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전운이 감도는 걸프 지역을 빠져나가려는 수만 명의 외국인들이 퇴로를 찾지 못해 고립 위기에 처했다. 공항이 폐쇄되고 항공편이 끊기자, 사람들은 수십 시간을 들여 인근 국가로 이동하는 이른바 '탈출 행군'에 나서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 "결혼식은 가야 하는데..." 33시간의 사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거주하는 사라는 다음 주 독일에서 열리는 오빠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하기 위해 4일 새벽 길을 나선다. 평소라면 직항으로 몇 시간이면 충분할 거리지만, 이번 여행에는 무려 33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여정은 험난하다. 새벽 5시, 온라인으로 구한 사설 운전사와 함께 육로로 국경을 넘어 오만 무스카트로 향한다. 그곳에서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날아가 하룻밤을 보낸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야만 최종 목적지인 독일 뒤셀도르프에 도착할 수 있다.
사라는 "항공편이 언제 취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도박을 할 수 없었다"며 "너무 긴 여정이지만 지금으로선 유일한 방법"이라고 토로했다.
◇ 항공편 절반 '올스톱'...사우디보다 오만으로 몰리는 이유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시리움(Cirium)에 따르면, 공습이 있던 지난 토요일(2월 28일) 이후 중동을 오가는 항공편 3만 2,000편 중 절반 이상인 1만 6,000여 편이 취소됐다. 특히 카타르, 바레인, UAE발 항공편은 사실상 전멸 수준이다.
탈출을 원하는 이들은 그나마 하늘길이 열려 있는 오만으로 향하고 있다. 런던의 럭셔리 여행 자문사 '글로브 7'의 다리아 구리스트림바 대표는 "유일한 육로 탈출구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적에 따라 비자 요건이 매우 까다로워 대부분의 외국인이 비자 절차가 덜한 오만 국경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오만 국경은 지난 2일 한때 비거주자 통행이 금지되며 대혼란이 일기도 했으나, 3일부터 통행이 재개되며 피란 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국영 오만 항공과 저가 항공사 살람에어는 두바이 북부 샤르자에서 오만 수도 무스카트까지 8시간이 소요되는 셔틀버스를 긴급 편성했다. 페이스북과 레딧 등 SNS에는 무스카트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묻는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평소 오만인들이 쇼핑하러 오거나 관광객들이 등산을 가던 150㎞의 국경 도로가 지금은 UAE를 탈출하려는 외국인들로 가득 찼다"고 전했다.
◇ "부르는 게 값" 치솟는 탈출 비용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하는 루트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비용이 문제다. 두바이에 방문했다가 리야드로 돌아간 한 영국인은 호텔에서 사우디 국경까지 차를 빌리고, 국경 너머에서 다시 리야드행 차를 빌려 11시간 만에 귀가했다.
그가 이번 '탈출'에 쓴 비용은 총 1,000달러(약 148만 원) 이상이다. 평소 두 도시를 잇는 이코노미석 항공권 가격이 200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5배가 넘는 웃돈을 지불한 셈이다.

◇ 각국 정부, 전세기·버스 동원해 자국민 철수
사태가 심각해지자 각국 정부의 자국민 탈출 작전도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슬로베니아 정부는 경찰 호위 차량을 붙인 버스 4대를 긴급 투입해 두바이에 고립된 자국민들을 오만 무스카트 공항으로 안전하게 실어 날랐다.
독일은 리야드와 무스카트에 각각 전세기를 띄워 현지에 고립된 3만여 명 중 어린이와 임산부 등 취약 계층을 우선적으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역시 두바이에 고립된 학생 200여 명을 위한 전용기를 편성하는 등 대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내 미 대사관이 공격권에 들어가자 미 국무부는 중동 10여 개국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에게 '즉시 떠나라'는 긴급 권고를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초 이번 갈등이 4~5주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는 광범위하고 기한 없는 전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중동을 빠져나가려는 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식료품 공급 차단...오만 하늘길마저 닫히면 고립"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지에서는 항공편 중단으로 인한 물류 대란의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UAE 내 식료품 수입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여행 전문가 구리스트림바는 "가장 큰 공포는 마지막 보루인 오만의 공역마저 폐쇄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서 탈출할 방법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기한 없는 장기전으로 규정하며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어, 포염을 피하려는 외국인들의 고난의 행군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