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인천 등 민간임대주택 임차인, 분양가·우선권 불만에 집단 대응
분양전환 산정 기준 논란 일어… 제도 공백 지적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민간임대주택의 의무 임대기간이 속속 만료되면서 분양전환 가격과 우선권을 둘러싼 임차인과 임대업자 간 갈등이 전국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분양전환 여부와 가격 산정의 불명확한 규정이 맞물리며 법적 대응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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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민간임대주택 공급 현황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 "처음 말한 가격 어디갔나" 임대기간 종료 앞둔 민간임대주택 갈등 번져
21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올 2월 임대기간이 끝난 충북 청주시 동남지구 '대성베르힐1·2단지' 입주민은 분양전환을 예고한 대성건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1507가구 규모의 이 단지는 2019년 입주한 민간임대아파트다. 5년 임대 후 분양을 받거나 1회에 한해 임대기간을 2년 연장해 최장 7년까지 거주한 후 분양을 선택할 수 있다. 임대 기간 만기일은 올 2월로 당시 대성건설은 분양 전환을 결정하며 전용 84㎡ 분양가로 약 4억6000만원을 제시했다. 인근 '청주동남파라곤'(2022년 입주)가 이달 17일과 10일 각각 4억원(15층)과 3억8000만원(6층)에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이다.
임차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계약 당시 분양사무소 관계자가 분양 전환 시 임차인에게 우선 계약권을 지급할 예정이며 분양가보다 20% 할인된 금액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대성건설 측은 지정한 기간 내에 계약을 하는 임차인에 한해 2000만원 할인 분양을 하겠다는 합의안을 제시했으나 갈등은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민간임대주택 '도화 서희스타힐스'(520가구) 임차인들은 최근 분양전환을 결정한 인천도화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를 대상으로 법원에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16년 11월 준공한 이 아파트는 지난해 말 8년의 의무임대 기간이 끝났다.
2014년 리츠가 처음 생길 당시에는 준공공 임대아파트로 추진됐지만, 이 주택의 근거법이었던 임대주택법이 2016년 폐지되고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뉴스테이'(New Stay)로 전환됐다. 의무 임차 기간은 10년에서 8년으로 조정됐으며, 연 5%의 임대료 상승 제한도 해제됐다.
인천도화리츠 지분은 대한주택보증(58.41%)이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이어 자산관리회사(AMC)인 인천도시공사(iH)가 24.04%를 보유했으며 시공사인 서희건설(17.55%) 지분이 뒤를 잇는다. 이들은 의무임대 기간 만료 전부터 일부 가구에 대한 분양을 진행했다. 분양가는 감정평가액을 기반으로 정해졌다. 170가구는 리츠가 제시한 분양가에 동의, 분양계약을 체결했으나 일부 임차인은 여전히 분양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주택법 폐지 전 의무임대 기간은 10년이었으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당시 최초 분양가로 10년 후에 입주할 수 있다는 조건을 믿고 8년을 기다렸다고 주장한다.
감평액 선정 기준도 애매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임차인 A씨는 "민간임대주택은 민간 임대인이 감정업체를 통해 분양가격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도화 서희스타힐스는 준공공임대아파트로 착공됐으나 공공임대주택처럼 기초자치단체가 선정한 감정업체 2곳의 평균치로 분양가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이 단지 분양전환에 관한 자세한 계획은 정해진 바 없는 상태다.
◆ 감정평가·산정기준 공백… 제도 개선 요구에도 법적으론 어렵다?
민간임대주택은 양질의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다. 취지는 좋지만 의무임대 기간 만기 도래 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임대업자는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분양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민간임대주택 임차인 상당수는 분양전환을 기다리며 의무 임대 기간을 채우곤 한다. 그러나 민간임대특별법에 분양전환의 구체적 방법이나 분양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의무 임대가 끝나면 임차인에게 분양 전환 우선권을 부여한다거나, 분양가를 할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 분양 전환 자체도 임대업자 마음에 달렸다.
민간임대주택은 2017년 12월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직후 공급이 활성화됐다. 임대업자에게 취득세·재산세 감면 등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해서다. 2018~2020년 공급된 민간임대주택은 각각 33만4686가구와 26만5006가구, 28만853가구에 달했다.
이때 시장에 풀렸던 민간임대주택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가며 관련 제도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주희 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주택의 원활한 공급과 서민 주거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간 이익의 균형 등을 고려한 분양가 산정기준 마련과 현행 법제도의 개선 및 보완이 요구된다"며 "주택가격 변동폭이 큰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북 청주시상당구)는 분양전환 가격이 명시되지 않을 경우 임대사업자와 임차인이 각각 산정한 감정평가법인의 평가금액의 평균을 상한으로 하는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민간임대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허위·과장 광고를 막기 위해 임대업자나 분양대행사가 입주자 모집 시 제시한 광고물 사본을 해당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 신설 또한 골자로 한다.
분양전환 가격을 다룬 민간임대특별법 개정안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규제지역 외 분양가 산정은 어디까지나 임대업자의 재산권 영역에 속하는 데다,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따라 이미 공급을 마친 사업장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국토부 또한 이런 이유로 규정상 변화를 주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결국 민간임대주택을 둘러싼 임차인과 임대업자 간 다툼을 막기 위해선 사업기간 연장이나 상장리츠로의 전환 등 다양한 출구전략이 요구된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민간임대 사업장이 매 각차익만으로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구조이기에 자율적인 분양가 선정을 규제하면 수익률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이 경우 투자시장에서의 신뢰를 잃어 신규 사업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므로 당초 공모제안과 계약에 기초한 출구를 보장해야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