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②미국 하원 속기록에서 찾은 민주주의 언어의 역사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AI 핵심 요약

beta
분석 중...
  • 1787년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를 열어 부채·외교위기·부패에 흔들리는 공화국을 구하려 했다.
  • 연방 권력과 세금, 중앙은행·군대 문제를 둘러싸고 해밀턴과 패트릭 헨리 등은 강한 중앙정부와 자유 침해 우려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 초기 의회는 결투 문화와 지역 갈등 속에서도 하원의장이 모욕적 언사를 제지하며 질서를 세우고 공화주의적 토론 문화를 만들어가려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독립혁명, 새 공화국, 그리고 의회언어의 탄생(1789-1827)

독립전쟁 이후, 새로운 시련

독립 이후에도 미국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안정된 공화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국가는 거의 붕괴 직전의 위기 속에 놓여 있었다.

1781년 연합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 체제 아래 미국은 여전히 느슨한 주(州) 연합체에 가까웠다. 당시 13개 주의 위임을 받아 운영되던 대륙 의회는 독립전쟁 과정에서 누적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지만, 세금을 직접 징수할 제도적 권한은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영국은 여전히 미국 상선을 압박했고, 미국 해군력은 매우 취약했다.

북아프리카 바르바리 해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무역국가로 성장하려던 미국은 심각한 외교와 안보 문제에 직면했다. 모든 원인은 바로 허약한 재정이었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궐기한 13개 주의 핵심 쟁점은 무엇보다 과중한 세금과 폭력을 동원한 강제징수에 있었기 때문에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새 정부에서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불만과 폭동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미국 독립선언서(John Trumbull).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또 다른 문제는 부패였다. 미국 사학자 고든 우드(Gordon S. Wood)는 그의 책 『미국 공화국의 탄생』(The Creation of the American Republic, 1969)에서 당시 미국 정치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한 정부 실패가 아니라 "공화국 자체의 부패(corruption of the republic)"였다고 설명한다.

우드에 따르면 실제로 초기 미국 의회 언어에서는 덕, 부패, 자유, 분파 같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의원들과 혁명 지도자들은 로마 공화국처럼 새로운 공화국도 내부 분열과 권력 투쟁 속에서 쉽게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느 나라나 건국 초기에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력 상인과 지역 자본 세력 등과 결탁하고, 당선을 도운 이들은 이권 청탁 등으로 얽힌 부패 사슬을 만들어 냈고, 의회는 부패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가 열렸다. 연방 권한의 확대와 재정 확충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등은 새로운 연방 헌법을 통해 보다 강한 중앙정부와 안정된 공화국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거센 논쟁이 이어졌다. 강력한 연방정부는 다시 영국식 중앙 권력으로 변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1788년 버지니아 비준회의(Virginia Ratifying Convention)에서 패트릭 헨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헌법은 아름다운 요소를 가졌다고들 말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위험한 경향도 보입니다 (The Constitution is said to have beautiful features; but when I come near it, I see dangerous tendencies)"(Patrick Henry, Virginia Ratifying Convention, June 5, 1788).

이 발언은 유화적 레토릭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헌법의 내용 속에 담긴 진정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헌법이 담고 있는 생명권,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 등의 가치는 매우 아름답게 들리지만 결국 군과 경찰 등 통치 자원을 독점한 연방정부의 비대한 권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영국처럼 국가의 통제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John Trumbull.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반면 해밀턴은 『헌법 해설서 (The Federalist Papers)』 제30편에서 강한 국가 재정과 통합된 정부 없이는 공화국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 없는 권력은 단지 이름일 뿐입니다 (Power without revenue is a name)"(Alexander Hamilton, Federalist No. 30, January 1, 1788). 해밀턴은 초대 재무장관으로 워싱턴 휘하에서 전쟁에 참가하면서 허약한 병참과 열악한 전투 환경이 결국 재정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정부 재정이 허약하면 국방, 해양 무역이 취약해져 결국 영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강력한 재정을 갖춘 연방국가가 필요하며, 대통령은 영국 왕의 존재처럼 막강해야 하며, 연방의 실질적 통치자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방정부의 강력한 권력 집중과 재정 권한의 독점 문제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보여 온 입헌 의회는 1789년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상원과 하원이 공식 출범하면서 새로운 토론문화를 만들어 가야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의회는 오늘날과 같은 안정된 대의 민주주의 공간이 아니었다.

미국 정치 사학자 조앤 프리먼(Joanne B. Freeman)의 두 연구, 명예의 문제『Affairs of Honor』(2001)와 건국기의 논쟁『Founding Debates』(2013)에 따르면, 초기 미국 하원의원 다수는 변호사, 대농장주, 상인, 독립혁명 지도자 출신 지역 엘리트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독립된 공화국 차원의 전국 의회를 처음 접하는 정치 신인들이었기 때문에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원처럼 장기간 축적된 의회 관행이나 정당 규율의 기반 없이 새롭게 의회를 운영해야 했다.

그 당시 미국 의회는 4개의 질문을 놓고 격돌했다.

연방정부는 어디까지 강해져야 하는가,
주정부는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져야 하는가,
새로운 세금은 독립혁명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인가,
중앙은행은 공화국의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인가,
국가안보를 위해 강한 군대가 필요한가, 아니면 그것이 자유를 위협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들은 단순한 철학 논쟁이 아니라 실제 미국 하원 본회의장에서 벌인 격렬한 토론의 핵심적 주제로 자리 잡았고, 이후 네브래스카-캔자스 폭동, 노예 해방 문제를 놓고 남북전쟁으로 연결되는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하원의원 회의장(The House of Representatives) /Samuel F.B. Morse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 National Gallery of Art]

건국 초기 의회, 하원의장의 역할과 질서

건국 초기 미국 의회가 가장 먼저 직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질서와 규율의 문제였다. 당시 미국은 왕도, 귀족원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화국이었다. 따라서 하원의장의 역할은 단순한 회의 진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혼란과 감정적 충돌 속에서 공화국의 절제와 의회 민주주의의 규칙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회처럼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의회 관행과 불문율이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에서, 초기 하원의장은 사실상 새로운 공화국의 토론문화를 직접 만들어가야 했다. 미국 정치 사학자 조앤 프리먼(Joanne B. Freeman)은 『Affairs of Honor』(2001)에서 초기 미국 의회가 개인적 모욕, 지역 갈등, 결투 문화가 뒤섞인 매우 불안정한 정치 공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Annals of Congress』를 보면 초대 하원의장 프레더릭 뮬렌버그(Frederick Muhlenberg)는 의원들의 고성과 방해 발언, 장내 소란을 반복적으로 제지하며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의장이 장내 질서를 요구하였다(The Speaker called the House to order)"거나 "의장이 해당 의원의 발언이 규칙에 어긋난다고 판정하였다(The Chair ruled the gentleman out of order)"는 표현이 초기 속기록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세금과 연방 권력을 둘러싼 논쟁은 초기 의회를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핵심 이슈였다. 1791년 위스키세 논쟁 당시 민주 공화파 의원들은 연방정부가 영국처럼 과도한 조세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비판했고, 서부 지역 주민들과 방청객들까지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초대 하원의장 프레더릭 뮬렌버그(Frederick Muhlenberg) /Joseph Wright, 1790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속기록을 보면 방청석의 고성과 책상 두드림이 이어지자 의장이 의사봉을 강하게 두드리며 질서를 요구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당시 하원의장은 헌법 제1조 제5항과 초기 하원 규칙(House Rules)에 근거해 방청석 통제, 발언 중지 명령, 질서 위반 의원 제지 등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 미국 의회가 상대 의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모욕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규칙을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의원들은 감정적으로 격렬하게 충돌했지만, 동시에 공화국의 틀 자체를 무너뜨리는 언어는 억제하려 했다.

다시 말해 초기 하원의장은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화국의 언어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제도적 장치였던 셈이다.

이러한 의장의 역할은 중앙은행 설립 논쟁이나 표현의 자유 논쟁에서도 더욱 중요하게 나타난다. 1791년 중앙은행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제임스 매디슨과 연방파 의원들이 충돌했을 때, 북부 의원들의 환호와 남부 의원들의 야유가 반복적으로 이어졌고, 속기록에는 장내 소란과 질서 회복 요구가 계속 등장한다.

1798년 '외국인 및 선동법(Alien and Sedition Acts)' 논쟁에서는 표현의 자유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더욱 거세졌다. 버몬트 출신 매튜 라이언(Matthew Lyon)이 "진실을 말하고 글로 표현할 자유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The liberty of speaking and writing truth ought not to be restrained)"고 주장하자, 회의장은 사실상 토론이 중단될 정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연방파 의원들은 제퍼슨 계열 의원들을 "자코뱅주의자(Jacobins)"라고 공격했고, 민주 공화파는 연방파를 "군주제를 꿈꾸는 귀족들(monarchists)"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바로 이런 혼란 속에서도 하원의장은 반복적으로 의원들에게 절제된 표현을 요구하고 발언 규칙을 적용하며 공화국의 토론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초기 미국 의회는 이미 심각한 분열과 지역 갈등 속에 놓여 있었지만, 동시에 하원의장의 권위를 통해 최소한의 절차적 질서와 공화주의적 토론문화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SK하이닉스 17년만에 상한가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SK하이닉스가 31일 장중 상한가에 진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도체 승부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불황 속에서 SK하이닉스 인수를 밀어붙였던 최 회장이 최근 주가 급락 국면에서 개인 명의로 처음 자사주를 사들인 지 하루 만에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1분 기준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39만6000원(29.95%) 오른 171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고가이자 가격제한폭 상단이다. 거래량은 853만6822주를 기록 중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주식 3620주의 평가액은 현재가 기준 62억1916만원이다. 공시상 취득금액 49억31만740원과 비교하면 미실현 평가이익은 13억1884만9260원이다. [사진=뉴스핌DB,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매수 당일 종가인 132만2000원을 적용한 평가액은 47억8564만원으로 취득금액보다 약 1억1467만원 낮았다. 주식을 사들인 직후에는 평가손실을 기록했지만, 이튿날 주가가 상한가로 급반등하면서 하루 만에 13억원대 평가이익으로 전환됐다. 이번 매수는 단순한 내부자 주식 취득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사업 구조를 반도체 중심으로 바꾼 SK하이닉스 인수의 당사자인 데다, 최근에도 AI 시대 메모리 수요와 SK하이닉스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거듭 드러냈기 때문이다. SK의 반도체 사업 구상은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선대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세우며 반도체 진출을 추진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계획을 접었다. 이후 최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키면서 30여 년간 이어진 반도체 사업 구상이 현실화됐다. 최 회장은 당시 출범식에서 "30여년 만에 반도체 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당시에도 순탄한 결정은 아니었다. 반도체 업황이 침체돼 있었고, 정유·통신을 주력으로 하던 SK와의 사업적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15년 전 업황 부진기에 회사 인수를 결정했던 최 회장이 이번에는 주가 급락기에 직접 주주로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장내에서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 최 회장이 SK스퀘어를 통하지 않고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득단가는 주당 135만3677원이며 총취득액은 49억31만740원이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기준인 50억원보다 9968만9260원 적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려면 거래 개시 30일 전까지 매매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거래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이면서 거래금액도 50억원 미만이면 사전공시 의무가 면제된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사전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입 규모를 최대한 늘려 최근 급락장에서 신속하게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식에 대해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dconnect@newspim.com 2026-07-31 14:38
사진
민주당 당대표 여론조사 보니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적합도·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정청래 후보, 민주당 지지층에선 김민석 후보가 앞서는 흐름이다. 오는 8월 1일 충청권 첫 지역 순회 합동 연설회와 경선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어 민주당 전대 열기가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김민석(왼쪽부터), 정청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7.29 photo@newspim.com ◆ NBS, 정청래 21% 김민석 19% 송영길 6%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7~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진행한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차기 당대표 적합도 정청래 후보 21%, 김민석 후보 19%, 송영길 후보 6%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 34%, 정 후보 29%, 송 후보가 9%로 나타났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 지지층, 김민석 41.6% 정청래 37.7% 송영길 9.5%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STI)가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성인 남녀 중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 1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김 후보 41.6%, 정 후보 37.7%, 송 후보 9.5%였다. 오마이뉴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한 휴대전화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 뉴스토마토, 정청래 36.9% 김민석 28.0%, 송영길 9.2%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차기 당대표 선호도 1순위로 정 후보가 36.9%였다. 김 후보는 28.0%, 송 후보는 9.2%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가 44.9%로 정 후보 38.9%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송 후보는 11.2%였다.  선호투표제 도입에 맞춰 실시한 2순위 선호도 조사에서는 송 후보가 33.9%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이어 김 후보가 12.9%, 정 후보 9.0% 순이다. 송 후보를 2순위로 선택한 57.9%는 김 후보를 1순위로 꼽았다. 36.9%는 정 후보를 선택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는 무선 전화 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주당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 선호투표제를 처음 도입했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 한 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2·3순위 선호 후보를 함께 기입하는 방식이다. 먼저 1순위 득표를 집계해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땐 최하위 득표자의 2순위 표를 배분한다. 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6-07-31 10:2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