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탐벨리니의 검은 작업세계 조망
9월27일 개막해 내년 3월29일까지 3인전
에너지 기업이 만든 신 개념의 빙하미술관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강원도 원주에 새로운 아트 랜드마크가 탄생했다. 빙하를 닮은 외관의 독특한 뮤지엄인 빙하미술관이 9월 27일 문을 연다. 빙하미술관은 공식 개관전 'Beyond Black: Light, Time, Memory(블랙을 넘어: 빛, 시간 그리고 기억)'을 내년 3월 29일까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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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강원도 원주에 새로 문을 여는 빙하미술관. 첨단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다양한 현대미술을 다루는 뮤지엄을 지향하고 있다. [사진=빙하미술관] 2025.09.25 art29@newspim.com |
빙하미술관이 첫번째로 선보이는 기획전의 주인공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알도 탐벨리니(Aldo Tambellini, 1930–2020)다. 국내에서는 소개될 기회가 많지 않지만 글로벌 미술계에서는 그의 깊고 숭고한 블랙 작업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미술관은 탐벨리니의 급진적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태국의 카민 르차이프라싯(Kamin Lertchaiprasert)과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실감형 미디어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모두 심도있고 개성적이며 진취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전시는 탐벨리니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모든 색의 총합인 '블랙'의 철학과 아방가르드한 실험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동시에 작금의 시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로 기술과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개척하는 르차이프라싯과 이이남의 드라미틱한 작업이 어우러졌다.
탐벨리니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현대기술의 진보와 인간 정신의 진화를 연결짓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의 필생의 대표작이자 유작인 'We are the Primitives of a New Era'는 기술문명이 이끄는 '새로운 원시시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인간의 본성과 창의성의 중요성을 더해 테크놀로지 아트이지만 사람이 중심에 놓인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빙하미술관 전시는 국내 최초로 탐벨리니의 다양한 작업세계가 조망된다. 영상, 설치작업은 물론 드로잉과 회화까지 여러 매체를 망라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전복적 실험과 철학이 전시장 전반에 구현된다.
한편 빙하미술관(Glacier Museum of Art)은 강원도 원주에 새로 들어선 사립 뮤지엄으로, 신재생에너지 기업 한마음에너지의 이경남 회장과 심형금 관장 부부의 오랜 문화예술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 회장은 그린희망문화재단을 통해 예술과 지역 커뮤니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문화예술 진흥과 사회 환원의 가치를 실천해왔다.
빙하미술관은 명칭에서처럼 '빙하'의 조형미를 건축에 구현해 주목된다. 물 위에 떠 있는 부유형 구조와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로 이루어진 외벽은 자연의 빛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그 형태와 그림자가 변하며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전시 공간을 넘어서며 예술,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사유의 장소로 자리매김한다.
이경남 회장 부부는 1만2000평 부지 위에 1000평 규모로 빙하미술관을 설립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뮤지엄의 전시 공간은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리듬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공중에 설치된 V자형 보행통로에서는 360도 파노라마 뷰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마치 빙하 속을 거니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미술관은 실내 전시장 외에도 예술마당, 산책로, 아트숍, 카페, 컨벤션홀 등 다양한 야외및 문화 공간이 마련돼 있어 관람객들은 자연 속에서 차분히 힐링하며 예술과 호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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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빙하미술관 개관전에 출품된 알도 탐벨리니(Aldo Tambellini)의 작품 'The Primitives', 2024. UV print, 57x112cm. [이미지 제공=토퍼스 스튜디오] 2025.09.25 art29@newspim.com |
미술관에 들어서면 입구에 설치된 루마그램(Lumagram : 손으로 그린 슬라이드 필름)에서 시작해 대형 벽면을 가득 메운 비디오그램(Videogram)까지 관람객은 탐벨리니가 기존의 전통매체를 넘어 빛과 영상, 소리의 영역으로 예술을 확장해간 과정을 조우하게 된다. 이어 명상적 사운드와 빛이 어우러지는 공간인 사운드룸을 만나게 되는데, 감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고요한 사유의 시간을 체험해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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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란 미술전문기자=알도 탐벨리니(Aldo Tambellini), 'The Primitives'(detail), 2024, UV print, 57x112 cm [이미지 제공=토퍼스 스튜디오] 2025.09.25 art29@newspim.com |
실감형 전시장에서는 탐벨리니의 작품과 더불어 태국의 스타작가 카민 르차이프라싯과 한국의 대표적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미디어 작업이 교차 상영된다. 카민 르차이프라싯은 불교철학과 명상에서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본질을 다뤄온 작가로, 'After Death Before Next Birth'은 언리얼 엔진과 공간 오디오기술을 활용해 관람객을 생과 사의 경계로 이끈다. 이 몰입형 환경은 관람자가 자신의 존재와 유한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하며, 실감형 미디어의 기술적 잠재력과 철학적 깊이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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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카민 르차이 프라싯 Kamin Lertchaiprasert, 'After Death, Before The Next Birth', 2023, Immersive Video,8 [이미지 제공=토퍼스 스튜디오] 2025. 09.25 art29@newspim.com |
이이남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고전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작가로, 이번에 '꿈 속의 광주'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유년 시절 광주에서의 기억과 5·18 민주항쟁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조선조 최고 걸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결합한 이번 작품은 동서양의 초현실적 공간을 융합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우화적 이미지로 전환한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은 개인적 차원과 보편적 차원에서 광주의 아픔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이이남 작가는 빙하미술관에 6m 높이의 대형 설치작품 '시가 된 폭포(Waterfall turned into a poem)'도 선보인다. 5300여 권의 고서에서 추출한 문자 데이터가 흰 포말로 폭포수처럼 장대하게 쏟아져 내리는 작품이다. 이 압도적인 작품은 문자와 이미지, 시간과 기억이 겹겹이 흘러 인간정신과 문명의 역사를 웅장하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으로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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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이이남(Lee Lee Nam), '꿈 속의 광주(Gwangju in Dream)', 2023, Immersive Video, 14분 52초 [이미지 제공 =토퍼스 스튜디오] 2025.09.26 art29@newspim.com |
탐벨리니가 생전에 남긴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시인이다'라는 말은 이번 전시의 정신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키워드다.관람객은 탐벨리니의 급진적 실험과 카민, 이이남의 동시대적 해석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다층적 감각 속에서 개인과 집단, 기술과 감정, 목소리와 침묵 사이를 오가며 예술이 던지는 근원적 질문에 스스로 응답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한편 이번 빙하미술관의 전시를 기획한 아셀아트컴퍼니(ACEL Art Company)는 갤러리 , 전시, 컨설팅, 네트워킹이 결합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아트 플랫폼을 지향하는 전문 업체다. 아셀은 국내외 갤러리, 컬렉터, 문화 파트너가 한국을 거점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단순한 작품 전시를 넘어 관계와 경험을 연결하는 인프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컨설팅한다. 아셀의 전시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김수현 대표는 그간 서울옥션, 아라리오갤러리(베이징·상하이), 뮤지엄웨이브 등에서 관장과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내외 미술관 전시기획과 강의, 기고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국제통 미술전문가다. 빙하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