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한·호주 군 당국이 27일 가평에서 윌리엄 머피 상병 유해 공동 발굴을 시작한다.
- 국유단 10명과 호주 측 4명, 66사단 80명 등이 한 달간 목동리 일대에서 수색한다.
- 1951년 가평전투 실종 호주군 유일 수습 대상으로 부산 유엔공원 안장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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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군 미수습 42명 중 유일한 '남쪽 전사자'… 유엔기념공원 안장 추진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호주 6·25 전사자 42명 가운데 우리 측 지역에서 수습 가능한 유일한 실종자로 남은 이는 윌리엄 머피 상병이다. 이 상병의 유해를 찾기 위한 한·호주 군 당국의 첫 현장 공동 발굴이 이달 27일부터 경기 가평에서 시작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영연방 가평전투 75주년을 계기로 호주 국방부 산하 미수습 전쟁사상자 지원국(UWC-A), 호주 왕립연대 3대대, 육군 제66보병사단과 함께 가평 전선에서 실종된 호주군 전사자 유해 발굴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발굴은 27일부터 5월 22일까지 약 한 달간 가평군 북면 목동리 일대에서 진행되며, 24일 열리는 영연방 참전 75주년 기념식과 개토식이 사실상 시작 신호탄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장에는 국유단 전문 인력 10명이 투입되고, 호주 UWC-A 조사·감식관 등 4명이 합류해 유해 탐지와 신원 확인 절차를 함께 진행한다.
한국전 참전 이력이 있는 호주 왕립연대 3대대 소속 장병 6명도 발굴에 동행해 전장 지형과 전투 양상을 증언하며 수색 지점 선정에 협조한다. 가평읍에 주둔 중인 육군 66사단은 매년 영연방 가평전투 기념행사를 지원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발굴에도 장병 80여 명을 후방 지원 전력으로 투입한다.
이번 발굴은 2019년 한 지역 주민이 "1960년경 산에서 발견한 유해의 군복 단추에 'Australia'라고 적혀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 출발점이다. 국유단과 호주 측은 제보 지점을 과거 전투 지도와 대조한 결과, 이곳이 1951년 4월 가평전투 당시 호주 왕립연대 3대대가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인 격전지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기관은 같은 해 체결된 '한국전쟁 실종자 관련 협력에 대한 대한민국 국방부와 호주 국방부 간 양해각서(MOU)'를 근거로 공동 조사 채널을 가동했고, 국유단은 2021년 자체 추가 조사를 통해 실종자 가능성을 좁혀왔다.
호주는 이 MOU를 토대로 2022년 처음 '한·미 조사분야 실무협조회의'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여한 데 이어, 2023년 회의에서 가평전투 호주군 실종 사례를 공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당시 호주 측은 전체 실종자 42명 가운데 상당수가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 수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지만, 한국 측 조사 결과를 반영해 2024년 한·호주 공동 조사를 실시했고, 그 연장선에서 올해 첫 공동 발굴이 성사됐다.

공동 발굴팀이 찾는 대상은 가평전투 당시 영연방 제27여단 예하 호주 왕립연대 3대대 소속 윌리엄 K. 머피 상병(William K. Murphy)이다. 영연방 제27여단은 영국 미들섹스연대 1대대, 호주 왕립연대 3대대,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연대 2대대, 뉴질랜드 왕립포병연대 16연대로 구성된 연합부대였다.
이 부대는 1951년 4월 강원 화천군 사창리 일대에서 국군 6사단을 격퇴한 뒤 가평을 통해 서울로 진격하던 중공군 60·118사단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아, 이른바 중공군 '4월 대공세'를 차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당시 영연방 제27여단의 방어전은 연합군의 수도권 방어 시간을 벌고 퇴로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6·25전쟁에서 미수습 상태로 남은 호주군 전사자는 현재까지 42명(육군 22명, 해군 2명, 공군 18명)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18명은 북한 지역, 22명은 비무장지대 일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돼 있으며, 남은 2명 중 1명은 서해 공해상 실종자, 다른 1명이 이번 발굴 대상인 가평 지역 머피 상병이다.
머피 상병은 1951년 4월 23~25일 가평전투 중 실종됐으며, 같은 전투에서 호주군은 29명이 전사하고 3명이 포로가 됐다. 전투 직후 수색을 통해 전사자 28명의 유해가 수습되고 포로 3명도 귀환했지만, 머피 상병만은 끝내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가평전투의 유일한 호주군 실종자로 남았다.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이미 가평전투에서 먼저 수습된 호주군 28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으며, 머피 상병의 유해도 발견될 경우 전우들이 잠든 같은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호주 국립보존기록관 자료에 따르면, 머피 상병은 1921년 2월 13일 아일랜드 클레어주 에니스에서 태어나 로마 가톨릭 신자로 자랐고, 입대 전에는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군번은 3400143이며, 한국전 참전 이전에는 1934~1946년 영국군 소속으로 복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군 상사 계급으로 싱가포르 방어전에 투입됐다가 1942년 2월 싱가포르 함락과 함께 일본군 포로가 돼 1945년 8월 종전까지 약 3년 6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겪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두 전쟁을 관통한 그의 경력은 이번 유해 발굴이 단순한 한 명의 실종자 수습을 넘어 20세기 전쟁사를 함께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UWC-A의 크레이그 포먼 호주 육군 소령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의 참전 군인을 찾는 것은 국가의 부름에 응답한 영웅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며 "42명 전원을 수습할 때까지 국유단과 긴밀히 공조하는 등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국유단은 2019년 한·호주 간 MOU 체결 이후 축적한 조사 자료를 토대로 첫 현장 공동 발굴에서 머피 상병의 유해를 수습하고,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까지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