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국제업무지구 사망 선고" 4일 펜스 앞 '근조화환' 시위
샌드위치 신세 된 HDC현대산업개발…'HDC타운' 고급화 전략 딜레마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근조화환 시위 등 집단행동을 예고하며 개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용산 일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복합개발을 추진해 온 HDC현대산업개발의 'HDC타운'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정책과 주민 반발이 맞물리면서, 사업 추진 일정과 구상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정부, 서울시 반대에도 1만가구 이상 조성..."기능 상실" 우려도

4일 국토교통부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1.29 대책'을 통해 용산 국제업무지구(정비창 부지)에 당초 서울시 계획(6000가구)보다 4000가구 늘어난 1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못 박으면서 기존 글로벌 허브로서의 기능이 퇴색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배후 단지로서 개발을 꾀해온 HDC현산과 민간 사업에 투자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앞서 발표한 공급 대책을 두고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국토부는 지난 2일 이례적으로 반박 자료를 내고 "시급한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1만가구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토부는 주택 규모 증가로 국제업무지구 본연의 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해외 성공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주거비율 32.3%), 보스턴 시포트(42.4%), 홍콩 유니언 스퀘어(55%) 등 글로벌 업무지구들도 업무·상업시설과 주거가 복합된 형태"라며 "용산 역시 공급 규모를 늘려도 주거 연면적 비율은 30% 수준으로 유지돼 기능 약화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시가 제기한 '사업 지연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서울시는 1만가구로 가구수가 폭증할 경우 교통·환경 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해 사업이 최소 2년 이상 지연될 것이라 우려했으나, 국토부는 "단순히 호수의 증가로 인해 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학교 문제 역시 토지이용계획 변경을 수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육청과 협의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논리는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도심, 그것도 가장 핵심인 용산에 '직주근접형' 주택을 대량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범정부 추진체계를 가동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속도전을 펴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 주민들 "용산은 주택 실험장 아니다"…'화환 시위' 격화

하지만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지역 민심은 들끓고 있다. 용산구 주민들은 이번 대책을 '졸속 행정'이라며 강력 규탄 중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제업무지구를 주거단지로 전락시키는 결정이자 지역도 국가도 무시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집단행동에 나섰다. 주민들은 이날 오전 용산역 달 주차장 인근 국제업무지구 펜스 앞에서 '근조화환 보내기' 시위를 진행 중이다. 화환에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주택 실험장이 아니다, 국제업무 기능을 훼손한 정부의 일방통행을 규탄한다" 등의 강력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근조화환 시위에 대해 "시민 보행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징성이 큰 국제업무지구 펜스 앞을 시위 장소로 택했다"며 "중앙정부의 부당한 공급대책에 맞서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보낸 화환인 만큼 과도한 행정처리는 지양해달라고 구청 측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는 5일 김용호 서울시의원과 함께하는 주민 대토론회(서울시의회 별관), 6일 용산구의회 의장실에서 열리는 국제업무지구 주민대책 회의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조직적인 반대 여론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다.
◆ 샌드위치 신세 된 HDC현대산업개발…'HDC타운' 고급화 전략 딜레마

정부와 주민 간의 강대강 대치 속에서 가장 난처한 입장에 처한 곳은 민간 사업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이다. 이 회사는 2011년 본사를 강남에서 용산 아이파크몰로 이전하며 '용산 시대'를 선언한 이래, 용산을 단순한 사업지가 아닌 그룹의 미래를 건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왔다.
HDC현산은 용산역 아이파크몰을 중심으로 정비창 전면 1구역, 용산철도병원 부지 등을 연결해 거대한 'HDC타운'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특히 지난해 재건축 공사 수주에 성공한 정비창 전면 1구역은 정부가 1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국제업무지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초인접' 부지다.
당초 HDC현산은 정비창 전면 1구역에 'THE LINE 330'이라는 네이밍을 적용,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할 국제업무지구의 배후 수요를 겨냥한 하이엔드 주거 단지를 계획했다. 지상 115m 높이의 스카이브릿지와 한강 조망 특화 설계를 통해 용산의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국제업무지구가 뉴욕의 허드슨야드나 도쿄의 롯본기힐스처럼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된다면 바로 옆 HDC타운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정부의 '1.29 대책은 이 같은 구상을 뒤흔드는 중이다. 국제업무지구 내에 소형 평형 위주의 주택 1만가구가 들어서고, 그중 35%(약 3500가구)가 임대주택으로 채워진다면 해당 지역은 비즈니스 허브보다는 거대한 베드타운의 성격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HDC현산이 추구해온 고급화 및 차별화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HDC현산 입장에서는 국제업무지구의 인프라와 상징성이 자사 단지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이었는데, 대규모 임대 물량과 고밀도 주거 단지가 들어서면 '하이엔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속도전' 정부 vs '원안 사수' 지자체·주민 갈등 지속
문제는 앞으로의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서울시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시는 이미 "국제업무지구의 본질을 훼손하는 과도한 주거 공급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해왔다.
특히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는 사업의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국토부는 기존 절차를 준용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당초 계획보다 4000가구가 늘어나는 대형 변경 사항을 두고 영향평가를 약식으로 진행할 경우 추후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한 행정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민들 역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 신설 역시 핵심 쟁점이다. 1만가구가 입주하면 초등학교 신설이 필수적인데, 국제업무지구 내 금싸라기 땅을 학교 용지로 할애할 경우 업무·상업 가용 면적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국토부는 "토지이용계획 변경 없이 교육청과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해법이 제시되지 않아 '콩나물시루 학교'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입지적 특성을 고려한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며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입지적 특성상 주거 기능보다는 복합시설 랜드마크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