되었고, 일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해방 이후에는 이쾌대(1913~1965)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교육받으며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당시 성북회화연구소는 쟁쟁한 예비작가들이 운집해 열정이 불꽃 튀던 곳이다. 김창열은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은 중단됐고, 경찰전문학교에 입교했다. 이후 제주도에서 1년 6개월간 경찰로 근무하며 그림뿐 아니라 문학활동에도 참여했다.

1950년대 후반 김창열은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서구에서 유입된 앵포르멜미술을 한국 상황에 접목하려는 실험을 이어갔다. 김창열에게 앵포르멜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총알 자국과 탱크의 흔적처럼 전쟁의 고통스런 절규를 화면에 메우는 행위였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의(祭儀)였다. '제사'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 많았는데 이 시기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상처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김창열 '무제', 1969년경, 캔버스에 유화물감, 20.5×20.7cm. 뉴욕 체류 시기에 그렸던 작품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5.08.21 art29@newspim.com

김창열은 국제무대에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는 것에도 적극적이었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1965년 제8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당시 체계적인 국가 지원이 거의 없던 상황 속에서도 해외 무대를 노크했다. 이같은 활동은 작가 자신에게 예술적 전환을 맞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장 '상흔'에서는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작과 앵포르멜 이전 시기의 작품으로 미공개작인 '해바라기'(1955) 등이 나왔다. 또 경찰 시절 경찰전문학교 격월간지 '경찰신조'의 표지화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이번 전시는 작품의 뒷면에서 전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캔버스의 이면을 조명하며 대형 전시의 첫 장을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1967년 '제사'라는 작품의 뒷면에는 '살과 혼(Flesh and Spirit)'이라는 절절한 글귀가 영문 서명 밑에 적혀 있다.  

작가는 "내 고교 동기 120명 중 60명이 전쟁통에 죽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총알에 살점이 찢기고,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죽어가는 친구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작가는 평생에 걸쳐 이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조형화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장 '현상'= 이 섹터에서는 뉴욕, 파리에 머물던 전환기 작업을 중심으로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김창열의 추상회화와 물방울의 기원을 암시하는 조형적 징후를 살펴본다. 1965년 작가는 김환기(1913-1974)의 권유로 록펠러재단 지원을 받아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의 앵포르멜 회화는 뉴욕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느낀 정서적 이질감은 그에게 큰 소외감과 회의를 안겼다. '사실 전쟁의 시기 보다 더 참혹했다'고 되뇌었을 정도로 김창열의 4년 뉴욕생활은 깊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생계를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넥타이 공장에서도 일했다.

하지만 작가의 실험과 모색은 끊이지 않았다. 앵포르멜의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환을 모색했는데 정제된 화면 위에 기하학적 형태와 착시적 공간감의 조형실험을 전개했다. 이후 김창열은 1969년 파리로 이주했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현상'연작은 이전의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가 녹아내리는 듯 유기적 형상으로 바뀐다. 응집된 덩어리는 마치 인체의 장기처럼 점액질로 표현됐는데 작가는 이를 '창자 미술'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파리 초기의 이같은 실험은 '물방울 회화'의 전조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전시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뉴욕시기 미공개 회화 8점과 드로잉작업 11점, 최초의 물방울 작품으로 알려진 '밤에 일어난 일'(1972)보다 1년 앞서 제작된 1971년의 물방울 회화 2점이 최초로 공개되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김창열 '제사', 196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2×13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5.08.21 art29@newspim.com

신체성, 물질성, 추상과 재현 사이의 경계를 탐색한 이 시기 회화실험은 곧이어 등장할 '물방울' 회화의 시그널이자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장 '물방울'= 마침내 물방울이 등장하는 세 번째 섹터에서는 김창열 회화의 정수에 해당되는 '물방울'의 조형적 특징과 전개 양상에 초점을 맞춰 구성됐다.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완결된 형태의 조형성을 보이며 끈적이던 점액질 형상이 마침내 투명한 물방울로 변화하는데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조형실험과 존재론적 사유 끝에 도달한 결과였다. 

작가는 파리 외곽의 마굿간 작업실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물방울 그림의 물꼬를 텄고, 이후 이에 전념했다. 캔버스와 유화물감을 살 돈도 태부족했던 김창열은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간밤에 뿌려둔 물이 아침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물방울의 그 충만함에 매료된 작가는 신들린 듯 붓을 들었고, 물방울 회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1971년 어느날이었다.

1973년 파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그의 물방울 그림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기 김창열은 에어스프레이(Air spray) 기법으로 극사실적인 물방울을 그렸고, 점차 캔버스와의 물리적 관계를 재고하면서 얼룩, 콜라주기법을 도입하는 등 작업의 형식을 확장해 나갔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단순한 물질적 형상을 넘어, 동아시아 철학의 전통과 깊은 접점을 이룬다. 또 초현실적 감각도 불러일으키는데 전시에는 1973년 초기 물방울부터 후기 물방울까지 대표작들이 망라됐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김창열 '물방울',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5×100cm, 개인 소장 2025.08.21 art29@newspim.com

그러나 물방울의 등장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실험과 고민 끝에 이룬 필연적 발견이었다. 특히 물방울은 언제 어디에 맺히든 '구'(球)의 형태를 띠며, 이전 앵포르멜 시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구멍'의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구체의 조형적 변주가 물방울로 이어진 셈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사실적이면서도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에어 스프레이 기법을 활용한 초기 물방울은 거친 생지, 모래, 나무같은 바탕 위에 놓이는데, 물방울이 그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듯한 느낌을 준다. 1970년대 후반에는 물방울의 얼룩 자국이 등장했고, 1980년대에는 회화적인 표현과 콜라주 등 다양한 변화가 이어진다.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정화수이자 눈물, 소변, 생명, 무(無)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다양한 상태를 아우르는 상징이자 기표다. 그의 물방울은 마침내 삶과 죽음, 실재와 허상을 넘나들며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품은 조형언어로 귀결된다.

◆마지막 장 '회귀'=김창열의 대형 물방울 그림을 너른 전시실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섹터다. 관객은 천자문 작업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통해 작가의 '창작과 사유의 근원'을 조우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 김창열은 화면에 문자를 도입하며 새로운 표현세계를 활짝 열어젖혔다. 르 피가로 등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던 작가는 글자와 이미지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깊이 빠져들었고, 이는 천자문을 활용한 '회귀'연작으로 이어졌다. 작가에게 천자문은 단순한 글자라기 보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인식하는 기호였다. 

천자문은 작가의 유년기와도 깊이 연결된다. 김창열은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천자문과 서예를 배웠다. 천자문을 습자지에 쓰듯 작가는 대형 화폭을 글씨로 채워나갔고, 이는 유년으로의 회귀이자 동양적 정서의 환원 의지다. 나아가 깊은 사유의 시공간이기도 하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김창열 '회귀 SNM93001', 1991, 마에 먹, 유화 물감, 300×195×(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5.08.21 art29@newspim.com

노년에 이르러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삶과 예술을 잇는 실존적 동반자로, '회귀' 연작은 삶의 상흔을 붓질로 꿰매는 진혼의 행위로 승화됐다. 문자와 물방울이 만나고 오버랩되는 이 후반기 작업은 김창열 예술의 본질을 드러내는 조형적 성취다. 작가 스스로에게는 '존재의 뿌리'를 되묻는 작업이다. 

미술관측은 관람객이 작가의 대형작품을 보다 몰입감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가로 7.8m의 대형작품 '회귀'(1991)를 최초로 공개한다. 아울러 작가의 삶과 예술여정을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축약본도 전시실 한켠에서 상영한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의 김창열 회고전 중 제 4장 '회귀'에 나온 천자문과 물방울이 어우러진 작품. [사진=국립현대미술관] 03 2025.08.21 art29@newspim.com

◆별책부록 8전시실 '무슈 구뜨(물방울씨)'=파리 외곽 팔레조의 마굿간을 떠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뒤, 김창열 작가는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 하나를 그려 넣었다. 자연스레 그는 '무슈 구뜨(Monsieur Gouttes,물방울 씨)'로 불렸고, 작업실은 예술가와 지인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되었다. 

8전시실에 마련된 작가 관련 아카이브 공간은 김창열의 삶과 예술의 또다른 면모를 비추는 별도의 공간으로, 찬찬히 둘러볼만한 전시물이 여럿이다. 이 곳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던 초현실주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상형시 'Il pleut(비가 온다)'에서 착안해 제작한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작품 'Il pleut(비가 온다)'(1973)가 소개되고 있다. 물방울로 시의 구조를 번역해낸 이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나라 안팎을 떠나 처음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회고전은 그동안 미흡했던 김창열 작가의 연구를 보완하고, 공백으로 남아있던 시기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라며 "김창열이라는 예술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정립하는 기회이자, 그의 삶과 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학과 정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오는 12월21일까지 계속되는 김창열 회고전의 관람료는 2000원. 만24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무료. 매주 수,토요일 야간개장(오후6~9시)에는 입장무료. 월요일 휴관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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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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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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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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