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법원은 최근 장애인 성폭력 재판에서 장애인 피해자 진술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난감함을 드러냈다.
- 현재 형사사법 절차는 언어 표현 능력을 기준으로 설계돼 중증 발달장애인 피해자의 비언어적 표현과 취약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 전문가들은 맞춤형 수사 환경과 조력 체계 구축 등 장애 특성을 반영한 사법 절차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말로 설명 가능한 사람' 중심의 재판 구조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어떻게 증거를 끌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열린 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첫 공판. 법정 안을 울린 재판부의 이 한마디는 잔상을 길게 남겼다. 단순한 절차적 고민을 넘어,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장애인 피해자를 마주할 때 한계와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낸 장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중증 발달장애인을 상대로 한 장기간의 성폭력 혐의를 다룬 재판이었다. 법정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조사 방식, 반대신문의 범위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주신문과 반대신문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겠다", "양형조사관 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솔직한 고백이자, 동시에 현행 사법 절차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실정법 어디에도 장애인을 차별하라는 조항은 없다. 오히려 장애인 권리 보장 규정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법원과 수사기관 역시 사회적 약자 보호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법은 조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재판 과정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회적 힘의 불균형과 언어의 격차는 법정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명암을 가르는 핵심 쟁점은 결국 '피해자 진술'이다. 문제는 현재의 형사사법 시스템이 철저히 '말로 자신을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술의 일관성, 표현의 정확성, 반대신문 대응 능력, 시간과 장소의 특정 등은 모두 일정 수준의 언어 능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이러한 기준은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요구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신체의 움직임과 표정, 반복 행동, 심리적 위축이나 특이 반응 역시 중요한 의사 표현 방식이라고 짚는다. 그럼에도 법정은 여전히 완성된 문장과 논리, 언어적 설명 능력만을 복기한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취약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사와 재판 과정의 이러한 한계는 현장 전문가들의 지적에서도 확인된다. 장애인 시설인 '색동원 사건'의 피해자 변호인으로 수사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박을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현장의 부조리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박 변호사는 "신뢰 관계가 없는 조력인의 동석, 부적절한 조사 장소 선정, 보완 대체 의사소통(AAC) 도구의 부재 등이 장애인 피해자가 마주하는 장벽"이라며 "장애 유형별 맞춤형 수사 환경 조성과 실질적인 조력 체계 운영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현장 사법 절차가 장애인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렵고,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취약성을 정확히 파고든다. 그런데 정작 범죄를 단죄해야 할 법정에서는 그 취약성을 깊이 고려하기보다 "왜 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느냐"는 무책임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판사와 검사, 변호사 역시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교육과 경험을 쌓아온 주체들이다. 장애인의 특수한 감각과 표현 체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다.
법 앞의 평등은 모두에게 똑같은 형태의 질문을 던지는 기계적 공정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로 설명하고 누군가는 온몸으로 표현한다면, 그 표현 방식의 차이까지 지혜롭게 헤아릴 때 비로소 실질적 평등이 실현된다.
장애인 피해자가 법정에서 다시 침묵 속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사법 절차 역시 변화가 요구된다. 우리 사법 시스템은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pmk145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