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류승완 감독이 신작 영화 '휴민트'를 통해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신념 사이 딜레마에 빠진 인간적인 인물을 깊이 조명한다.
류 감독은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휴민트' 개봉 인터뷰를 통해 조인성과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소감과 함께, 오랜 준비 끝에 영화를 선보이게 된 과정을 밝혔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고나니 후련하다"면서 웃었다.
"연휴 때문에 인터뷰 일정이 밀리다보니, 그저께까지도 영화관 무대인사를 하다가 왔어요. 지금 느끼고 있는 체감은 오랜만에 극장에 활력이 돌고 있다. 작년 설하고만 비교해도 완전히 달라진 거라 그게 일단 되게 감사하고, 장항준 감독 잘 돼서 좋아요. 그쪽 촬영 감독도 저하고 평생 같이 일하는 분이고, 유해진 선배도 저하고 같이 했고 현장에 커피차도 보내고 현장에 응원도 갔었어요. 서로 다른 영화 두 편이 나와서 관객들이 극장에 와서 잘 봤다고 해주시니 감사하죠."

류 감독은 '휴민트'의 시작과 끝을 잡은 조인성의 존재감이 주축 캐릭터를 만든 토대가 됐음을 밝혔다. 영화 속 조과장(조인성)은 낯선 일터에서 일어나 일상적으로 업무에 나서지만, 누구와 맺는 오랜 관계와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필연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가 익숙한, 고독함을 지닌 사람을 주인공 설정이 '휴민트'의 컨셉트가 됐다.
"처음과 끝에 자기의 집이 아닌 곳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 그리고 관계를 되게 촘촘히 맺고 있고 2중 3중의 관계를 통해 정보활동을 하지만 결국 혼자 있는 사람. 키워드라고 한다면 이별,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게 중요했어요. 액션 영화였기는 하지만 그 액션에 도달할 때의 감정이 기존에 제가 다루던 식과 달랐죠. 분노 게이지를 막 올려가지고 복수를 한다거나 나쁜 놈 때려잡는 쾌감이 아니라 차분하게 잡아놓은 그 감정선 안에서 응축이 되어서 폭발하는 형태의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류 감독은 '베를린' 당시 취재를 하다가 북중러 국경 지역의 탈북인 인신매매 실태를 접하게 됐고, 오래도록 묵혔던 이야기였음을 밝혔다. 그때 느꼈던 분노와 비참함을 잊지 않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곱씹으며 자연스럽게 영화의 구성이 나왔다. 소재는 한없이 불편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이 오롯이 자신의 역할을 하게끔 부단히 신경쓰기도 했다.
"왜 이 소재를 택했느냐 하면 순수하게 당시의 분노였던 것 같아요.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서. 밀수 같은 건 많아도 사람을 사고 판다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 분노가 시발점이 됐고, 범죄를 추적해서 응징하는 사람, 큰 파도에 휩쓸려 희생자의 포지션으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 거기에 깊이 관계돼 있고 과거의 실수 때문에 현재에 속죄하고 싶은 사람의 구도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휴민트'와 함께 설 연휴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왕과 사는 남자'가 실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더 대중적인 이야기여서 초반 성적이 조금 아쉽단 평가도 없지 않다. 류 감독은 일부에서 나오는 불호 포인트에 수긍하며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숙제는 우리의 시선이 이 대상을 착취하면 안 된단 거였죠. 카메라와 대상과 거리를 세팅하는 게 조심스러웠고, 더 강조하거나 구경거리로 다루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어요. 스크린 안에서 대상에 대한 착취의 시선이 생길까 봐요. 고민이 많았죠. 취재한 대로라면 말도 안되는 거였어요. 이걸 아름답고 예쁘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상태에 대해 딴에는 순화시킨단 표현도 좀 그래요. 일부에서 지적하는 점에 대해선 거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구나.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라고 여기죠. 출발 자체가 이걸로 쫙 뽑아먹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보니.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있죠."
일각에선 극중 조 과장의 행동이 휴머니즘과 상대에 대한 호의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이 아닌지, 감독과 배우의 의도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삼각관계는 일절 생각한 적이 없다"면서 조 과장의 캐릭터가 유별난 지점을 짚었다.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사람에 대한 도리, 염치 그런 게 중요했어요. 조 과장은 초반에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못했잖아요. 조직 입장에선 좀 비효율적인 사람이죠. 너무 감정적으로 휘둘리고 조직의 이익보다 개인 간의 신의에 흔들리니까요. 근데 그래서 이 영화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매력적이에요. 무엇이 더 중요한가. 세상을 구한다고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무슨 소용이지. 조 과장은 조인성이란 배우 자체를 떠올리면서 계속 각본을 쓰면서 발전된 인물이에요. 실제 우리는 그런 딜레마에 많이 빠지거든요. 하물며 정보요원으로 윤리적 딜레마가 얼마나 세겠어요. 흔들리는 면이 흥미로웠고, 그래서 갖게 되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 어떤 관계도 길게 지속 못하는 숙명적으로 이별을 해야만 되는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예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휴민트'가 멜로성 강한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류승완 감독은 "연출 경력이 20년이 훨씬 넘는데 키스신을 찍어본 적이 없다"면서 의외의 반응에 놀라워했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액션신 한 가운데에서도 흐르는 감정적 케미스트리에 관해선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박정민 씨도, 저도 이런 쪽의 관심을 예상 못했어요. 물론 영화 속의 관계는 인지를 했지만 조인성 씨에게 제가 채선화와 박건이 식당 뒷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엔 자기가 현장에 좀 나와서 얘기 좀 하자고 할 정도로요. 좀 조마조마하면서 찍었는데 저는 20년 연출 하는 동안 키스 장면을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요. 다른 감독한테 그거 어떻게 찍어 하고 물어보기도 해요. 어떤 장르적인 계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어떻게 따라갈까를 하다 보니까. 중요했던 건 사람 간의 관계이고, 특별히 둘이 과거의 연인이란 설정들이 관계의 리드를 만들어 줬어요. 본격적인 멜로 감정을 그려야 했다면 부담이 심했을 것 같아요. 과거 얘기도 없이, 현재 상태에만 딱 집중해서 둘의 사연을 가지고 집중해서 가니까 관객 분들이 부담 없이 잘 봐주시는 거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류 감독은 오래도록 묵혀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만큼 이제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현재 생각하는 그의 차기작은 '베테랑' 세 번째 이야기다. "물론 관객 분들이 원하셔야 가능하다"고 여지를 두면서도 다시 한번 '베테랑'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구상이 끝낸 상태라고 했다.
"홀가분하고 미련이 없어졌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 내일 죽어도 호상이다 이런 느낌. 숙제로 남은 것들은 있죠. 생각지 못했던 어떤 반응들에 대해서는요. 최소한 고마운 게 이 영화가 저한텐 분기점이 될 것 같아요. 내 취향과 모든 것들을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말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20년이 넘게 여러 형태로 해봐서요. 다음 영화는 어쩌면 되게 다를 수도 있겠다 싶어요. 현재 생각하는 건 '베테랑3'인데요. 그것도 돼야 되는 거죠. 초벌 각본은 다른 작가가 쓰고 있었어요. 이제야 제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요. 2편이 1편의 성공에 대한 부채감 같은 걸 담은 얘기였다면 지금 만드는 건, 만약 완성이 된다면 관객들이 좋아했던 그 서도철을 다시 귀환시켜서 돌려드린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jyy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